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홍경화씨 인터뷰(2)

또렷이 기억한다. 아들이 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알 수 있길 바랐던 만큼, 남편 윤중호 역시 스스로 '삶이 외롭고 허기진 사람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되길 바랐던 사람이었다. 누가 신상을 물으면 실제로 어떻든 '괜찮아유', '별 일 없쥬' 이야기했다. 상대의 푸념을 묵묵히 들어줬고, 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미주알고주알 히히덕거리며 술병을 비웠다. 가까운 동료 문인부터 만난 지 몇 분 안 된 택시기사까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집에 데려왔다.

매일같이 오는 손님에 한번은 홍경화씨가 퉁명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적이 있었다. 윤중호씨는 홍경화씨에게 '손님 가구 나서 나한테 화를 내라. 집에 온 손님은 누구든 잘 대접해 보내구 나서'라고 말했다. "(윤중호는)선후배나 친구로선 좋죠. 남편으로선 영...(웃음)" 속 터진 날을 이루 셀 수가 없었단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자 한통이 왔다. "고생하셨어요. 밥도 한끼 못해줘서 미안해요. 담엔 밥 한끼 하자구요." 홍경화씨다. 일하다보면 종종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는 듣는다. 그런데 밥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끼가 되고 싶다는 마음. 

윤중호씨가 있었다면 꼭 이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돌아서는 길, 어쩐지 마음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윤중호 시인과 아내 홍경화씨

홍경화(58,경기도 고양시)씨가 윤중호씨를 처음 만난 건 1985년 즈음 한샘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을 때다. 한샘출판사가 청소년잡지 '우리시대'를 새로 만들었고, 윤중호씨가 우리시대 편집장으로 들어왔다. 윤중호씨는 82년 숭전대학교(현 한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와 잡지사 등을 전전하며 편집·취재기자로 일하다 한샘출판사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잡지가 얼마 못 가서 망했어요. 부서 사람들은 뿔뿔 흩어졌고요. 그래도 윤중호씨는 출판사에는 간간히 찾아왔어요. 어느날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이 여자는 나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구요(웃음). 그런데요, 그렇게 여차저차 연애를 시작했는데 저흰 한 번도 둘이서 데이트한 적이 없어요. 혹시 오늘은 둘이서 데이트하는 걸까? 가보면 사람들은 북적북적하고 늘 술판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윤중호씨 '최대 장점'이 여기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누구 하나 그 자리를 낯설어하거나 덜렁 동떨어질 법도 하다. 그런데 윤중호씨가 있는 자리에서는 처음 자리에 참석한 사람도 금방 분위기에 동화됐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2차로 자리를 옮기는데, 그 사람이 술이 기분 좋게 오르면 하는 특유의 춤사위가 있어요. 손을 앞뒤로 흔들고 다리를 지그재그로 '훗훗' 소리 내면서(웃음) 앞장서서 걸어가면 친구들도 줄지어 흉내내면서 '훠이훠이' 가는 거예요(웃음). 전 술을 못 마시거든요. 그래서 말짱한 정신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찌나 웃긴지."

 

■ 아무리 잘난 척하며 살아도 결국 모두 측은하기 짝이 없는

윤중호 시인과 아내 홍경화씨

윤중호씨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잘난 척’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무리 잘난 척 하면서 살아도 내놓고 보면 사람은 결국 모두 다 똑같이 병들고 죽는, 측은하기 짝이 없는 중생들이다. 그런 까닭에 동료 문인부터 만난 지 얼마 안 된 택시기사까지,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 택시기사’ 이야기는 여전히 웃음이 나온다. 오전 2시30분, 평소와 다름없이 취기가 오른 윤중호씨가 웬 낯모르는 낯선 사람과 문 앞에 서 있었다. 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을 ‘여기 이 분을 태워온 택시기사다’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이 ‘우리 홍경화가 타 주는 차를 꼭 한 잔 마시고 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서요. 오는 내내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하셔서 홀리듯 여기까지 따라왔네요. 선생님이 홍경화이신가요?”라고. 그만 웃고 말았단다. 결혼하고 나서도 둘이 있었던 적이 얼마나 됐을까?

택시기사뿐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은 윤중호 시인이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다음은 시 ‘질경이’의 일부분.

"(상략)글쎄 올핸 사과값이 똥값이랴. 품삯 빼구, 농약값 빼구, 또 당나구 귀 빼구 거시기 빼구 말짱 허당이랴. 썩을 것들, 독마다 그득히 사과술이 넘쳐나는데, 붸가 나서 술에 손두 안 대고선 애꿎은 담배만 축내는디, 나는, 고집스런 성님의 어깨 뒤에서 사과술만 축내다가 코맹맹이 소리루, "성님, 잘 될 테쥬?" 어쩌구 흰수작을 부리는데, 경운이 성님, 멕칼 읎이 피식 웃더니, "잘 안 되면 오칙헌대니, 씨팔, 다 절단낼겨"//성님 옆댕이에 앉아서 금강을 보니, 지랄헌다, 금강이 나보다 먼첨 뻘겋게 눈자위가 무르던걸……" 시 '질경이 5 ―경운이 성님' 중

가난하고 슬픈 이웃을 제 몸처럼 끌어안고 운다. 

"(상략)뒷구리 상일꾼인 한철이 아저씨는, 그예 폐농을 하고 "여기서부터 차는 가지 않습니다" 성북역 전철 앞이서 우연찮게 만났는디, 서울판에서 기술 없는 노가다루 떠돈다는 거 아뉴? (중략)/떡 벌어진 어깨와 허드레 장승만헌 키, 소두방 뚜껑 같은 손으루 무얼 못 하겠냐만 아깝잖유. 등짝이 벗겨지두룩 갈은 고래실 논이 그렇구, 당재 밭이 그렇구, 한철이 아저씨만 가면 성님 성님 허구 따라나오던 금강 물괴기가 그렇구, 증말 속상헌 건 그 순헌 눈에 날이 섰더라니께유?/눈이 썸먹해져서 데면데면 서 있응께, 워치게 먹구 사냐구, 되지못한 말로 등쳐먹고 산다니께, 알겠다구 알겠다구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담배 한참 피고는 빨리 가봐야 한다고 서둘러 계단을 오르더니 거시기한지 돌아보매, 손짓을 하매, 머뭇거리다가/"욕봐이!"/이 나이에 울 뻔했다니께?" 시 '한철이 아저씨' 중

홍경화씨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무엇인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 ‘시래기’를 이야기했다. ‘시 시래기만큼 윤중호를 잘 보여주는 시는 없는 거 같아요’라고.

"곰삭은 흙벽에 매달려/찬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배배 말라가면서/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시 '시래기' 

터덜터덜 완행버스를 타고 오지를 지나는데 외딴집 흙담에 지난 겨울 시래기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니 갑자기 이제껏 해온 일들이 누추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다 나는 ‘따뜻한 시래기죽 한 그릇’도 못되지 않을까? 시인은 사람을 보듬고도 더 끌어안지 못해 걱정했다.

윤중호 시인은 기자로 활동하면서 전국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진은 이원초등학교 운동회 취재를 갔다가 아들 두레와 함께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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