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테크, 지난해 11월부터 옥천향수빵 출시
십원빵 모델로 정지용 시인 생명 불어넣어
우리쌀로 만든 빵 안에 모짜렐라치즈, 팥 첨가
김도현 대표, 23년간 옥천서 컴퓨터 매장 운영

‘향수’의 작가 정지용 시인이 딱 떠올랐다. 위인처럼, 우상처럼 떠받드는 정지용은 우리네 삶에 와닿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십원빵 기기를 들여놓는 건 하루 이틀이면 된다. 획일화한 십원빵이 아닌 옥천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뛰놀던 정지용이 우리 아이들 곁으로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했다. 정지용 시에 나오는 향수, 실개천, 초가집, 얼룩백이 황소를 쭉 나열하고 밑그림 작업을 했다. ‘옥천 향수빵’이라 이름 지었다.

정지용문학관에 가면 초가집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는 게 전부다. 박제된 지용의 흔적을 찍어간들 무슨 소용일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꿈틀거리는 새싹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힘차게 굽이쳐 흘러가는 S라인의 실개천, 초승달 위에 한쪽 귀를 접고 수줍게 머리를 내민 하얀 토끼, 들판에 우직하게 홀로 서 있는 나무를 글자로 형상화한 ‘향수’ 그리고 정지용 시인이 어린 시절 뛰놀던 뒷동산을 형상화한 초가집을 향수빵 앞면에 그렸다.

동전 모양의 십원빵을 착안한 '옥천 향수빵'. 빵 앞면과 뒷면에 동심을 자극하는 정지용 시인과 연관된 캐릭터가 들어 있는 게 특색이다.
동전 모양의 십원빵을 착안한 '옥천 향수빵'. 빵 앞면과 뒷면에 동심을 자극하는 정지용 시인과 연관된 캐릭터가 들어 있는 게 특색이다.

초가집 지붕 위에 세 개의 박은 특별한 존재다. 바로 뒷동산에 올라와 있는 아이들이다. 박은 아이의 머리,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의 중앙은 몸통, 두 잎은 양팔을 형상화했다. 나름 이름도 지어줬다. 위에 있는 애들은 정아, 지아. 밑에 떨어질랑 말랑 하는 말썽꾸러기 아이는 남자 막냇동생 용하. 정지용 시인의 이름을 한 글자씩 땄다. 위에 누나 둘이 있고, 밑에 말썽꾸러기 동생이 놀다가 동산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걸 누나들이 넝쿨로 잡아주는 모습을 묘사했다.

향수빵 뒷면엔 정지용 시인의 탄생 연도인 1902 그리고 정지용 시인 이름을 새겼다. 중앙에는 십원빵을 차용한 만큼 숫자 10을 쓸지 5000을 쓸지 고민했다. 옥천 발음과 유사한 숫자 5000으로 정했다. 5000에 원 단위로 연결돼 있는 동그라미는 결합과 화합을 상징한다. 1902년 옥천(5000)에 정지용 시인이 탄생한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 향수빵 출시한 뒤 손님 다양해져

읍내 통계청사거리 인근에 자리한 컴퓨터 매장 '주연테크'가 지난해 11월부터 십원빵을 모델로 한 '옥천 향수빵'을 출시했다.
읍내 통계청사거리 인근에 자리한 컴퓨터 매장 '주연테크'가 지난해 11월부터 십원빵을 모델로 한 '옥천 향수빵'을 출시했다.
주연테크 매장에 옥천 향수빵을 만들 수 있는 기기가 마련돼 있다. 주문과 동시에 3분 이내로 따끈따끈한 향수빵을 만날 수 있다.
주연테크 매장에 옥천 향수빵을 만들 수 있는 기기가 마련돼 있다. 주문과 동시에 3분 이내로 따끈따끈한 향수빵을 만날 수 있다.

“여기가 컴퓨터 매장이잖아요. 처음엔 부업으로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뭔가 좀 다르게 팔고 싶었어요. 알아보던 중에 십원빵이 있더라고요. 지역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생각하다가 정지용 시인이 떠올랐죠. 제가 만든 디자인에 맞춰 실내에서 붕어빵처럼 구울 수 있는 전기 기계를 들여놨어요. 손님층이 예전엔 아저씨들이나 젊은 남성이었다면 최근엔 여성 손님, 엄마 손 붙잡고 온 아이, 학생들까지 다양해졌어요.”

학창 시절 시나 수필을 쓰는 데 관심이 많았던 주연테크 김도현(54, 읍 삼양리) 대표는 문학적 소질을 살려 옥천 향수빵 디자인을 직접 제작했다. 그는 지난해 11월27일부터 100% 우리쌀로 만든 빵 안에 모짜렐라치즈, 팥을 넣고 구워 컴퓨터 매장 안에 향수빵을 판매하고 있다. 특허 출원까지 낸 향수빵 가격은 3천~3천500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맛없네’ 소리는 듣지 않으려 했다. 주문과 동시에 3분 이내로 겨울철 따끈따끈한 빵을 뚝딱 만들어낸다.

