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 지난 7일 개소
동갑내기 부부 박애란 유선관 씨 운영
지역사회 연계해 어르신이 누릴 혜택 드릴 것
쉼터처럼 편안한 공간으로 다가가고 싶어

더디 가더라도 기본은 지키고 싶었다. 바닥에 디딤돌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이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할아버지는 아흔하나, 할머니는 여든다섯, 두 분 다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다. 땡볕에도, 비 내리는 날에도, 주말에도 폐지 주우러 나오신다. 할머니와 가까워지면서 말을 붙였다. ‘비도 오는데 비 맞고 그랴, 주말에 쉬어야지.’ 할머니 말씀하시길. ‘아녀, 시원해서 좋아.’

어느 날 사무실 앞에 빗물이 내려가는 하수구가 막혀 흙을 빼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그 할머니가 지켜보더니 ‘내가 할 테니까 너 들어가라’ 그런다. 사람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굳이 말 안 해도 다 안다. 자기를 좋아하는지, 어르신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그동안 ‘자원봉사’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다. 그저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아서, 이불 세탁하고 집안일 챙겨드리는 게 좋아서 했을 뿐이다.

마음으로 봉사활동 하는 것과 센터를 운영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20년 가까이 자원봉사 현장에 다녔어도 모르는 게 많았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절차’가 있다는 걸 알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고, 전공 수업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꿈에 그리던 센터를 열었더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전산 작업도 그렇고, 서류 준비할 게 많아 막막했다. 위기는 곧 기회, 우리 부부는 마음먹었다. ‘자원봉사의 연장’으로 생각하자고 말이다. 즐기는 자, 이겨내지 못 할 게 없으니.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가 지난 7일 성암리에 개소했다. 센터는 현재 방문요양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가 지난 7일 성암리에 개소했다. 센터는 현재 방문요양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 다년간 봉사 거쳐 재가복지센터 열어

박애란(48, 동이면 조령리)의 남편 유선관, 유선관(48, 동이면 조령리)의 아내 박애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옥천의 잉꼬부부,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소문난 동갑내기 부부는 옥천에 지원이 필요한 현장에 늘 함께 있었다. 수해 현장에 찾아가 이불 빨아드리고, 필요한 물품 나눠드리고, 어르신 식사를 챙겨드리는 등 지역사회에 선행을 베푸는 데 앞장섰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두 사람은 어르신들을 체계적으로 돌보려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를 지난 7일 성암리에 개소했다. 재가복지센터는 건강보험공단과 연계해 만 65세 이상 어르신 또는 노인성 질환이 있는 만 65세 이하 어르신에게 ‘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말한다. 대상자는 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해 등급 판정을 받으면 본인 부담금 5~15% 내에서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의료보험료를 낼 때 보면 ‘장기요양’이 있잖아요. 그 돈으로 재가복지센터,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는 거예요. 저희는 현재 방문요양만 하고 있고요, 목욕이나 식사는 아직 못 하고 있어요. 개소한 지 얼마 안 돼서 전산이랑 서류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거든요. 급히 생각하지 않고 차근차근 시스템 돌아가는 걸 파악하는 단계예요.”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는 우리고장에 지원과 도움이 절실한 봉사 현장에 내 일처럼 찾아간 동갑내기 부부 (왼쪽부터) 박애란, 유선관(48, 동이면 조령리) 씨가 운영하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는 우리고장에 지원과 도움이 절실한 봉사 현장에 내 일처럼 찾아간 동갑내기 부부 (왼쪽부터) 박애란, 유선관(48, 동이면 조령리) 씨가 운영하고 있다.

■ 현장 체질, 지역사회 마중물 역할

유선관, 박애란 씨는 고향이 옥천이다. 이원면 신흥리에서 나고 자란 유선관 씨는 이원초, 이원중, 옥천공고를 졸업했다. 박애란 씨는 옥천읍 구일리에서 태어나 군남초, 옥천여중, 옥천상고를 나왔다.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에서 센터장을 맡은 박애란 씨는 행정 업무에 집중하고 있고, 유선관 씨는 대표이사로서 아내 박애란 씨와 함께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 두 사람 다 ‘현장 체질’이라 어느 정도 행정 업무에 익숙해지고 요양보호사를 모셔 오면 밖에 나가 어르신들을 살필 계획이다.

