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19일 김성장 손글씨전 ‘모란타투’ 열려
동이면 용죽마을 출신 시인이자 서예가 김성장 첫 전시
옥천전통문화체험관 개막전에 각계 인사 50여명 참석
옥천과 대전, 세종, 서울 등 지역 순회 전시 펼쳐

글맛이 살아있다. 시, 소설, 평론 등 분야를 막론하고 ‘쓴다’는 행위를 즐긴 천상 글쟁이다. 붓글씨를 단련한 지 30여년. 동이중학교 교사 시절, 평거(平居) 김선기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낮에 직장 다니고 저녁에 붓글씨를 배운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갓난아기를 들쳐 안고 학원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붓글씨를 써 내려갔다. 이후 고(故) 신영복 선생의 서체와 사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길을 찾았다.

삐뚜루빠뚜루. 1997년 당시 옥천상고(현 충북산과고) 교사 동료는 오늘날 시인이자 서예가인 김성장(65) 서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글씨를 하나하나 보면 길고 짧고, 크고 작고, 줄도 못 맞추는데 멀리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는 것.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면 말없이 끝까지 가는 사람, 누가 믿어주든 안 믿어주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잘 했든 못 했든,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가야 하는 길이면 끝까지 가는 사람. 붓글씨에 김성장이라는 사람이 보인다는 증언이었다.

지난달 11일부터 19일까지 김성장 손글씨전 ‘모란타투’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송찬호 시인의 시 27편과 김성장 시인의 시 3편, 동요 2편을 붓글씨로 표현했다. 사진은 송찬호 시인의 시 '동백이 활짝'.
지난달 11일부터 19일까지 김성장 손글씨전 ‘모란타투’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송찬호 시인의 시 27편과 김성장 시인의 시 3편, 동요 2편을 붓글씨로 표현했다. 사진은 송찬호 시인의 시 '동백이 활짝'.
김성장 시인의 시 '할머니'.
김성장 시인의 시 '할머니'.
동요 '섬집아기'.
동요 '섬집아기'.

청주 출생으로 7살 때 가족과 함께 동이면 적하리 용죽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김성장.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장래희망 적는 칸에 ‘화가’라고 쓸 만큼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깊었다. 당시 가난의 굴레 때문이었을까. 동이초등학교, 동이중학교 졸업하고 대구 금오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는데 문학 활동의 끈을 아예 놓진 않았던 그다. 직업군인 생활하고 용접공으로 벌이를 하다 27살 느지막이 충북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국어 선생님이 된 그는 충북 도내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옥천에서는 동이중, 옥천여중, 옥천상고, 청산중, 옥천중 등 여러 학교를 돌았는데 수업 방식이 남달랐다. 모둠수업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의를 끌어냈다.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는 수업,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살아 있는 모둠토의수업 방법 10가지>라는 책도 냈다.

김성장(왼쪽) 씨가 전시 개막 행사를 찾은 손님들에게 싸인을 하고 있다.
김성장(왼쪽) 씨가 전시 개막 행사를 찾은 손님들에게 싸인을 하고 있다.
김성장 씨가 전시에 찾아온 손님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성장 씨가 전시에 찾아온 손님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실용적인 조선시대 민체에 주목

동이중학교 20회 졸업생 최정아 오정숙(46) 씨는 그의 수업 방식을 생생히 기억했다. “동이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학교에서 수업하실 때 조금 남달랐어요. 기존에 하시지 않는 모둠수업, 친구들이 토론할 수 있는 수업을 많이 하셨거든요. 일반적으로 강단에서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듣는 게 아니라 책상을 이어 붙여서 모둠수업을 진행하고, 친구들끼리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학교 담장 안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전교조, 민예총, 노조, 농민회 사람들과 함께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 투쟁했다. 그렇기에 지난 6월13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열린 <삼십년만의 외출 김성장의 손글씨전 ‘모란타투’> 개막 행사에 그를 기억하는 50여명이 자리를 메웠는지 모른다. 6월11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이번 전시는 김성장 시인의 첫 개인전인 만큼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동이면 적하리 용죽마을 출신 김성장 씨가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천과 함께 충북 도내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한 그는 은퇴 이후 전국을 누비며 시인이자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이면 적하리 용죽마을 출신 김성장 씨가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천과 함께 충북 도내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한 그는 은퇴 이후 전국을 누비며 시인이자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모란타투’는 송찬호(65) 시인의 시 27편과 김성장 시인의 시 3편(나팔꽃, 할머니, 흐르는 江물처럼), 동요 2편을 붓글씨로 표현했다. 그가 주목한 건 조선시대 글씨, 흔히 민체라 불리는 것이었다. 어떤 정해진 규격이나 완성도보다 내용 전달 중심의 실용적 목적으로 쓰인 서민들의 글씨에 집중했다. 민체에는 어리숙함, 순함, 얌체같음, 부끄러움, 실쭉샐쭉과 같은 다양한 정서가 담겨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성장 시인은 말한다.