빵 뒷면(왼쪽)에 1902년 옥천(5000)에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빵 앞면(오른쪽)에는 정지용 시인을 상징하는 초가집, 향수, 주렁박, 실개천,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디자인은 주연테크 김도현 대표가 직접 제작했다. (사진제공: 김도현)
빵 뒷면(왼쪽)에 1902년 옥천(5000)에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빵 앞면(오른쪽)에는 정지용 시인을 상징하는 초가집, 향수, 주렁박, 실개천,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디자인은 주연테크 김도현 대표가 직접 제작했다. 그는 앞면에 있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소소한 의미를 담았다. (사진제공: 김도현)

옥천읍 마암리가 고향인 김 대표는 과선교 넘어 국제종합기계 후문 인근 집에서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현재 옥천교회에 다니지만 그는 대천교회(현 평화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교회는 금성공업사가 들어서기 이전 쓰레기매립장 인근 부지에 있었다. 천막을 쳐놓고 바닥에 방석을 깔아 성도들과 예배드렸던 그때 그 시절을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 8비트 컴퓨터 사러 청계천까지

대학 졸업 이후 잠시 대전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를 제외하곤 옥천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삼양초, 옥천중, 옥천공고를 졸업한 김 대표는 공고 시절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한 반에 학생이 50~60명이던 시절, 학교 전산실에 컴퓨터가 50대 가까이 있었다. 1985년에 입학했는데 컴퓨터가 나름 이르게 보급된 편이다. 당시엔 286 컴퓨터 이전 8비트 컴퓨터를 썼다. 요즘처럼 운영체제가 그래픽 환경이 아닌지라 도스 명령어를 외워야 컴퓨터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도현 대표가 매장에서 우리쌀을 재료로 한 옥천 향수빵을 조리하고 있다. 향수빵은 모짜렐라치즈(3천원), 팥(3천원), 모짜렐라치즈+팥(3천500원) 등 세 가지 맛이 있다. 
김도현 대표가 매장에서 우리쌀을 재료로 한 옥천 향수빵을 조리하고 있다. 향수빵은 모짜렐라치즈(3천원), 팥(3천원), 모짜렐라치즈+팥(3천500원) 등 세 가지 맛이 있다. 

실은 인문계고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공고에 들어가 전기를 전공했다. 학창 시절 친구랑 둘이 전산실 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컴퓨터와 가까워졌다. 문 개방해주고, 청소하고, 학생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깊어져 장비 욕심까지 도졌다.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와 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울을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물어물어 매장까지 찾아갔다. 8비트 컴퓨터를 70여만원 주고 사 왔다.

“20년 전 일이니까요. 그때 물가를 생각하면 70여만원은 되게 큰돈이죠. 아마 바가지 썼겠죠. 대학 졸업하고 1993~1994년에 다녔던 직장 첫 월급이 34만~35만원이었거든요. 1986~1987년에 서울 청계천 가서 70만원대 컴퓨터를 사 왔으니 없는 집에 부담을 드린 것 같아요.”

■ ‘사람과 컴퓨터’는 현재 진행형

주연테크 매장 내부. 2017년부터
2017년부터 이 자리에서 주연테크 옥천점을 운영 중이지만, 사업자명은 '사람과 컴퓨터'다.

대전에 있는 중경공업전문대학(현 우송대) 전자계산기과에 들어갔어도 통학은 옥천서 했다. 그러다 대학 졸업하고 군 제대하고 나서부터 3~4년 정도 대전서 생활했다. 첫 직장이 당시 대전 신탄진에 막 공장이 들어서던 유한킴벌리다. 외국계 합자회사인 유한킴벌리는 당시 대학생들이 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다.

전산 분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채용 자리가 있던 전기 파트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막상 가보니 3교대 근무라 체력적인 부담이 컸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프로그래밍에 더 관심이 생겨 1년 반을 다니고 퇴사했다. 그때부터 컴퓨터 쪽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중간에 다른 장사도 해봤지만 컴퓨터 판매, 수리 납품하는 업무로 선회했다.

“전기보다는 컴퓨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잘 안 맞더라고요. 직장 다닐 땐 남들이 부러워하긴 했지만, 교대 근무 자체가 싫었거든요. 전기 업무는 또 쉬는 날이 없어요. 휴가, 명절날도 돌아가면서 일해야 하니까 그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나왔죠.”

컴퓨터, 복합기 등을 판매·수리하고 있는 주연테크 매장에 컴퓨터 관련 주변 기기들이 비치돼 있다.
주연테크 매장에 컴퓨터 관련 주변 기기들이 비치돼 있다.

컴퓨터 매장 일은 1996년부터 시작했으니 경력으로 어느덧 27년 됐다. 대전서 컴퓨터 매장 직원으로도 있었고, 옥천에 사업자를 내기 전엔 3년간 옥천에 주연테크 대리점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0년부터 일봉장 옆에 삼보컴퓨터 대리점을 차려 컴퓨터 판매·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중간에 ‘사람과 컴퓨터’로 간판을 바꿔 달다 2017년 현재 이 자리로 이사 오면서 주연테크 대리점을 이어가고 있다. 사업자명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컴퓨터’다.

