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용암사 운무대 일출 탐방기
2024년 1월1일 오전 7시44분경 해맞이
부푼 기대로 용암사 찾아간 세 청년 이야기

2024년 1월1일 오전 7시40분 용암사 운무대 제1전망대. 예정된 일출 시간이 다 됐지만 기다렸던 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살면서 처음으로 계획한 일출 보기 프로젝트가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해 뜨는 거 본다고 인생 달라지나? 소고기도 못 사먹는데.’ 1분, 1초가 지날수록 정신승리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전날부터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부터 집밖에 나선 고생길이 물거품이 되나 싶었다.

그래도 조금 더 참고 기다렸다. 운무대 주위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인파를 뚫고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두툼한 점퍼에 목도리와 귀마개를 무장하며 일출을 기다린 사람들. 새해 첫해를 보는 게 이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새삼 궁금해졌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부부끼리, 커플끼리,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각자 다른 이유를 갖고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하루를 보내려고 힘겹게 올라왔을 터다.

카메라 들던 손은 점점 얼얼해지고, 발가락도 시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전 7시44분. “우와! 해 떴다!” 사람들이 연신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전망대 오른편, 산 주위를 휘감은 낮게 깔린 구름 위로 붉게 작열하는 해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만 보던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다니! 그저 감탄만 하고 놀라는 것도 사치였다. 갖고 있던 휴대폰과 카메라를 총동원해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역시나 욕심이다.

새해 첫날 용암사 운무대 제1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구름 위로 붉은 기운이 서서히 넓어졌다. 2024년은 힘찬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새해 첫날 용암사 운무대 제1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구름 위로 붉은 기운이 서서히 넓어졌다. 2024년은 힘찬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아니나 다를까. 내려가는 사람만큼이나 올라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심조심 밧줄을 잡고 내려가던 찰나였다. 문득 ‘아차’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해돋이를 보면 소원을 빈다던데, 나는 소원을 빌지도 못 한 게 아닌가. 이제야 떠올랐다.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일출을 봤다는 성취감에 올해 소원을 비는 걸 까먹었다. 그래도 이내 아쉬움이 사라졌다.

위기 속 기회를 찾았다. 새해 첫날의 여정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애써 찍은 일출 사진을 혼자 간직하기보다 같이 나눠 소원을 함께 빌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신문을 읽는 분들도 생생한 간접체험이 되지 않을까. 비록 사소한 이야기지만, 꼭두새벽부터 용암사에 올라가 일출을 만나기까지 기다렸던 과정을 나누려 한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 혼자가 아닌 셋이라 든든

용암사 운무대 제1전망대에서 일출을 본 (왼쪽부터) 재석, 진희, 윤종훈 기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진희)
용암사 운무대 제1전망대에서 일출을 본 (왼쪽부터) 재석, 진희, 윤종훈 기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진희)

이 모든 여정은 청산면에 사는 재석으로부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쯤이었나. 재석은 새해 첫날 용암사 일출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때 거절했어야 하는데.’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재석과 나를 아는 두 사람이 같이 가고 싶어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개인 일정상 참여하기 어렵다고 의사를 전했다. 그렇게 재석과 나 그리고 가화리에 사는 진희, 세 청년이 팀을 이뤘다. 돌아보면 나 혼자서는 게으름과 산속 추위를 이겨내지 못 했을 것이다.

셋 다 새해 첫날 해맞이 여행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막연했다. 이미 올라갔다 온 사람들의 지혜가 절실했다. 그래야 괜한 고생을 사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 ‘용암사 일출’을 키워드로 검색해 여러 글을 탐독하고 유용한 정보를 찾아 일행과 공유했다. 용암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용암사를 기점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 3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전망대 이름은 ‘구름이 춤추는 곳’으로 알려진 운무대다.

운무대 일출을 보고 내려온 용암사 아래 운해가 가득한 아침 풍경.
운무대 일출을 보고 내려온 용암사 아래 운해가 가득한 아침 풍경.

운무대를 지나 600m 정도 더 올라가면 왕관바위가 있고, 그 사이에 거북바위 전망대가 조망하기가 좋다는 정보도 있었으나 산행 초보자임을 감안해 운무대에 도착하는 최단 코스로 짰다. 일행이 다 모이는 시간은 새벽 3시30분, 용암사 도착 시간은 대략 4시로 잡았다. 이른 시간이지만 조금 서두르는 편이 나아 보였다. 혹여나 용암사에 관광객들이 몰릴 경우를 대비해 안남면 독락정 또는 안내면 현리 수복봉을 해맞이 장소 대안으로 정했다.