“평거 선생님에게 배운 서예의 획 맛이 저에게 있고요. 이후에 신영복이라는 사람의 글씨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원광대 대학원에서 그분의 글씨를 분석하며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이 썼던 편지글, 소설 필사본과 같은 서민들의 글씨체를 다양하게 공부했습니다. 앞으로 한 10년, 20년 좀 더 글씨를 쓰면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글씨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삶의 현장과 가까운 글씨를 쓰다

김성장의 영원한 동지 조만희(67) 씨가 이날 사회를 도맡았다. 그 역시 30여년 가까이 옥천의 교육과 문화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관내 모든 중학교 교사로 있었고, 옥천의 오지와 명소를 기록해 책을 여러 권 냈다. 또한 전교조, 민예총, 옥천문학회에서 활동하고, 2000년대 안티조선운동 선봉에 섰으며, 군북면 비야리 출신 청암 송건호 선생이 옥천 인물이라는 것을 알리는 일을 해왔다. 그가 인사말을 남겼다.

이날 김성장의 영원한 동지 조만희 씨가 사회자로 나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김성장의 영원한 동지 조만희 씨가 사회자로 나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성장 선생님과 오랜 인연이 있고, 또 옥천에서 교직에 있었기 때문에 옥천과 인연이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퇴직하고 옥천에 오랜만에 오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성장 선생님 스타일이 행사를 번거롭게 하는 걸 원치 않지만, 옥천에서는 조용히 지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 제가 떼를 써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김성장 선생님은 그야말로 서예로 일가를 이룬 분입니다. 서예를 보면 시의 내용에 따라 체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충북 보은 출생인 송찬호 시인은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 등단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시 중 ‘꽃’과 연관된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30여년 가까이 김성장 시인과 친분을 쌓아온 송찬호 시인은 시집에 갇혀 있던 시들을 끄집어내 재조명한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날 김성장 씨와 함께 전시를 기획한 시인 송찬호(왼쪽) 씨가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이날 김성장 씨와 함께 전시를 기획한 시인 송찬호(왼쪽) 씨가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이번에 책으로 발간한 ‘모란타투’ 첫머리에 ‘내가 쓰는 글씨는 이 시대의 글씨’라고 거의 선언하듯이 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아마 글씨가 예술작품으로서 액자에 담긴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씨가 삶이 필요로 하는, 삶의 현장과 가까운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이 김성장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또 김성장의 글쓰기 지론이 현실의 구체적 목적이 있는 곳에 글씨를 쓴다는 말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

심향회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는 평거 김선기 씨는 30년 전 서예를 배운 김성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이미 그의 미래가 그려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말씀드릴게요. 당시 갓난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들쳐 안고 학원에 나오십니다. 아이를 옆에 뉘어놓고 글씨를 쓰는 분이세요. 애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거리가 꽤 됐거든요. 화장실로 뛰어가기 바빴어요.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나라면 이렇게 나와서 배웠을까 늘 그 생각을 했어요. 이 길을 어떻게 걸어가실까 늘 지켜봤습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 과거에 저한테 수학하셨지만, 앞으로 저를 훨씬 뛰어넘을 분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고장 내 심향회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평거 김선기 씨가 30년 전 서예를 배우러 왔던 김성장 시인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고장 내 심향회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평거 김선기 씨가 30년 전 서예를 배우러 왔던 김성장 시인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한흥 옥천신문 전 대표도 이날 자리에 참석했다. “시나 서예보다 막걸리가 좋고, 클래식 음악보다 트로트가 더 좋은 사람입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고요. 김성장 선생님, 한때 정말 미워한 사람이지만 매력 있는 분입니다. 저는 늘 사부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알고 보니 부부 사부님이더군요. 여튼 축하드립니다.”

