무용을 했다. 나름 촉망받는 무용선수였지만, 예체능은 성공하기까지 많은 돈이 수반됐다.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본인도 사정을 알기에 무용을 대학 전공까지 마치고 그만두었다. 그 뒤로도 참 여러가지를 했던 것 같다. 공연 무대에서 조명일도 해봤고, 패밀리레스토랑 매니저 일도, 그리고 실내 조경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가정 주부가 되는 순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시작을 하고
역설적으로 결핍이 감성을 길러냈던 것일까? 자연의 품 안에 길러진 것들이 씨앗을 뿌려 보이지 않게 자라났던 것일까. 쉰 두살의 시인이 20여 년 연배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구수한 입말과 이제는 점차 사라져가는 시골마을의 풍경을 마치 오래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듯이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아 이젠 희미해져버린, 어찌보면 보잘것 없는 풍경들에 의미를 덧 대어 흐정거리는 시어들은 시류에 저만치 밀려 흘러가버린 어떤 정서를 끄집어낸다.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아련하게 그려지는 시어는 놀랍게도
코로나 19로 인해 가장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들 중에 마을 노인들이 있다.경로당이 폐쇄조치 됨에 따라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 피해 잠시 쉬면서 소담소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도, 같이 끼니를 해먹으며 우애를 다졌던 소중한 공간도 몇 개월 동안 누릴 수 없었다. 그나마 코로나 19 확산이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생활방역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야외 공공시설이 문을 열기 시작하자, 경로당의 문도 곧 열리리라 기대감을 안고 27일 이원면 노인회장들은 모였다. 문을 열어도 철저히 수칙을 지켜야만 코로나19에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가 고향이에요. 2000년 용담댐 담수로 인해 모정리 전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어요. 수몰 이전 모정리 여의곡 마을에는 모정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제가 그 학교를 다녔답니다. 지금은 고향도 모교도 용담호에 푹 잠겨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옥천 대청호 수몰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어요. 우리 마을이 그랬으니까요. 옥천은 훨씬 오래 전에 겪었죠. 우리보다 20년 앞서서 수몰되었으니까요. 그 때문에 수몰 이후에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진안 사람들이 옥천에 와서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인
다시 이발소를 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옥천읍 가화리가 고향인 옥천토박이 진영일(64, 옥천읍 삼양리)씨는 예전에 반도기물 2층에서 이용원을 크게 차렸었다. 직원도 둘 만큼 크게 했지만, 매일 한 공간에 갇혀 있었던 직업이라 젊은 혈기에 실증이 났더랬다. 그래서 그만두고 집에 있으니 대전에 있던 친구들이 택시나 한번 하는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서 친구따라 그렇게 택시운전사가 됐다. 80년에 운전면허를 이미 땄던 터라 택시운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영업택시를 하다가 개인택시까지 16-7년 정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젊
이원면 현리 출신 이규생(66)씨가 인천광역시 체육회장에 당선된 것이 뒤늦게 알려져 최근에 이원면 소재지에 펼침막이 걸렸다. 2010년 8월 인천광역시 체육회 사무처장에 임명된 이후 초대 민선 체육회장의 반열에 오른 것. 우여곡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치른 선거에서 최다득표한 강인덕 전 시체육회장보다 6표가 적었지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것이 받아들여져 시체육회 선관위에서 조사결과 당선 무효 처리했다. 이후 3월에 치러진 재선거에서 63.03%의 득표를 얻어 상대후보(36.97%)를 제치고 초대 민선 체육회장으로
그는 전혀 옥천과 무관했지만, 이제는 옥천이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경기도 성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그는 청주교대로 진학을 하는 바람에 충청북도와 인연이 닿았다.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옥천이 고향인 조대형(증약초 교감)씨와의 연으로 옥천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옥천 출신인 조대형씨는 괴산으로 초임지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연을 맺은 다음 옥천을 떠난 적이 없었다. 2017년 9월1일 교장으로 승진해 영동 부용초 교장으로 발령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90년 5월1일 잊지도 않은 청산초 발령, 그는 청산
