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공설시장에 개업한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 대표, 뜨개소품·인형·옷 등 주문제작
옥천 청년공예인 단체 ‘가온비’에서 활동 중
세대 아우르는 뜨개질, 펀치니들 수업 병행

좋았던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 만났던 그날의 설렘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열렬하게 좋아한 마음은 오래도록 남는다. 더 잘해주고 싶고, 예쁘게 꾸며주고 싶고, 보면 볼수록 매력인 이 친구에게 이유 모를 손길이 간다. 시간이 지나 두근거림이 옅어지고 권태기가 이따금 찾아오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의리를 지키며 또 다른 설렘이 올 거라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뜨개는 사랑이다.

손으로 실과 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여 정성스레 뜬다. 아침 먹고 작업하고, 점심 먹고 작업하고, 저녁 먹고 또 작업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해가 떠 있다. 반복 작업의 연속. 안 해본 사람은 알 수 없는 뜨개의 맛이 있다. 재봉틀로 드르륵 돌리면 훨씬 쉽고 빠르게 끝나는데 놓을 수가 없다. ‘봉틀러’들이 들으면 서운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니터(knitter)’들은 뜨지 않으면 손이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그렇게 ‘뜨친놈(뜨개에 미친 사람)’이 탄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활동을 좋아했다. 조그마한 비즈 액세서리 하나 만드는 것도 큰맘을 먹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맘에 드는 인형이 있어도 막상 사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공예를 쉽게 접하지 못 했던 시골 환경은 성인이 되어 결핍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비어있음에 아쉬움을 느낀 적도 많지만 결핍을 마주하는 용기를 냈다. 그러자 내게 허락된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무언가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알록달록한 색상에 아기자기한 야채, 과일 모양의 뜨개용품이 진열돼 있다.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 대표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색상에 아기자기한 야채, 과일 모양의 뜨개용품이 진열돼 있다.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 대표 작품이다.

뜨개를 취미로 접한 건 스물다섯 무렵. 조카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처음엔 원단이 아닌 1~2천원어치 양말을 사서 하나의 인형을 만들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자 뜨개인형이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식당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인형들을 가게에 갖다 놨다. ‘어? 예쁘네, 만들어 주세요.’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주문 제작을 받았다. 손녀에게 줄 인형, 카페에 놓을 큰 인형, 사람만 한 곰인형, 모자, 목도리를 만들었다.

언제는 식당 손님이 인형을 가만 보더니 ‘한 번 찾아오라’는 말을 몇 번을 했다. 누구실까 궁금했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 했다. 급기야 명함까지 주고 간 그분은 이제 알고 지낸 지 4년 되어가는 내 뜨개인형 선생님이다. 궁금한 걸 하나하나 여쭤봤다. ‘선생님, 자격증을 따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요?’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며 뜨개 세계에 침잠했다. 돌아보면 인형 하나 뜨는 것도 서툴렀던 내가 달라졌다. 아니, 뜨개를 알고 내 삶이 달라졌다.

■ 땡볕도 우리 열정을 막을 수 없다

“오늘 야채장수 컨셉으로 나왔어요.”

지난 8월6일 오후 2시 교동리에 있는 라운드커피 3층 야외 테라스. 이날 옥천군 청년공예인단체 ‘가온비’ 주관으로 플리마켓 행사가 열렸다. 목공예품부터 라탄공예품, 가죽공예품, 도예품 등 이목을 끌만한 수제 공예품들이 진열된 가운데 방문객들에게 직접 만든 뜨개용품을 설명하는 밀짚모자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초 결성한 ‘가온비’ 총무부장이자 지난 7월1일 옥천공설시장에 입점한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31, 읍 매화리) 대표다. 공방 이름은 순우리말 ‘비나리하다’는 말에서 착안해 앞날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지난 8월6일 교동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옥천군 향수플리마켓이 열렸다. 이날 플리마켓 셀러로 참여한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오른쪽) 대표가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8월6일 교동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옥천군 향수플리마켓이 열렸다. 이날 플리마켓 셀러로 참여한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오른쪽) 대표가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알고 보니 최진아 대표는 대파, 포도, 복숭아, 버섯 모양의 뜨개용품을 만들어 일일 야채장수를 자임했다. 방문객들은 그가 만든 뜨개용품이 신기한지 손으로 만져보고 갔다. 흥미롭게 바라본 이들과 달리 그는 최근 공방을 열고 플리마켓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단시간에 뜨개를 뽑아내느라 쉴 틈이 없었다고. 일명 ‘뜨태기(뜨개질과 권태기의 합성어)’가 와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동료 공예인들과 나들이를 온 것처럼 웃음 지었다. 땀이 절로 흐르는 무더운 날씨에도 이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저희 가온비 멤버들이랑 라운드커피 대표님과 이야기가 잘 돼서 앞으로도 플리마켓을 정기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8월은 이번에 한 번 할 거고요. 9월부터는 매달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 열 거예요.”

