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배낭, 11일 청소년 멘토링 강좌 열어
카페 ‘물원’ 박수진 대표 일일 강사로 나서
세 가지 직업, 카페 창업 이야기 들려줘
청소년 15명 참여해 쌀 케이크 만들어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할 만한 주제다. 새삼 묻는다. 취미와 직업은 달라야 할까. 취미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괜찮다.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인 활동이어도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면 취미가 된다.

그렇다면 직업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으로 사회적으로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결과물을 제공해 밥벌이하는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싶다. 사전적 의미로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말이 더 와닿을지 모른다.

그런 걱정은 있다. 취미가 직업이 되고 일이 되면 취미로 접할 때 느꼈던 즐거움은 줄지 않을까. 취미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이왕이면 좋아하는 걸 일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엔(n)잡러’라는 말이 있다. 2개 이상을 지칭하는 n, 직업을 뜻하는 잡(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러(-er)를 합친 신조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일(직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재 내 직업이 유일한 직업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시대를 살아내는 요즘, 어쩌면 여러 취미를 갖는 활동은 현재의 즐거움과 불투명한 미래의 준비를 다 잡는 실용적인 보험일지 모른다.

그런 사례는 없을까.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들을 더 가까이 만날 기회는 없을까. 멀게만 느껴지는, 나와 왠지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리는 수도권 청년의 성공담보다는 우리 지역, 옥천에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라면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을까. 어느 책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이야기가 아닌 실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더 큰 동기부여가 없으리라.

■ 고향 선배가 들려주는 창업 이야기

지난 11일 둠벙 카페에서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날 옥천에 사는 청소년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읍내에서 카페 '물원'을 운영하는 박수진 대표가 ‘식물과 디저트 있는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주제로 일일 강좌를 했다.
지난 11일 둠벙 카페에서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날 옥천에 사는 청소년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읍내에서 카페 '물원'을 운영하는 박수진 대표가 ‘식물과 디저트 있는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주제로 일일 강좌를 했다.

지난 11일 오후 2시 금구리에 있는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특별한 강좌가 열렸다. 2023 옥천군 충북형 농시조성 지역역량강화사업 일환으로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이 열린 것. 옥천군 농업기술센터가 주최하고 ㈜거름,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 옥천에 사는 중학생 이상 24세 이하 청소년 15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28일 친환경 샴푸바 만들기(싱글룸 유하람 대표), 지난 8일 라탄트레이 만들기(온봄달열하루 임채원 대표)에 이어 이날 둠벙에서는 읍내 국민은행 맞은편 골목에서 카페 ‘물원’을 운영하는 박수진(30, 읍 양수리) 대표가 ‘식물과 디저트 있는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주제로 마지막 3회 차 수업을 열었다.

“심심해서 왔어요.”
“아는 언니가 추천해서 왔어요.”
“동생이랑 같이 왔어요.”
“효선 쌤께서 문자로 알려줘서 재밌어 보여 왔어요.”
“앞에 있는 친구가 추천해서 왔어요.”
“케이크 먹으러 왔어요.”

강좌를 열기 전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에서 팀원으로 활동하는 이효선 씨가 참여자들에게 각자 참여한 계기를 발언하도록 유도했다. 심심해서 왔다는 학생부터 케이크 먹으러 왔다는 청소년까지 사소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를 지니며 방학에 시간을 내 이 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멋쩍은 웃음을 머금은 가운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카페 '물원' 박수진 대표가 고향 후배들을 만나 카페를 창업하기까지 여러 직업을 거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카페 '물원' 박수진 대표가 고향 후배들을 만나 카페를 창업하기까지 여러 직업을 거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카페 물원 박수진 대표는 고향이 옥천이다. 삼양초, 옥천여중, 옥천고를 졸업한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고향 옥천에 돌아와 카페를 차렸다. 물원은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와 비정제 설탕을 이용한 디저트와 음료를 만드는 카페로 알려져 있다. 밀가루 빵이 몸에 안 맞거나 물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인 카페다.

■ 디자이너, 플로리스트, 카페 사장

박수진 대표는 베이킹 수업하기에 앞서 현재 직업이 세 개라고 소개했다. 카페 사장, 디자이너 그리고 플로리스트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박수진 대표는 디자인 감각을 살려 카페 물원 인테리어를 직접 꾸몄고, 명함 디자인이나 시트지 제작까지 재능을 살려 자기 사업에 적용했다.

박수진 대표가 도시락 쌀 케이크를 만들기 앞서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박수진 대표가 도시락 쌀 케이크를 만들기 앞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 가지 중 가장 오래 한 직업은 플로리스트다. 플로리스트라 하면 직업적으로 꽃집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식물과 꽃을 활용한 조경연출 작업을 4년 정도 했다. 웨딩 꽃꽂이 아르바이트부터 해서 읍내에 있는 CM 필라테스 원장과 인연이 닿아 조화를 활용한 화보 촬영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뛰어다녔다.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 꽃에 관심을 둔 게 야외 웨딩 촬영, 화훼 장식까지 뻗어나갔다. 의뢰가 들어오면 플로리스트 활동을 병행한다는 박수진 대표는 “일하는 도중에 사다리 타다가 떨어져 쓰러진 적이 있을 만큼 고된 노동”이라며 “플로리스트를 꿈꾼다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며 꽃을 다루는 직업의 환상을 깼다.

