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문산에서 삼대 한 가족이 군북 소정에 둥지틀다
4월말부터 두부 전문 음식점 개업, 파주 장단콩두부 맛을 선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주거와 생활공간을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일이란. 살아온 경험의 익숙함과 관계의 친밀함을 단번에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가족이 엮여 있는 경우에는 이주에 늘 갈등의 파열음과 아픈 생채기가 덧난다. 이어진 관계에 대한 미련이야 누구나 공통적이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다르다. 어릴 수록 친구에 대한 애착관계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주를 결정했던 것은 아마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위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가 떠난 후, 가족은 새 곳에서 새출발을 도모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먼 친척의 연으로 제일 어른이었던 할머니 원윤자(75)씨가 옥천을 방문한 후 판도는 이미 정해졌다. 선선한 공기로 눈이 다 맑아졌다는 것이 첫 마디였다. 파주 문산도 DMZ(비무장지대) 인근으로 자연환경이 보존된 곳으로 손에 꼽히는 지역이지만, 최근에 개발의 광풍이 막 치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신도시와 산업단지가 인근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옥천이 더 맘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원윤자씨의 말에 한번도 와본 적 없었던 옥천에 덜컥 이주를 계획했던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집이 마침 있었다. 삼대가 두부를 주제로 식당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터, 식당과 살 집이 같이 붙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옛 37번 국도변 군북면 소정리 식당가 진수성찬 옆에 건물을 매입하고 한달 넘게 리모델링을 했다. 온 가족이 모아놓은 돈을 전부 투자했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 새로운 곳에서 멋지게 출발하고 싶었다. 떠날 때까지 왜 우여곡절이 없었을까. 장남인 준하(31)씨도, 차남인 현하(28)씨도, 그리고 이제 중학교 3학년인 현비(15)도 많이 힘들었다. 한창 만나고 의지할 친구들이 다 파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집의 가장으로 역할을 하는 준하씨는 내색을 하지 못했고, 차남인 현하씨도 마음 다 잡고 가족과 함께 일을 해보려고 따라왔다. 문제는 막내였다. 한참 친구들과의 우정이 깊어지는 순간, 떨어지려고 하니 어찌 발이 쉬이 떨어졌겠는가. 몇 번을 울고 오빠랑 파주에 따로 살면 안 되겠냐고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지만, 온 가족의 설득에 옥천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아무래도 어머니 정우정(51)씨의 결심이 컸던 탓이기도 했다. 

 

■ 파주에서 구름타고 바람따라 옥천에 왔다
옥천에 왔다.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기와 생선은 자칫 비릿한 냄새가 베일 수 있어 두부를 주제로 한 음식점을 열기로 결의했다. 이 결정에는 파주의 유명한 특산물인 장단콩으로 두부를 만들어본 적 있는 원윤자씨의 경력과 입김이 가장 크게 작동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그래서 더 희소가치가 생겨 더 유명해진 곳, 대한민국 최초 보급품종으로 파주시 장단면 민통선 안에 대부분 경작지가 있다. 그래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통행증을 발급받아 들어가야 비로소 진짜 장단콩을 구할 수 있다. 임진강이 만들어놓은 충적평야와 거대한 구릉들이 연결되어 있는 장단평야는 물빠짐이 좋고 심한 일교차로 인해 콩의 맛을 최상급으로 올려준다. 원윤자씨는 사돈이 민통선 안에 살기 때문에 쉽게 장단콩을 얻을 수 있었다. 옥천에서 장단콩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두부로 만들어 농축된 장단콩 맛을 선뵈고 싶었던 것이다. 두부를 만드는 것은 옛날부터 이골이 났던 터라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두부를 그렇게 싫어했던 장남 이현하씨가 장단콩 두부 만들기 승계자로 적극 자원해 기쁜 마음으로 가르쳤다. 차남인 준하씨는 어머니 정우정씨와 요리를 맡았다. 이렇게 진용이 짜여지면서 순조롭게 식당을 개업할 수 있었다. 삼대 한 가족 5명이 이주를 온 것이다. 사람에 목말라 있던 옥천에, 인구 증가에 목을 메고 있는 옥천군이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 더 큰 꿈 자립, 자급 농업을 위하여
건물만 구입한 게 아니었다. 바로 인근에 논과 밭은 1천여 평 이상 구매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쓰겠다는 것이다. 김치나 고춧가루를 수입산으로 구매하지 않고 자급해서 쓴다는 계획을 천명한 것. 농촌 가정식 두부 백반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어떻게든 잘 차려주려 하고 건강식으로 먹이려 하잖아요. 할머니가 손주에게 주던 그 밥상,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던 그 밥상을 그대로 선물하고 싶었어요. 우리 가족은 다들 비위가 약해 국산이 아니거나 조미료를 넣은 음식을 먹지 못해요. 그래서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국산 재료만 고집하고 있고,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지요. 직접 김장한 김치, 농사지은 쌀로 대접하려 해요.” 올해는 파주 장단콩 1년치와 파주쌀을 가져와 파주식으로 1년 장사를 해볼테지만, 계속 파주식을 고집할 지, 아니면 옥천식으로 바꿀 지는 여전히 가족들간에 논의중이다. 쌀은 떨어지면 일단 옥천에서 농사지은 것을 쓰려고 하지만, 콩은 장단콩 특유의 맛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옥천콩을 쓸 지는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 옥천이 벌써부터 마음에 들어온다
“이웃들이 여간 친절한 게 아니에요. 농사지은 것 가져다 주시고 안부 물어주고 식당 잘 되나 대신 걱정해주고, 리모델링 도왔던 인부들도 해준 동태찌게 맛을 보더니 이것은 꼭 메뉴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추해주고. 그래서 두부 메뉴에 동태찌게가 생뚱맞게 들어가 있어요. 동태찌게를 빼느냐 마느냐 가지고 가족간 토론도 벌였는데 결국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 넣어보자고 결정되어서 넣은 거에요.”
옥천으로 이주를 최초 결심한 원윤자씨는 “파주에서 구름타고 바람타고 옥천에 왔네요. 처음에는 걱정도 했는데 이웃들이 많이 반겨주시고,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옥천이 너무 좋아요”라고 본인이 한 결정에 흐뭇해 하고 있었다. 
정우정씨도 미로처럼 생긴 집이 재미도 있고 산을 약간 깎아 만든 뒤뜰이 그렇게 맘에 들 수가 없다. 장독대와 큰 바위가 잘 어우러져 그 뜰에 가면 비밀의 정원에 온 듯하다. 그리고 두부꽃 식당 앞 화단을 가꾸는 게 정말 보람있다. 꽃이 피니 환해진다. 
준하씨는 주말이면 파주에서 친구들이 잔뜩 내려와 머물다 간다. 주말에도 영업을 하니 보고 싶은 친구들이 내려오는 수밖에, 현하씨는 일단 자리잡을 때까지 친구들과 연락을 안 하기로 했다. 요리에 전념하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것. 요리를 맛보고 맛있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떄마다 보람이 한움큼씩 맘에 들어온다. 제일 저항이 심했던 현비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도 못 볼 처지에 처했지만,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카톡방에 초대되고 그러면서 새 친구들과 연락하며 벌써 왕래를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아직 파주 친구들이 마음에 깊이 남아있지만, 옥천 친구들도 마음 한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 반가운 신호다. 

