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다짐은 허망하더라

너를 잊지 않겠다 장담하였는데

 

세월 가더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고 휴가도 가더라 공과금 고지서가 날아와 우체통에 꽂히고 전세 계약도 끝이 나고

 

살아가더라 세계는 멸망하지도 않고 나는 폐인이 되지도 못했더라

웃기도 하더라 새 차를 살까 이사를 갈까 요즘에는 어디 재밌는 책이나 영화가 없을까 찾기도 하더라

 

사람은 숨이 끊어질 때가 아니라

기억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죽는 거라는 말

자꾸 새겨도

 

돌아보면 너를 기억하지 않고 지나는 하루도 있더라 하루는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사흘 나흘이 되더라

 

너는 나타나더라

슬쩍 나타나서 우리 함께한 시절을 떠올리더라 나를 꾸짖는 모습은 아니더라

 

우리 함께한 세월은 그렇게 하루하루 멀어지고

 

장담은 허망하더라

허망조차 허망하더라

-유병록, 옥천민예총·옥천작가회의 문학동인지 제23바람 그리고 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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