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입춘날 맞아 입춘첩 써주기 행사 열려
옥천미술협회 서예인 재능기부로 기획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열린마루에서 진행

하늘이 도왔을까. 비 내리고 찬 바람 불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근래 가장 푸근한 날씨를 보였다. 갑진년 새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24절기 중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새해 첫 번째 절기 ‘입춘(立春)’.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이지만, 태양의 움직임이 입춘시를 기점으로 바뀌는 중요한 날이다. 선조들은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입춘을 각별하게 여겼다. 생명의 새싹이 힘차게 솟아나듯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이뤄지길 염원했다.

새로운 계절의 시작인 봄의 문턱 앞에 봄을 축하하고 복을 기원하는 우리나라 세시풍속이 있다. 해마다 입춘시가 되면 집집마다 대문이나 대들보, 천장에 좋은 뜻이 담긴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였다. 한 해의 액운을 막고 다복과 경사를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흔히 아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대표적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한다는 뜻이다.

춘첩자(春帖子), 입춘방(立春榜)이라고도 불리는 입춘첩 붙이기 풍습은 주거 형태가 달라졌어도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가족과 이웃끼리 덕담을 주고받는 구실을 한다. 입춘이 되면 글솜씨가 뛰어난 문인들이 실력을 발휘했다. 인문정신은 예술로 기록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 오래도록 남는다. 2024년 옥천에도 입춘첩을 만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2월4일 입춘을 맞아 우리고장 서예인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4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관 열린마루에서 '입춘첩 써주기'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옥천미술협회(회장 박창식) 소속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입춘첩을 무료 배부했다.
4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관 열린마루에서 '입춘첩 써주기'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옥천미술협회(회장 박창식) 소속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입춘첩을 무료 배부했다.

■ 옥천을 알리고 군민들과 화합하는 장

지난 4일 오전 10시30분 옥천미술협회(회장 박창식)가 ‘세시풍속 입춘 맞이 입춘첩 써주기’ 행사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관 열린마루에 열었다. 입춘 절입시간은 2월4일 오후 5시27분. 오후 3시까지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옥천미술협회 회원으로 서예 활동을 하고 있는 고산 이정우, 백운 박정훈 씨가 붓을 들었다. 이들은 한지에 먹과 붓을 활용해 각각 해서체, 초서체로 써 내려간 입춘첩을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배했다.

회원 33명이 있는 옥천미술협회는 재능기부 형태로 이날 행사를 기획했다. 박창식 회장은 “옥천미술협회 김승애 부회장님의 아이디어로 군민들과 화합하고 옥천을 알리자는 차원으로 행사를 열었다”며 “군에 협조를 구해 전통문화체험관에 장소를 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 옥천미술협회가 군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게끔 힘쓰고 싶다”며 “군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옥천미술협회 박창식 회장이 한지에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쓰고 있다.
옥천미술협회 박창식 회장이 한지에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쓰고 있다.
옥천미술협회에서 활동 중인 백운 박정훈 회원이 초서체로 입춘첩을 쓰고 있다.
옥천미술협회에서 활동 중인 백운 박정훈 회원이 초서체로 입춘첩을 쓰고 있다.

입춘첩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함께 ‘수명이 푸른 남산의 솔과 견주어라’는 뜻으로 나이가 든 어르신이 사는 집에 어울리는 수비남산(壽比南山), ‘뜻하고자 하는 일을 모두 이루어라’는 뜻의 만사여의(萬事如意)와 만사형통(萬事亨通), ‘때가 화하여 해가 풍요로워라’는 뜻으로 풍년농사를 바라는 댁에 적절한 시화연풍(時和年豊),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들어오라’는 뜻으로 일반 가정에 많이 쓰이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이 주로 쓰였다.