 

■ 두부 요리의 시작과 끝
두부 맛을 알지 못했던 장남 준하씨는 요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드디어 두부의 고소한 맛에 반한 것. 여러가지 검색을 해보면서 두부를 다양한 모양으로도 만들고 있다. 네모 반듯한 두부가 아니라 칼을 대지 않는 두부 보기만 해도 자연스러운 타원형 비스므리한 두부 형태를 내어 온다. 두부 한모에 7천원인데 얕은 구릉 모양처럼 생긴 두부를 보면 정겹다.  
 “흔히 볼 수 있는 각지고 네모난 두부가 아니라 면포에 두부를 한 모씩 만들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요. 딱딱하지도 않구요. 맛있게 드시고 포장해달라고 하시는 말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준하씨는 어느새 두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두부 한모는 고춧가루를 뺀 들기름으로 볶아낸 볶음 김치와 고춧가루로 붉게 무친 무채를 대접하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이 집의 또 하나의 특별한 메뉴 순한 순두부이다. 양념을 전혀 하지 않은 순한 순두부는 간장만 곁들여 먹는 메뉴이다. 옥천에는 순한 순두부도 고춧가루 양념을 하지만, 두부꽃 식당은 하지 않기로 했다. 두부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두부꽃의 수육도 독특하다. 무채와 볶음김치를 사용해 김장했을 때 먹는 방식으로 만든다. 두부삼합은 두부, 팽이버섯, 마늘, 그리고 관자를 모두 구워 내보낸다. 조림류와 찌개류에는 솥밥이 제공된다. 전골, 보쌈, 동태찌개 그리고 사이드 메뉴의 경우는 밥을 따로 주문받는다. 두부꽃에는 공기밥은 없다. 오래 보관한 밥에서 나는 냄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 솥밥만 제공한다.
그리고 인기 만점 오징어두루치기와 돼지 두루치기에도 두부가 곁들여 있다. 두부 부침은 철판에 두부를 가져다 주면 직접 원하는 식성대로 구워먹는 메뉴이다. 원윤자씨는 두부를 만드는 장남 이준하씨가 대견하고, 이준하씨는 한창 놀 때인 동생이 요리에 전념하는 것이 기특하다. . “어휴, 처음에는 ‘내가 두부를 만들 줄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두부에 자부심을 느끼더라고. 우리 큰 손자가 자랑스러워요” 
이준하씨는 주방에서 한창 요리를 하고 있는 동생을 보며 “동생이 철이 들었는지 친구가 오는 것도 말려가며 열심히 일해요. 오게 되면 마음이 해이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오자마자 칼질부터 배웠는데 어느새 능숙하답니다”라고 말했다. 강릉원주대에서 체육학과를 나온 이준하씨는 조금 여유가 생기면 옥천에 있는 청년들과 교류하며 생활체육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하지만, 일단 두부꽃 식당이 자리잡는게 먼저라 한눈 팔 새가 없다. 

 

■ 개업한 지 한달이 지났다
나쁘지 않다. 입소문이 나면서 한분 두분씩 찾아온다. 반갑고 고마운 것은 재방문 손님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8시부터 만든 두부 량이 떨어지면 장사를 일찍 접는다. 맛과 신선도, 지속가능성 때문에 무리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두부꽃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장사를 시작해 오후 8시 반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은 휴무이다. 매일 신선한 두부를 제공하기 위해 이준하씨는 하루에 3-4시간씩 매일 두부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두부를 활용한 요리는 당일 두부가 떨어지기 전까지만 판매하고 있다. 원윤자씨는 “매일 8~10kg을 만드는데 어떤 날에는 오후 4시에서 5시만 되어도 두부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 날은 어쩔 수 없이 두부요리를 더 판매하지 못하지요”라며 “정식 오픈을 하지 않고 가게 문만 열었는데 감사하게도 한 번 오신 분이 또 와주시고, 다른 분들도 데리고 와주세요. 어떤 분은 한 달에 7번을 오시기도 했어요. 이렇게 조금씩 자리 잡을 수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파주 문산에서 구름타고 바람따라 옥천으로 이주해 온 삼대 한 가족, 그들의 번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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