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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옥천 인물발굴 윤중호(7)] '흙'에서 시작한 윤중호와 삶의문학 동인들
[기획-옥천 인물발굴 윤중호(7)] '흙'에서 시작한 윤중호와 삶의문학 동인들
  • 오정빈
  • 승인 2019.10.03 06: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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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호 숭전대 대학 동문 조기호씨 인터뷰(1)
‘김종철 선생 만나 윤중호 시 세계 확장’
대전 대표 동인지 '삶의문학' 창간에도 참여
"풀뿌리, 이 땅의 정신을 회복해야"

[기획-옥천 인물발굴 윤중호(7)] “흐드러지듯, 흰 날개짓에 묻어나는/가벼운 현기증/노란 취기의 아지랭이에, 아찔한/겨울초 꽃//열 개의 손가락으로 열을 셀 수 없는 자들이거나/네 개의 손가락으로 열을 셀 수 없는 자들이거나/꿈을 버려야 사는 자들이, 한움큼씩/꿈붙이에 실려주는,/헐리운 생선회집의 담장 근처나/천주교 공원묘지의 천사상 주위로/심심하게, 서성대는 바람.//동백섬은 붉게 타는데/잃어버린 여섯 개의 손가락이/유난히 시려운 새벽바다가/불끈 적셔대는, 샛노란/겨울초 꽃” 시 ‘용호 2동’

시 ‘용호 2동’. 1979년 스물네살 윤중호가 부산 기동대에서 군 생활을 했을 당시 쓴 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부산 용호 2동은 당시 문둥병 환자를 격리해놓은 유명한 빈민촌이었다. 정권은 79년 10월 부마항쟁을 예견한 건지 79년 초 다른 지역 기동대까지 부산 기동대로 전출시킨다. 충남 부여 기동대에서 군생활을 하던 윤중호도 부산으로 왔다. 시를 보면 알 수 있듯, 암울한 시국 속 무기력함과 불안에 떨면서도 시인은 그가 만나는 사람의 삶을 촘촘히 기록한다. ‘윤 시인은 애초에 타자의 삶에 관심이 많았을까요’ 질문에 조기호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대학시절 김종철 선생님을 만난 게 저도 그렇고 윤 시인에게도 ‘개안(開眼)’에 가까웠던 경험이었어요.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죠.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문학계는 참여문학보다 순수문학이 대세잖아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윤중호와 제게도 유미주의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김종철 선생을 만나게 된 거죠. 그 분이 숭전대 전임강사로 왔을 때 이야긴데, 혹시 김대두 사건을 알까요? 대학 입학한 해였던 1975년에 벌어진 우리나라 최초 연쇄살인사건이었는데, 그때 김종철 선생은 '김대두는 왜 살인마가 됐을까?' 저희에게 물었죠.” (조기호,64,충남 예산군 예산읍 주교리)

오롯이 개인만의 문제인 일은 없다. 어떻게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가. '김대두는 왜 살인마가 됐는가'부터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회 이면의 이야기가 선생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개인사를 두고 괴로워하는 일이 많았던 윤중호의 세계가 확장되고 또 관념적이었던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김종철 선생을 만나고부터에요. 용호 2동도 윤 시인이 변모하던 시기 쓴 시죠."

지난달 24일 충남 예산군에서 만난 조기호(64)씨

 ■ 시란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쓰는 것

윤중호의 산문집 '느리게 사는 사람들'에서도 김종철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전 숭전대(현 한남대) 1학년 윤 시인은 그가 가입한 여명문학회의 시화전을 준비한다. 마침 김종철 선생이 윤중호 시인더러 '준비한 시를 가져와봐라' 말했다. 윤 시인이 가늠해보기에, 선생이 분명 쓴소리를 좀 하실 거 같았다. 부러 시 하나는 그가 몇 달간 끙끙거리며 쓴 시로, 또 다른 시 하나는 쓴소리용으로 바로 전날 급하게 끄적거린 시 하나를 준비해 구색을 맞췄다. 그런데,

"그래서 두 편을 냈는데, 역시 대충 읽어보던 슨상님이 한 편을 꾸깃꾸깃 하려는 찰나 나는 급하게 선생의 손을 잡았는데, 잘못되었던 것이다. 선생은 모질게도 내가 대충 쓴 걸 내비두고 비장의 무기처럼 내밀었던 시 '한반도(恨半島)를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산문집 '느리게 사는 사람들' 중 '정규 앞골목 사부님인, 근본주의자 김종철'

"슨상님, 아닌디요?"

"뭐라꼬?"

恨半島
(……)
아! 여기 자기네 땅에서
가슴을 저당잡힌 채
팔려가는
恨半島여.
恨半島여.