‘세상의 중심이 되어 날아가다’는 뜻이 담긴 가온비는 현재 회장을 맡은 숲속작은목공방 가비뉴 우지후 대표, 온봄달초하루 임채원 대표, 써니도예공방 송은선 대표, 전통염색 기법으로 작품을 만드는 김보영 작가 그리고 비나리뜨개공방 최진아 대표까지 다섯 명 있다. 이들은 옥천에 정착한 청년 공예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올해 열린 공설시장 ‘동행축제’, 옥천군민도서관 ‘책도깨비 야시장’ 플리마켓에 같이 참여하며 합을 맞췄다.

지난 6일 옥천군 청년공예인 단체 '가온비'가 주관한 향수플리마켓 행사에 여러 공예품이 진열돼 있다. 가운데 비나리공방 부스가 있다.
지난 6일 옥천군 청년공예인 단체 '가온비'가 주관한 향수플리마켓 행사에 여러 공예품이 진열돼 있다. 가운데 비나리공방 부스가 있다.

■ 상회 사장님들의 소소한 환대

이웃동네 영동이 고향인 최진아 대표는 양강면 만계리에서 나고 자랐다. 현재 폐교된 미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동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간에 전학해 중,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나왔다. 고등학생 때 전산회계를 공부한 그는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했다. 여러 회사에 다니며 경리로 일하고, 콜센터 직원으로도 있다가 일을 잠깐 내려놓은 시기가 있었다. 3년 전 매화리에 있는 옛 한성회관 자리에 어머니가 순대국밥집을 열었는데 그때부터 식당 일손을 도우며 옥천과 인연이 닿았다.

“가온비 단체를 만들면서 옥천에 제 지인들이 생겼죠. 지난 5월에 공설시장에서 동행축제가 열렸잖아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약주하신 할아버지들이 꽃으로 만든 키링 몇 개 사가셨거든요. 할머니 드린다고요. 그때 우연히 입찰 공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할까 말까 고민 했는데요. 작업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옥천에도 뜨개질 하는 젊은 분들이 꽤 계셔서 저도 활동하는 모습을 알리고 싶었어요.”

지난 7월 옥천공설시장에 입점한 비나리공방 전경. 최진아 대표는 뜨개용품 관련 주문 제작을 받고 있다. 또한 정규수업 및 취미반, 인형반 수업도 진행한다.
지난 7월 옥천공설시장에 입점한 비나리공방 전경. 최진아 대표는 뜨개용품 관련 주문 제작을 받고 있다. 또한 정규수업 및 취미반, 인형반 수업도 진행한다.

공방을 연 날 공설시장 상인들에게 떡을 돌리고 인사했다. 젊은 사람이 뜨개 공방을 한다고 다들 신기해하는 반응이었다. ‘아이구, 애기가 와서 하네.’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어머님들이라 인사만 드려도 예뻐해 주셨다. 며칠이 지났을까. 앞에 계신 상회 사장님들이 손에 박카스 한 병을 쥐고 공방에 가끔 들어오신다. ‘밥은 먹고 댕기는 겨?’ 가만히 지켜보니 공방에 손님들이 안 들어와서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자식처럼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직업뜨개인’으로서 1년간 전문 과정을 밟았다. 뜨개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일본수예보급협회 보그과정을 거쳐 뜨개강사 자격증을 땄다. 공방을 하기 전엔 ‘숨고’ 홈페이지에서 의뢰받아 온라인 주문 제작을 했다. 주로 기업에서 찾았다. 가령 농수산물을 알리는 전시장이 있는데 젊은 세대를 겨냥한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상담을 거쳐 뚝딱 만들어냈다. 감, 대추, 표고버섯을 형상화한 인형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 갔다.

■ 자연에서 오는 은은한 색에 관심

최진아 대표가 의뢰를 받아 농수산물을 캐릭터로 만든 뜨개용품.
최진아 대표가 의뢰를 받아 농수산물을 캐릭터로 만든 뜨개용품.