그리고 카페 사장. 디자인도 하고 플로리스트도 간간이 하는 가운데 카페만큼은 옥천에 창업하고 싶었던 그다. 옥천에 꽃집을 할까, 간판 가게를 차릴까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카페를 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과 가치관을 카페로 보여주고 싶은 바람으로 시작했다. 고향 옥천에 돌아오려고 가족, 지인에게 도움을 받으며 안간힘을 썼다는 후문이다.

박수진 대표가 쌀가루로 만든 빵 위에 크림을 얹고 있다.
박수진 대표가 쌀가루로 만든 빵 위에 크림을 얹고 있다.

■ 지역적으로 바라본 카페 이모저모

창업에 앞서 그는 상권분석을 했다. 현재 카페가 있는 자리는 썩 좋은 자리가 아니라고 자가 진단을 했다. 옥천에 카페가 몇 군데 있는지, 디저트 카페는 얼마나 있는지, 체인점인지 아닌지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디저트 카페 안에 수제 케이크, 마카롱, 휘낭시에, 유기농 밀가루 베이커리까지 품목이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SWOT 분석’을 통해 카페의 현 위치, 그가 가진 불안을 객관적으로 살폈다. SWOT는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기(Threat)의 앞 글자를 딴 약자로 소규모 상가부터 비영리 단체, 대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에서 사업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틀로 활용한다.

강점은 비건(Vegan;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 글루텐 프리(Gluten-free; 보리, 밀 등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이 함유되지 않은 음식), 쌀가루, 건강한 디저트가 나왔다. 혼자 카페를 운영할 수 있어 인건비 절감에 유리하다는 점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개업한 카페 '물원'의 특징을 스크린으로 소개하며 창업할 때 준비해야 할 점들을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업한 카페 '물원'의 특징을 스크린으로 소개하며 창업할 때 준비해야 할 점들을 알려주고 있다.

약점은 쌀가루를 활용한 디저트인 만큼 유통이 쉽지 않고, 원가가 높고 공정이 까다롭다는 것. 카페 위치가 길목에 있어 주차가 어렵고 한옥으로 된 오래된 건물이라 여러 불편사항이 있었다. 기회는 홍보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을 꼽았다. 주변 상권에 풍미당, 경진각과 같은 생활의 달인 맛집이 있어 가까운 거리에 카페 물원에 찾아올 거라는 기대심리가 있었다.

“실은 제일 많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1위가 편의점, 그다음인가 4위가 카페라고 알고 있어요. 만약 카페를 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내부, 외부 환경 요소를 다각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고요. 다른 카페와 차이점을 둘 수 있는 나만의 아이템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 쌀 케이크 만들고, 진로 이야기도 듣고

세 가지 직업 세계 이야기, 카페를 창업한 과정을 들은 참여자들은 ‘도시락 쌀케이크’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박수진 대표가 카페에서 활용하는 베이킹 재료를 들고 왔는데 크림은 레터링케이크에 쓰는 버터랑 크림치즈를 섞은 걸 썼다. 참여자들은 크림을 얹은 케이크 위에 알록달록한 꽃을 올려 장식했다.

크림은 레터링케이크에 쓰이는 버터와 크림치즈를 섞은 걸 썼다.
크림은 레터링케이크에 쓰이는 버터와 크림치즈를 섞은 걸 썼다.
친구와 함께 참여한 청소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친구와 함께 참여한 청소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참여자들이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크림을 올리고 있다.
참여자들이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크림을 올리고 있다.
참여자들이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크림을 올리고 있다.
참여자들이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크림을 올리고 있다.

만화 ‘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 ‘루피’를 형상화한 케이크도 있었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그린 케이크, 사랑을 뜻하는 ‘love’를 새긴 케이크, 친구의 성 앞 글자를 영문 이니셜로 새긴 케이크도 있었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케이크를 만든 참여자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크림을 손에 찍어 먹어보는 등 즐겁게 시간을 지냈다.

문정리에 사는 임진우(옥천중 3) 학생은 “동생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데 같이 갈 친구가 없다”고 해서 동생 임경순(옥천여중 2) 학생과 같이 왔다. 다른 곳에서도 베이킹을 체험해 봤다는 두 학생은 “직업을 여러 가지 하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향 선배님을 보고 진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임경순(옥천여중 2) 학생이 자신이 만든 케이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임경순(옥천여중 2) 학생이 자신이 만든 케이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채이현(옥천고 1) 학생이 자신이 만든 케이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채이현(옥천고 1) 학생이 자신이 만든 케이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채이현(옥천고 1) 학생은 친구에게 이날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참여했다. 평소 빵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채이현 학생은 “혼자 베이킹을 하다 보니까 심심한 면이 있었는데 오늘처럼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케이크를 만드니까 재밌게 다가왔다”며 “(박수진 대표님이) 다양한 일을 직업으로 삼는 모습을 보면서 멋있고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 지역 문화를 일구는 청년을 더 가까이

이날 고향 후배들에게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전한 박수진 대표는 “학창시절에 진로 관련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제가 간 거 같아서 신기하고 나이를 먹은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박수진 대표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공부와 상관없이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학교 다닐 때는 성적에 부담이 심했는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대학교나 전공은 중요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가 분홍색 크림으로 'love'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 이효선 씨도 고향이 옥천이다. 그는 고향 후배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3회로 나눠 진행된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효선 씨는 “청소년들이 옥천 밖으로 나가야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지역에 소소하게 살아가면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들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며 “기성세대는 한 개의 직업을 갖고 오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하지만, 지금은 ‘엔잡러’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자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참여자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