선생은 '한반도가 팔려가는 걸 니가 직접 봤나?' 멀뚱히 묻더니, 시인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시는 짐작으로 쓰는 게 아이야, 그리고 시가 네 주장 하는 글이야? 자기 주장을 목청껏 외치면 그 주장 어디에 감동이 낄 틈이 있나? 네 조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확실히 알라믄, 그걸 확실히 알라믄 사회학 해라. 정말 확실히 아는 시인은 그걸 그렇다고 안 쓰는 법이야. 정말 확실히 아는 놈은 현학적으로 안 써. 잘 모르니까 현학적이 되는 거지. 정말 알면 아는 척 안 하고서 누구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도대체 구체적인 자기 이야기가 엄써, 상상력은 어디다가 쓸 거야. 이렇게 판화 찍어내듯 쓸 거야?" 산문집 '정규 앞골목 사부님인, 근본주의자 김종철' 중

윤 시인뿐 아니다. 삶의 현장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김종철 선생의 이야기 방식은 숭전대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삶의문학' 동인(윤중호 포함)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삶의문학 6집에서 나온 농민공동창작시 '옹매듭도 풀구유'가 그렇다. 

"저희 동인 중 한 명이 공주 반포면 쪽 농민들을 잘 알고 지냈는데, 그쪽 농민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친해지고 하면서 '아, 이 사람들의 시를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사랑방에서 농민들 사는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그걸 녹음해놨다가 나중에 정리해서 주제별, 흐름별로 나누고 다시 행갈이를 하고… 연작시를 만들었어요. 제목은 '옹매듭도 풀구유'였는데 이게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죠. 당시 지식인들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는데 성급하게 접근하다보니 이게 '계몽주의'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또 '민중문학'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민중은 생산자도 수용자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이에 반해 삶의문학 동인들이 쓴 ‘옹매듭두 풀구유’에는 민중, 농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어있다.

"1. 탑제-서시-/깨겡 깽깽 깽메깽, 깽쇄를 치구/두둥 둥둥 둥두둥, 북을 울려유./오늘은 한바탕 놀아나 보세/-작년 가뭄 물꼬싸움 때 과져버린/옹매듭두 플구유./소지 태우듯 태워버리자구유. 평소에/미워하든 관(官)두 나와유. 양짓말 늑대두/나오구유. 나와서 수백년 묵어/이 마을 지켜본 둥구나무 밑에 모여/탑제를 지내자구유. 올해는 제발/생산 뭇헌 분덜 애들두 쑥쑥 잘 낳구./(중략)/걷음걷이에 돈 한푼이라두 낸 분덜은/이름을 창호지에 적어서 제사가 끝난 다음/소지를 혀유. 동네 애덜두 다 모여라./허다 못 해 떡 한조각씩알두 나눠 먹자./깨겡 깽깽 깽메깽, 지징 징징 징지징,/인생이 살믄 백년을 사남유./소지 태우듯 얼크러 설크러/신명나게 놀아나 봐유, 흥겹게." 삶의문학 공동창작농민시 '옹매듭두 풀구유' 

‘옹매듭두 풀구유’는 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다.

“농민공동창작시 「옹메듭도 풀구유」를 만들어낸 대전의 「삶의 문학」동인들은 지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인중의 하나다./박용남 유학림 김여수 이은봉 전인순 전무용 윤중호 조기호 정영상 이재무 이은식 채진홍 조만형 황재학 강병철 김영호 임양묵 장중석 최교진씨 등 30대 초반 문인들이 뚤뚤 뭉쳐있다./『문학을 문인의 것만이 아니고 농민들 스스로 자기들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지방문학이 아닌 한 지역이면서도 전국적인 공통성을 지니는 지역문학을 이루어 냄으로써 우리문학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욕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중앙일보 1984년 11월13일자 기사 “대전 ‘삶의문학’ 동인”

조기호씨나 윤중호 시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 접근해야 한다’는 김종철 선생의 이야기는 80년대 대전 대표하는 동인지였던 ‘삶의문학’의 표지를 설정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김종철 선생도 그의 제자들에 대해 고백한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그가 ‘삶의문학’ 동인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 '삶의문학'이 가진 실제 동력은 그들 내부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김종철 선생이 윤중호 시인의 마지막 시집 '고향길'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음을 함께 전한다. 답은 풀뿌리, 이 땅의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대개 인근 농촌 출신의 대학생인 그들에게는 정치적 독재에 대한 강한 반감 외에 가령 서울의 대학생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강한 자의식이 있었다. 즉, 그들은 새마을 운동이니 뭐니 하는 소용돌이 가운데서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농촌의 살림살이에 비추어 자신들이 대학에 다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늘 괴롭게 자문하고 있었다. (중략) 그러는 동안 (나는)흙에 뿌리박은 삶을 경시하는 어떠한 근대적 사회 변혁의 논리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점점 깊이 열중하게 되었다." 김종철 '우리가 모두 돌아가야 할 길'

앞줄 가장 오른쪽이 조기호씨, 그 옆에 앉은 사람이 윤중호 시인이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금강 언저리에 놀러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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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다시다 2019-10-03 11:04:40
잘 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