블루마운트테크놀러지(동이농공단지 소재, 대표 안준식)가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성과공유 우수기업으로 국무총리표창, 12월 소비자공헌대상에 이어 올해 5월 충북 스타기업에 옥천에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충청북도와 충북테크노파크는 성장 잠재력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지역내 우수중소기업 15곳을 '2020년 충북 스타기업'으로 선정했다. 스타기업은 매출액 50억~400억원, 최근 5년 평균 매출 증가율 5% 이상, 연구개발 투자비중 평균 1% 이상 등의 기업이 대상이다. 선정된 기업은 경영기술전담, 프
8일 뉴참좋은노인요양원(원장 윤미경)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요양원에 있는 35명의 노인과 주간보호를 하고 있는 13명의 노인을 모셔놓고 직원 재롱잔치를 열었다. 이번 잔치는 코로나 19사태로 자식 친지 면회가 일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외로움과 지루함으로 하루하루를 지새는 어르신들을 위해 요양원 직원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다. 각 직원들은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무대위에 섰다. 색소폰과 고전무용도 보고 다과도 나누는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고. 윤미경 원장은 "요양원 같은 경우 증상환자가 발생하면 코호트 격리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102살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키움'과 '모심'은 중간 '자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잠시 유예기간을 거치다가 곧 훅 다가온다. 키움은 20살까지가 거의 막바지이고, 그 이후에도 살핌이 필요하지만, 제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손이 덜 탄다. 이후 부모가 70살이 넘어가는 경우 상황은 '키움'에서 '모심'으로 역전된다. 살핌의 대상이 전복되는 것이다. 아마도 키움의 기간과 엇비슷하게 모심의 삶도 이어진다. '키움'에 대한 보상이 '모심'이라고 윤리적으로 그리 말하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실제 이행되는
옥천이 관광지도 아닌데 렌트카 업체가 있을까 하고 렌트카를 어디서 빌릴까 고민한다면 그런 걱정은 붙들어매도 좋다. 27년 오랜 전통의 장기렌트카 업체가 바로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렌트카를 타다 행여나 고장이 나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30년 전통의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공업사 중 하나인 옥천자동차공업사가 형제회사로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장기렌트카는 역사도 오래되었지만, 영업 범위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구 업체이다. 250여 대가 전국 각지를 달리고 있지만, 옥천에서 이용하는 차량의 비율은 불과
쉽지 않은 일이다. 주거와 생활공간을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일이란. 살아온 경험의 익숙함과 관계의 친밀함을 단번에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가족이 엮여 있는 경우에는 이주에 늘 갈등의 파열음과 아픈 생채기가 덧난다. 이어진 관계에 대한 미련이야 누구나 공통적이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다르다. 어릴 수록 친구에 대한 애착관계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주를 결정했던 것은 아마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위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가 떠난 후, 가족은 새 곳에서
옥천읍 오대리 보내가 고향인 한기동(60)씨는 군동초(9회) 출신으로 지역 토박이다. 지역을 거의 떠나지 않으면서 옛 중앙파출소 자율방범대장, 청년애향회, 뉴옥천라이온스클럽 회장, BBS옥천군지회 회장, 바르게살기협의회 회장, (사)청렴코리아까지 그는 지역사회 봉사단체의 주요 요직에 항상 있어왔다. 그는 봉사 외에 줄곧 식당을 해왔다. 38년 전인 국제상사 옆 한남집부터 시작으로 보건소 앞에 '금관'이란 한정식집부터 옥천읍 응천리의 하얀 저택에서 '도화'라는 한정식까지 정통 고급음식점을 경영해왔다. 최근까지는 2014년부터 5년 남