옥천민예총 창립 시기부터 김성장과 알고 지낸 정천영 옥천민예총 미술분과위원장도 자리에 참석했다. “민예총 초창기에 김성장 선생님과 조만희 선생님을 비롯해 저희가 만들어온 게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두 분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개인전을 수차례 했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서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 좋은 작품 세계가 펼쳐질 거라 기대합니다.”

세종에서 글씨를 배우며 김성장 시인과 함께 활동한 전선혜(오른쪽) 씨가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세종에서 글씨를 배우며 김성장 시인과 함께 활동한 전선혜(오른쪽) 씨가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옥천군의회 송윤섭 의원 또한 인사말을 남겼다. “제가 아는 김성장 선생님은 우리 60대 초중반 사람들이 살아온 평범한 시대상을 밟아 온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국가적으로 경제개발 논리가 주류를 이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낸 분입니다. 그런 삶이 시로, 글씨로 그대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속해서 사람과 함께하는 시인으로, 사회인으로 남길 부탁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승룡 전 옥천문화원장도 자리를 빛냈다. “김성장 선생님은 옥천 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만드신 분입니다. 어떨 땐 선생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문화행정가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문화적인 요소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세상이 융복합 시대라고 하잖아요. 김성장 선생님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창작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시간 서로 호응하고 존경하면서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과거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김성장 씨와 인연을 맺게 된 옥천군의회 송윤섭 의원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과거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김성장 씨와 인연을 맺게 된 옥천군의회 송윤섭 의원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문화원을 매개로 김성장 씨의 활동을 지원했던 김승룡 전 옥천문화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화원을 매개로 김성장 씨의 활동을 지원했던 김승룡 전 옥천문화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마지막까지 ‘성장’을 추구할 사람

군북면 이백리에 사는 김채운 씨는 문화행사를 통해 인연이 된 계기로 이번 전시를 찾았다. 대전작가회의에 소속돼 시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대전에 살다 2년 전 옥천으로 이사해 정착했다. 서정시를 쓰다 이제 현장 참여시를 쓰며 투사가 되었다는 김채운 씨는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추모집회 등에 찾아가 마음을 전하며 세상에 눈과 귀를 열고 시를 써 내려가고 있다. 

“김성장 선생님은 다채로운 필체를 갖고 계셔서 시 맛을 필체로 대변해주시는 것 같고요. 시집을 떠들어 보지 않으면 글씨는 잠든 시나 마찬가지인데 그 장을 한 번 더 수면 위로 깨어놓으신 거잖아요. 읽다 보면 다 들려요. 시인의 내면의 소리를 필체로 한 번 더 들을 수 있게 입체화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정말 시에 걸맞은 필체를 다채롭게 보여주셔서 읽으면서 시 맛이 새롭게 느껴져요. 성함부터가 성장이세요.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하실 분 같고, 건강 잘 챙기면서 계속 좋은 작품들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3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옥천상고, 보은정보고에서 김성장 시인과 함께 교사 생활을 했던 손종만(64) 씨다. 당시 보은, 옥천, 영동, 금산 등 토요일마다 등산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그는 2014년 은퇴 이후 김성장 시인이 학교에서 썼던 글씨 생각이 났더란다. 같이 글씨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4년째.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동행한다는 그는 현재 안남면 지수리에서 밭농사를 하고 있다.

과거 옥천상고, 보은정보고에서 김성장 씨와 함께 교직 생활을 했던 손종만 씨는 4년 전부터 붓글씨를 배우며 은퇴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옥천상고, 보은정보고에서 김성장 씨와 함께 교직 생활을 했던 손종만 씨는 4년 전부터 붓글씨를 배우며 은퇴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는데 지금 더 친해졌죠. 퇴직하고서 선생님이 생각났다는 건 생각해볼 일이에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김성장 선생님이 가자고 하면 믿고 가도 충분하니까 끝까지 갈 생각이에요. 나무와 숲과 꽃이 어우러진 글씨체가 바로 김성장 선생님이 추구하는 것이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어떤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 숲과 같이 어울리는 세상을 꿈꿉니다. 멋있는 분이세요.”

한편, 이번 전시는 대전 테미오래 관사(5월10일~20일)를 시작으로 국립세종수목원(5월23일~6월4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6월11일~19일), 서울 백악미술관(6월29일~7월5일) 순으로 진행됐다.

김성장 시 '흐르는 江물처럼'.
김성장 시 '흐르는 江물처럼'.
김성장 시 '나팔꽃'.
김성장 시 '나팔꽃'.
송찬호 시 '분홍나막신'.
송찬호 시 '분홍나막신'.
송찬호 시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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