예부터 조선시대 삼정승, 육조판서가 사는 양반집은 입춘대길이라는 덕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충분히 지녔다. 그리하여 대문 오른쪽에 범 호(虎), 왼쪽에 용 룡(龍) 자를 붙였다고 한다. ‘함부로 달려들지 말라’는 양반의 위엄이 드러나는 표식이다. 이날 행사에 찾아온 육영수생가 시니어일자리 총반장 이규상 씨는 올해도 변함없이 생가 대문 앞에 붙일 한자 虎, 龍을 요청해 받아가며 한 해의 길운을 기원했다.

옥천미술협회에서 활동 중인 고산 이정우 회원이 한자 용(龍)을 쓰고 있다.
옥천미술협회에서 활동 중인 고산 이정우 회원이 한자 용(龍)을 쓰고 있다.
육영수생가 대문에 붙일 용 룡(龍), 범 호(虎).
육영수생가 대문에 붙일 용 룡(龍), 범 호(虎).

■ 올 한 해 가족의 건강과 행운 염원

이날 옥천에 온 관광객들도 행사장에 들렀다. 서울에서 온 정찬웅(33) 씨는 외할머니 생신 겸 가족 모임으로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숙박하러 행사 전날 옥천에 왔다. 그는 이번에 받아간 ‘입춘대길 건양다경’ 입춘첩을 집 현관문에 붙일 계획이라고 알렸다. 정 씨는 “외할머니가 청주에 사는데 운 좋게 입춘날 옥천에 놀러 왔다”며 “새해에는 할머니도 그렇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정찬웅 씨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쓰인 입춘첩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온 정찬웅 씨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쓰인 입춘첩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충남 아산에서 온 이창우(45) 씨 또한 ‘입춘대길 건양다경’이 쓰인 입춘첩을 받아 갔다. 그는 직장동료 가족과 함께 가족 모임으로 옥천에 놀러 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하룻밤 숙박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입춘첩을) 보면서 절기도 배우고, 또 한자가 요새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떤 한자인지 알려주면 자연스레 공부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올해 제일 바라는 건 가족 건강이고, 가족 모두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산에서 온 이창우 씨 가족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쓰인 입춘첩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아산에서 온 이창우 씨 가족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쓰인 입춘첩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전에서 온 박정옥(48) 씨는 ‘입춘대길 만사형통’ 입춘첩을 챙겨 갔다. 입춘첩을 어디에 붙일지 묻자 옆에 있던 딸 신서연(11) 씨가 “내 방이요”라며 해맑게 말했다. 이들 가족은 문화행사 체험을 하러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들른 계기로 이번에 세 번째 방문했다. 박 씨는 “어제 숙박하고 돌아다니다가 입춘첩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며 “(입춘첩을) 예쁘게 써주셔서 감사하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온 박정옥(오른쪽) 씨와 딸 신서연(왼쪽) 씨가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이 쓰인 입춘첩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에서 온 박정옥(오른쪽) 씨와 딸 신서연(왼쪽) 씨가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이 쓰인 입춘첩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입춘첩 써주기 행사는 옥천미술협회 서예인들의 재능기부와 함께 군 협조로 장소 대여가 이뤄져 진행될 수 있었다. 군 문화관광과 관광정책팀 유정미 팀장은 “옥천미술협회에서 지역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좋은 취지의 행사를 기획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며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춘 옥천을 알릴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번처럼 뜻깊은 행사가 열리면 언제든 협조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일과 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 관성관 자율체험코너에서 ‘내가 쓰는 입춘첩’ 행사가 함께 열렸다.

열린마루 창문에 입춘 절입시간과 '입춘대길 만사형통'을 알리는 한지를 붙여놨다.
열린마루 창문에 입춘 절입시간과 '입춘대길 만사형통'을 알리는 한지를 붙여놨다.
입춘대길 수비남산(立春大吉 壽比南山). 수명이 푸른 남산의 솔과 견주어라는 뜻이다.
입춘대길 수비남산(立春大吉 壽比南山). 수명이 푸른 남산의 솔과 견주어라는 뜻이다.
4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열린마루 앞에 입춘첩 써주기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거치대가 놓여 있다.
4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열린마루 앞에 입춘첩 써주기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거치대가 있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