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정보통신 김승연 대표. 고향 지킨 이병연씨에 고마움 표해
3대째 한전에서 근무한 한전 명문가, 아버지부터 손주까지
94년 포도왕, 안내포도원으로 유명했던 김재춘씨가 아버지

김재춘씨
김재춘씨

[고사미]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전을 위해 일한 명문가 집안이었다. 아버지인 김재춘씨는 한전에 다니다 일찌감치 퇴직하여 안내면 현리에 안내포도원을 일구면서 세계 각국의 포도를 시험재배하고 연구하는 농민이었던 김재춘(2007년 작고)씨였다. 94년 포도왕으로 선발된 이후 이후에도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 가공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하여 주위의 귀감이 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뜻을 이어받았을까. 두 아들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2남3녀 중 두 형제는 아버지의 집과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포도나무 대신 호두나무를 심었지만, 4천여 평의 호두밭을 직접 일구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지난 와정리 이시울마을 촌장 이경우씨가 칭찬한 김승연(65, 대청정보통신 대표)씨다. 김승연씨는 아버지의 궤적을 똑같이 밟는다. 한전에 입사했다가 한전KDN으로 분사해서 일하다가 퇴직한 후 고향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고향의 흔적을 더듬더듬 찾기 시작했다. 안내초등학교 1학년 때 대전 천동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거의 기억이 없을 법도 한데 당시 방곡리에서 태어난 13명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 15년 전부터 방골회(회장 박현기)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해 모두 방곡리에서 20명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 중 몇 명은 불귀의 객이 되었고 남아서 모이는 사람이 13명이라고, 설, 추석 명절 때마다 모여 옛 추억과 우의를 다진다고 한다. 4살 터울의 동생 김호련(61)씨도 형 따라 한전을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호두농사를 같이 짓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김영호(41)씨 역시 한전 옥천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동생 아들까지 한전에 다니고 있다고 하니 이 글 첫 문장에 왜 ‘한전을 위해 일한 명문가’라고 썼는지 단박에 짐작할 것이다. 무려 삼대가 한전에서 일을 했다니 이런 가족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는 불과 어린시절 10년 안 된 삶을 고향에서 살았지만, 고향의 유전자를 기억해냈다. 나이들면서 더더욱 끌린 것은 고향이었다. 기억에 남았던 친구들이 반겨주고 이끌어주었다. 태창국, 이병현, 태이봉, 박현기 등 여러 친구들은 전학을 간 김승연씨를 흔쾌히 고향 친구로 받아주었고 같이 어울렸다. 
“퇴직하기 전인 한전KDN천안지사에 근무할 때부터 땅을 추가적으로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죠. 아버지는 정말 귀감이 될만한 분이셨어요. 포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죠. 포도농사를 짓는 분들이 배우려고 수시로 왕래를 했을 정도니까요. 포도 재배 뿐만 아니라 증류주 가공까지 전반적인 포도산업에 대한 이해도 높았어요.” 그랬다. 당시 김재춘씨는 청성의 포도연구소가 생기기 전까지 옥천의 포도연구소 역할을 했다. 아들 김승연씨는 아버지의 포도 가업을 이어받지는 못했지만, 경제성이 좋은 호두를 심었다. 그리고 대청정보통신을 2년 6개월 전에 차렸다. 했던 일이 통신인지라 마을방송, CCTV, 광케이블 설치 등을 하는 대청정보통신을 창업한 것. 최근 이전해 교동저수지가 훤히 내다보이는 황태구이를 잘하는 식당 소정 3층에 자리잡은 대청정보통신은 직원이 6명이 될 정도로 만만찮은 기업이 됐다. “옥천에 영업소만 둔 정보통신회사랑 차원이 틀리거든요. 오랫동안 일했던 한전의 경험도 있고 고향에서 직접 일을 하니까 믿고 맡겨주는 마을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아요. 바로 출동해 사후 서비스를 한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칭찬을 한 이경우씨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그 분은 한전KDN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던 분이죠. 본부장까지 했으니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우연이 옥천에 귀촌한다고 하길래 연락이 닿아 우리 집에도 몇 번 왔었는 걸요. 그래서 제가 호두나무를 비롯해 여러 묘목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도 많이 나누구요. 옥천에 이사를 온다고 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더라구요.”
다음 칭찬 릴레이 주자에 대해 물으니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말을 뗀다. 
“우리 방골회 친구들이 다 고맙고 든든하지요. 그 중 한 사람을 고르라면 그래도 고향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마을 느티나무 구실을 한 병연 기공사 이병연 친구를 꼽고 싶네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해요. 고향을 지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거든요. 저야 한참 나왔다 들어왔지만, 이렇게 고향에 있어준 친구가 있었기에 저도 잘 고향에 잘 접을 붙였던 것 같아요.”
그는 옥천은 살기 정말 좋다고 말했다. “공기도 맑고, 삭막하지도 않고 정말 사람사는 곳 같아요. 친구들과 지인들과 이렇게 어울렁 더울렁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죠. 아들도 한전 옥천지사에 있다보니 자주 들린답니다. 열심히 몇 해동안 지은 호두농사도 농장 좌판에서 다 팔 정도로 인기가 좋구요. 고향은 저에게 제 2의 인생을 선물해 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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