■ 계획형 인간은 아닙니다만

“산행할 때 각자 필요한 거 가져오면 좋을 것 같아요. 옷 따뜻하게 입고, 간식이나 따뜻한 음료 담긴 보온병 챙기면 좋을 듯요. 그리고 추위를 많이 타면 장갑이나 귀마개 같은 것도 가져오고, 밤에 다닐 수 있게 손전등도 있으면 좋다고 하네요!”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검사라고 있다. 일출 여행 시간이나 코스를 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진희, 재석에게 ‘J(제이)형 인간’이라는 소릴 많이 들었다. J가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즉흥적인 결정보다 미리 계획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의 사람을 말한다. MBTI 검사하면 나는 J가 아닌 P가 나오는데 마치 계획형 인간처럼 행동했나 보다. ‘즐거운 여행길을 내가 좀 피곤하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말을 좀 더 줄여야 하지 싶었다.

새해 일출을 본 뒤 하산하고 있는 재석, 진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새해 일출을 본 뒤 하산하고 있는 재석, 진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석은 편의점에서 구매한 핫팩을 협찬했고, 나는 미니 초코바 한 봉지를 샀고, 진희는 다 같이 노나 마실 율무차를 보온병에 담아왔다. 마음만으로 여행길이 든든했다. 돌아보면 야외용 방석이나 돗자리를 챙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밤낮 일교차가 심한 산속이라 그런지 전망대 바닥이 물기로 촉촉하게 적셔 있었기 때문. 이맘때 일출을 보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라.

1월1일 그날이 왔다. 기대되는 마음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새벽 3시10분 집에 나와 3시20분 진희를 먼저 만났고, 청산에서 일을 마치고 온 재석을 읍내에 3시40분쯤 만났다. 용암사에 도착하니 4시쯤 됐다. 용암사 인근 주차장에 벌써 차들이 보였다. 일찍 움직이길 잘 했다 싶었다. 용암사 조금 아래편에 차를 댄 뒤 오르막을 걸었다. 나는 차에서 조금 쉬었다가 움직이고 싶었지만 재석, 진희가 그냥 바로 올라가잔다. ‘열정적인 사람들.’

■ 사찰을 지날 땐 살얼음을 밟듯

새벽 4시10분쯤 도착한 대웅전 모습. 사찰 내 불이 은은하게 켜져 있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옆을 지나갔다.
새벽 4시10분쯤 도착한 대웅전 모습. 사찰 내 불이 은은하게 켜져 있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옆을 지나갔다.
진희가 대웅전 앞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진희가 대웅전 앞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잠시 후 곡소리가 들려온다. 진희가 살짝 힘에 부치나 보다. 나도 말은 안 했다 뿐이지 슬슬 하산의 유혹에 빠지려던 참이었다. 새벽 산행에 긴장도 되고, 날씨는 춥고, 언덕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체력 소비가 더 컸다. 그렇다고 빠꾸할 수는 없는 노릇. 영차영차. 우리에게 뒤는 없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10분 더 걸었을까. 용암사가 나타났다. 돌계단을 오르자 사찰 하나가 보인다. “대웅전(大雄殿)이네요.” 재석이 알려준다.

듣던 대로 대웅전 앞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보였다. 새벽 4시를 조금 넘어가는 시각이지만 용암사 사찰 내부에 불빛이 비쳤다. 나는 잠시 지나가는 외부 손님일 뿐이다. 이 안에 계실 스님들을 생각해 조용히 지나가는 게 도리일 듯했다. 살얼음을 밟듯 조심조심 용암사를 지나쳤다. 다행히 운무대까지 가는 산책로에 불빛이 켜져 어둡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산책로 쪽으로 뻗어난 나무가 간혹 있어 머리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초행길이었지만 용암사 인근 산책로에 '운무대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여 길을 헤매지 않았다.
초행길이었지만 용암사 인근 산책로에 '운무대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여 길을 헤매지 않았다.
이날 운무대로 향하는 산책로에 불이 켜져 있어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었다.
이날 운무대로 향하는 산책로에 불이 켜져 있어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어두컴컴한 길이 있어 손전등이나 불빛을 켤 수 있는 기기로 땅을 살펴야 했다.
산행 중 어두컴컴한 길이 있어 손전등이나 불빛을 켤 수 있는 기기로 땅을 살펴야 했다.