대청정보통신 김승연 대표가 아낌없이 '고마운 사람'으로 추천한 고향을 지키는 느티나무 이병연(66, 안내면 방곡리) 대표는 여전히 건장했다. 김승연 대표도 창업해 현역으로 뛰고 있었지만, 이병연씨는 오래전부터 익혀왔던 기술을 바탕으로 병연기공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모든 농기계들이 마법처럼 고쳐지는 병연기공사는 간판도 없고 표식도 없지만, 안내면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농기계수리센터다. 안내초등학교(43회)를 졸업하고, 안내중학교(18회)를 졸업한 후 그는 집안일을 돕다가 군대에 갔다. 당시엔 만나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형제는 용감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이승용(32)씨는 매장을 맡았고, 이재용(29)씨는 새로 시작한 육묘장을 맡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고향에 그리고 가족의 품에 덥석 안겼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향만큼 익숙하고 편안함을 주는 곳도, 가족만큼 안온한 기운을 품어주는 공간도 별로 없었다. 어떤 회사든 위계화된 조직체계 안에서 숨쉴 구멍과 창창한 미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죽향초등학교, 옥천중학교, 충남기계공고 기계제어과를 졸업하고, 우송대 철도경영학과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같이 일을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름도 입에 짝짝 달라붙고 정겹다. 무언가 심플하다. 젊어보이는 듯한 달라진 조명가게가 2년 전에 옥천여중 앞에서 문을 열었다. ‘두두조명’,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소 느낌이 다르다. 조명과 전기 관련 도구들이 꽉 차 있는 여느 조명가게와는 달리 공간에 여유가 있고 예쁜 조명들만이 단촐하게 걸려있다. 커피를 판다면 마치 조그만 조명카페에 온 느낌이다. 영동 심천이 고향인 박병훈(36, 옥천읍 문정리)씨는 심천초, 심천중, 영동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군 제대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전기, 조명일이 ‘먹고
청성면 조분 리는 정말 알고 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도로가에 조그만한 이정표와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마을,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이다. 누가 그 산 언덕 깊숙하게 마을이 있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 조분리에도 50년 전에는 100호가 넘게 살았고 아이들만 해도 30여 명이 훌쩍 넘었다. 묘금초등학교 등굣길은 그래서 북적거렸다. 한시간 넘은 거리를 줄을 지어 갔는데 도랑가 바위밑에는 나병환자들이 사는 곳이라서 한참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순흥안씨 집성촌이었고 마을 주민들끼리 우애가 깊었다. 사실 고립된
정치인이란 무릇 세상사 일어나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무뎌지지 않기 위해 늘 신문 사설을 빠짐없이 읽는다. 특히 한겨레신문과 한국일보는 정독하면서 나랏일이 지역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시시각각 닥치는 일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바로답는다고 했다. 20일 오후 5시 의장실 인터뷰 전에도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 예산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주 옥천신문에 기사가 났더만요. 아무리 정부에서 준다고 하더라도 지역경제도 코로나
[고사미]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전을 위해 일한 명문가 집안이었다. 아버지인 김재춘씨는 한전에 다니다 일찌감치 퇴직하여 안내면 현리에 안내포도원을 일구면서 세계 각국의 포도를 시험재배하고 연구하는 농민이었던 김재춘(2007년 작고)씨였다. 94년 포도왕으로 선발된 이후 이후에도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 가공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하여 주위의 귀감이 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뜻을 이어받았을까. 두 아들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2남3녀 중 두 형제는 아버지의 집과
[고사미] ‘숨은 영웅’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며칠 전 일요일 늦은 밤 9시 저녁 뉴스를 보고 야음을 틈타 호젓한 밤산책을 가려다가’ 마주친 한 ‘젊디 젊은 공무원’이 가로등 수요조사를 하러 시골마을 곳곳을 다니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업무의 특성상 밤에 다닐 수 밖에 없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홀로 일하는 공무원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고 페이스북에 털어놓았다. 옥천읍 서대리에 사는 오정오(47, 영동중 교사)씨다.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사업무를 하고 있는 옥천읍 건설팀 박지은(26, 대전 가오동) 새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