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어떻게든 이 병실을 빠져나가야 한다 밤마다

베개를 찢어 바람에 날린다

벚나무 사이로 떠내려가는 헝겊 쪼가리

 

쉬지 않고 잎사귀를 먹어치우듯

온몸에 병균이 퍼져가고 있다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며 꿈틀거리는 벌레들,

의사는 내게 주사를 놓고 벚꽃 날리는

창밖 풍경을 감상해보라고 권한다

 

벌레들이 달라붙은 유리창을 보며 병실 벽을 두드린다

진흙처럼 뭉개진 손바닥,

저것들이 나를 찾아 기어올 것이다

나를 갉아먹으며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그 무엇

 

가운을 입고 일어서는 나를 보며

놀란 새들이 꽃을 물고 날아간다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에 손바닥을 적신다

손금을 따라 고이는 노란 약물,

아직도 내가 살아 있구나

헝겊처럼 얇은 달이 지문에 부딪혀 가라앉는다

-김성규,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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