외부 출강도 의뢰가 들어오면 나간다. 얼마 전에는 옥천 문화배달부 사업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손뜨개 도어벨’ 만드는 수업을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펀치니들’ 수업도 영동에서 했다. 러그, 티코스터 등을 만들 수 있는 펀치니들 수업은 뜨개와 별개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취미 활동이다. 뜨개를 만약 기초부터 잡는다면 최소 3~6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씀드린다. 버거운 분들은 하루 2~3시간 원데이클래스(일일 강좌)를 권하고 있다. 코바늘, 대바늘 수업 모두 가능하다.

“뜨개질 하면서 제일 좋은 게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뜨개 과정이 어렵다 보니 처음에는 집중하느라 말도 못 하죠. 그런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말을 하게 돼요. 어르신들 수업할 때 보면 처음엔 어려워서 서로 하시느라 바쁘다가도 20~30분 지나잖아요? 뜨개질 하시면서 막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 집 아들은 어때?’ 이러시면서요. 뜨개가 그게 좋아요.”

고향이 영동인 최진아 대표는 3년 전 옥천에 식당을 개업한 어머니 일을 도우면서 옥천에 정착했다. 20대 중반부터 뜨개를 취미로 한 그는 식당 손님으로 뜨개인형 선생님을 만난 계기로 뜨개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고향이 영동인 최진아 대표는 3년 전 옥천에 식당을 개업한 어머니 일을 도우면서 옥천에 정착했다. 20대 중반부터 취미로 뜨개를 접한 그는 식당 손님으로 뜨개인형 선생님을 만난 계기로 뜨개질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천연염색 기법을 익혀 실을 염색해 판매하는 일을 구상하고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실은 화학 염료를 써서 색이 쨍하게 나오는 반면 천연염색을 하면 색이 자연스럽게 바라는 느낌이다. ‘쪽염색’ 특성상 실의 색상을 고착하고, 물이 빠지는 과정을 몇 번 거치는 수고가 있지만 뜨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천연염색은 도전하고 싶은 분야다. 더군다나 옥천에 천연염색 공예를 하는 분들이 있어 찾아가 배울 계획이다.

■ 뜨개가 평온한 일상에 스며들길

2023년은 특별한 해로 다가온다. 벌여놓은 일은 많지, 새롭게 만나는 사람은 점점 늘지. 가온비를 만들 때도 ‘부담스럽지 않게 시작하자’고 다짐했건만 계획대로 굴러가진 않았다. 어디 판을 깔아주거나 하지 않는 이상 발표도 잘 못 하는 내향적인 성격인데 나 자신을 알리는 게 커다란 숙제처럼 다가왔다. 먹고 살려면 해야만 했던 일이다. 수입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공예인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돈을 좇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저울 위에서 평형을 이룬다.

최진아 대표가 만든 뜨개인형. (사진제공: 비나리공방 인스타그램)
최진아 대표가 만든 뜨개인형. (사진제공: 비나리공방 인스타그램)
최진아 대표가 사람 키 만한 곰인형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 비나리공방 인스타그램)
최진아 대표가 사람 키 만한 곰인형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 비나리공방 인스타그램)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학생들이 공예에 관심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 공부만 하는 게 답이 아니라 뜨개처럼 취미로 즐길 활동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예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골에 살아봐서 안다.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면 뜨개는 권하고 싶은 활동이다. 뜨개질 전 기본 도안을 그릴 때 가로 세로 몇 cm 계산해야 하고, 이진법도 들어가니 두뇌 활동에 도움 된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교든, 고등학교든, 다문화가정이든, 합심해서 무언가 색다른 뜨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이 공방 자리는 사랑방이 되거나 그러고 싶진 않아요. 어느 정도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인연이 되면 조용히 오시고 그런 걸 원해서요. 제 장기적인 꿈은요. 제 집을 짓고 옆에 작업실을 놓고 사람들이 여행 오듯 뜨개를 배우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가시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제 이름을 알리고 싶고요.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뭔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건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조용조용한 걸 좋아해서 어떻게 보면 성격상 뜨개가 잘 맞죠. 나중에 더 들어가면 들어갔지 더 커지진 않을 거예요.”

최진아 대표가 쓰고 있는 코바늘과 대바늘.
최진아 대표가 쓰고 있는 코바늘과 대바늘.

주소: 옥천읍 삼금로5길 5-14 공설시장 내 120호
영업시간: 오전10시~오후6시
매주 토요일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a_knitting_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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