■ 급변하는 시장, 변화가 필요했다

컴퓨터 매장 초창기에는 사정이 나았다. 컴퓨터 한 대 가격이 100만원 중반에서 200만원 정도 상회한 시절엔 마진이 절반 가까이 남았다. 시간이 지나 컴퓨터 부품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대나 수익률이 떨어졌고, 온라인 주문이 점점 활발해졌다. 시장 패턴이 달라진 것이다. 부품 가격이 모두 공개되면서 무한 경쟁체제가 도래했다.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모바일 기기 개발도 컴퓨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 됐다.

컴퓨터 시장은 어렵다지만 아이디어 특허에 참여한 일은 자부심으로 남는다. 2007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아이디어 지원 사업에 참여해 인체공학 마우스 디자인 등록도 하고 시제품까지 만들었다. 마우스를 오래 쥐면 손목터널 증후군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오른손 기준으로 새끼손가락과 약지를 마우스 구멍에 끼고 필기구 잡듯 손목을 편한 자세로 살짝 틀면서 마우스를 쥘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반응도 나름 괜찮았다.

김도현 대표가 2007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아이디어 지원 사업에 참여해 디자인 특허를 내고 시제품으로 만든 인체공학 마우스다.
김도현 대표가 2007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아이디어 지원 사업에 참여해 디자인 특허를 내고 시제품으로 만든 인체공학 마우스다.

“지금도 매장에서 컴퓨터 관련된 건 거의 다 다뤄요. 복합기도 판매하고요. 컴퓨터 주변 기기도 웬만한 건 매장에 다 있거든요. 출장은 잘 안 나가는 편인데요. 제가 판매한 제품이면 최대한 봐드리려고 해요. 오래 일하다 보니 시장도 바뀌고, 수익창출 구조도 바뀌었죠. 예전엔 단순 판매로 수익을 냈다면 지금은 손님들이 다른 데서 컴퓨터를 사서 갖고 오면 프로그램 작업을 한다든지, 조립을 대행한다든지, 점검한다든지, 업그레이드한다든지, 그렇게 달라졌죠.”

■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더 커져

옥천 향수빵은 김도현 대표에게 큰 변화다. 옛날에 100이라는 힘을 컴퓨터에 썼다면, 지금은 70~80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가 있다. 컴퓨터 부품을 사러 들렀다가 빵 구워달라는 요청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컴퓨터 가게가 있었는지 물어본 사람도 있었으니 아직은 지켜봐야 할 시기지만 홍보 효과가 좋았다. 앞으로 향수빵과 컴퓨터 매장의 흥미로운 동거는 계속될 예정이다. 이번 겨울에는 향수빵을 팔고, 올여름에는 또 다른 메뉴를 개발 중이다.

김도현 대표가 옥천 향수빵을 포장지에 넣고 있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대학 졸업 이후 대전서 직장에 다닐 때를 제외하곤 옥천을 떠난 적이 없다.
김도현 대표가 옥천 향수빵을 포장지에 넣고 있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대학 졸업 이후 대전서 직장에 다닐 때를 제외하곤 옥천을 떠난 적이 없다.

그나저나 궁금했다. 옥천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게 한 힘이 무엇일까. 김 대표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옥천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자긍심, 고향을 향한 애착, 애향심이 다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학창 시절에도 농촌 지역인 옥천과 가까운 도시 대전이 알게 모르게 비교 대상이 됐다. 그러나 기죽지 않고 꿀리지 않으려 했다. 자연재해 없고,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고, 육영수 생가가 있고, 정지용 시인이 있는 옥천이 훨씬 더 좋다는 결론을 냈다.

“옥천에 살면서 누가 가르쳐주고 배운 건 아니지만 정지용 시인에 자부심도 있고요. 큰 도시 사람들한테 꿀리지 않으려는 자긍심도 있는 것 같아요. 지리적으로도 옥천 물이 맑고 공기도 좋고 살기 좋잖아요. 다른 데 다녀보고 살아보진 않았지만 주변으로부터 듣는 건 있거든요. 옥천에 이사 온 분들이 다들 옥천 살기 좋다고 해요. 여가 생활하기도 좋고, 금강도 맑고, 산도 좋고요. 살면 살수록 고향 옥천에 애착이 더 생겨나는 것 같아요.”

메뉴판. 옥천 향수빵과 컴퓨터 매장의 흥미로운 동거는 계속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올여름에 출시할 새 메뉴를 구상 중이다.
메뉴판. 옥천 향수빵과 컴퓨터 매장의 흥미로운 동거는 계속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올여름에 출시할 새 메뉴를 구상 중이다.
옥천 향수빵을 사 먹을 때마다 우리고장 출신 정지용 시인이 생각날 것 같다.
옥천 향수빵을 사 먹을 때마다 우리고장 출신 정지용 시인이 생각날 것 같다.

주소: 옥천읍 삼양로 98
전화: 731-8258
영업시간: 오전9시~오후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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