운무대까지 가는 길에 잠깐잠깐 쉬었다. 여행길이 고행길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뒤로 돌아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봤다. 중간중간 불빛이 듬성듬성 보이는 옥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는 데가 저 어딘가에 있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 이해가 됐다. 내가 사는 곳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 세상에 한 줌 먼지 같은 존재일지 몰라. 겸허해야 해. 주위 분들에게 친절해지자.’

새벽 4시22분께 운무대에 도착하기 전 바라본 옥천 시내 풍경. 이때만 해도 운해가 껴 있지 않아 멀찍이 시내를 조망하기가 좋았다.
새벽 4시22분께 운무대에 도착하기 전 바라본 옥천 시내 풍경. 이때만 해도 운해가 껴 있지 않아 멀찍이 시내를 조망하기가 좋았다.

■ 일출 여행은 낭만적이지 않더라

새벽 4시26분, 드디어 운무대에 도착했다. 왼편엔 제1전망대, 오른편엔 제2전망대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만 보여 여기가 운무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제1전망대에 가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우리까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제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갖고 온 따뜻한 커피랑 초코바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북두칠성인가 싶은 별자리도 보였다.

운무대에 도착하자 왼쪽에 제1전망대, 오른쪽에 제2전망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운무대에 도착하자 왼쪽에 제1전망대, 오른쪽에 제2전망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5시 정각이 되자 새벽 예불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내가 있는 전망대까지 들려왔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5시30분이 되자 전망대 정면에 운해가 짙게 깔리더니 시내를 밝게 비추던 불빛도 이내 자취를 감췄다. 그때부터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재석이 가져온 핫팩은 효력이 딸리는지 온도가 미지근했다.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하고, 모자도 쓰고, 마스크도 쓰고, 수다도 떨고, 팔짱도 껴보는 등 별짓 다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참는 게 능사였다.

재석은 가져온 핫팩으로 추운 얼굴을 녹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재석은 가져온 핫팩으로 추운 얼굴을 녹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6시40분이 되자 전망대 오른편이 서서히 밝아졌다. 새해 첫날 해 뜨는 데가 저쪽이 분명했다. 7시가 되니 날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운무대 주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전망대 안에 진입하지도 못 했을 것 같다. 해가 떠오른 시간은 일출 예정 시간인 7시40분보다 조금 늦은 7시44분경.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래, 이 맛이구나.’

일출을 보러 온 관광객이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껴 있는 전망대 풍경을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아직 일출이 오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도 장관이었다.
일출을 보러 온 관광객이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껴 있는 전망대 풍경을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아직 일출이 오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도 장관이었다.

■ 여러분들의 새해 소원은?

재석도 진희도 나도 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셋이 같이 운무대에 있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재석도 찍고, 진희도 찍고, 셋이 같이도 찍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을 안고 하산했다.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등산객들 사이에 ‘군남발전협의회’라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분들이 중간 중간 보였다. 안전 산행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애써주신 분들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용암사 일출을 본 재석이 전망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위와 졸림을 이겨내고 찾아온 행복이었다.
용암사 일출을 본 재석이 전망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위와 졸림을 이겨내고 찾아온 행복이었다.
일출을 본 뒤 용암사 사찰에 내려온 진희가 손을 모아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일출을 본 뒤 용암사 사찰에 내려온 진희가 손을 모아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아침 8시30분 하산하고 읍내에 도착하자 시내도 안개가 자욱이 껴 있는 모습이었다. 8시50분쯤 읍내에 있는 아바이순대 식당에 가서 국밥 한 그릇에 순대 소 자를 알차게 흡입하며 추위를 녹였다. 나는 10시쯤 집에 귀가하며 이날 7시간 여정의 막을 내렸다. 내 새해 소원은 다음 날 정했다. 내게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뿐이다. 여러분들의 소원은 어떤 건가요?

새벽 7시44분께 용암사 운무대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 사진으로 다 담아올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새벽 7시44분께 용암사 운무대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 사진으로 다 담아올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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