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정지용문학상 제11회 수상작]

 

대들이 휘인다
휘이면서 소리한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우듬지들은 흰 눈을 털면서 소리하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어떤 대들은 맑은 가락을 지상地上에 그려내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눈뭉치들이 힘겹게 우듬지를 흘러내리는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고
풋풋한 망아지떼 울음들이 찍혀 있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대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
미친 불개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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