센터 사무실 안에 삶의 이력이 드러나는 표창장, 위촉장, 감사장, 자격증 등이 걸려 있다. 어느 하나를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옥천에 이들 부부가 하는 활동이나 책임지는 자리가 많다는 걸 대변했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큰돈을 벌겠다는 마음은 없다고. 이런저런 봉사를 많이 하다 보니 겸사겸사 재가복지센터까지 나아갔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센터를 운영하면서 어르신 댁에 찾아가 불편사항을 확인하고, 생활 지원과 관련해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일을 할 생각이다.

센터 사무실 내부 모습.
센터 사무실 내부 모습.
사무실 안에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가 살아온 이력이 드러나는 각종 상장, 자격증 등이 걸려 있다.
사무실 안에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가 살아온 이력이 드러나는 각종 상장, 자격증 등이 걸려 있다.
두 사람이 옥천에서 이동세탁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
두 사람이 옥천에서 이동세탁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

“그전에는 몸으로 자원봉사를 했어요. 집에 도배해 드리고, 장판 갈아주고, 그런 것도 의미가 있죠. 사회복지를 공부하니까 어르신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더라고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보일러 요금을 감면하는 그런 제도들이 잘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것도 있어요. 어르신이 집 안에 형광등을 갈고 싶거나, 수도꼭지가 고장 나거나 했을 때 자원봉사자가 가기 전에 면사무소나 읍사무소에 있는 생활반이 출동할 수 있거든요. 재가복지센터를 하면서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챙겨드릴 혜택이 많더라고요.”

■ ‘사회복지로 뭐 하고 싶으세요?’

이들 부부는 3년 전 충북도립대에 같이 입학해 지난해 초 졸업했다. 유선관 씨는 컴퓨터드론학, 사회복지학을 복수 전공했고, 박애란 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아들 둘이 다 성장했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맞아 만학도가 됐다고. 유선관 씨는 재학 당시 총학생회장에 출마할 만큼 학생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박애란 씨는 대학교 때 만난 20대 청년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번에 센터 개소할 때 직장에 들어간 대학 동창이 ‘이모님, 축하드려요’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우리 인생에 학생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느지막이 대학생이 됐죠. 학교 다닐 때 자기소개서 쓰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걸 지금도 갖고 있어요. 교수님이 ‘사회복지로 뭐 하고 싶으세요?’ 묻더라고요. 젊은 친구들하고 다르잖아요. 항상 그게 써지는 거예요. 건물 하나 지어서 쉼터를 하고 싶다고요. 그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어르신들 와서 식사 챙겨드리고, 그런 거 있잖아요. 오며 가며 갈 수 있는 곳, 그런 꿈이 생기더라고요. 이번에 센터 열고 계속 놀러 오는 할머니들이 있어요. 아침 9시만 되면 문을 열어놔요. 방충망만 쳐놓고요. 에어컨 틀어놓으면 시원하고 좋데요. 더디 가더라도 저는 그게 좋아요. 그건 변함없어요.”

지난해 2월 박애란, 유선관 씨 부부가 2년 공부 끝에 충북도립대를 졸업했다. (사진제공: 박애란 유선관 씨 부부)
지난해 2월 박애란, 유선관 씨 부부가 2년 공부 끝에 충북도립대를 졸업했다. (사진제공: 박애란 유선관 씨 부부)
센터 사무실 안에 도립대 재학 시절부터 참고한 사회복지 전공 교과서들이 있다.
센터 사무실 안에 도립대 재학 시절부터 참고한 사회복지 전공 교과서들이 있다.

■ 두 아들도 ‘귀신 잡는 해병대’!

유선관 씨 명함 뒤에 현재 맡고 있는 직책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5년째 맡고 있는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 회장을 시작으로 충청북도 도민홍보대사, 민선8기 옥천군 공약이행평가단 위원, 바르게살기 옥천군협의회 이사, 옥천군 주민자치회 연합회 간사, 동이면 생활안전협의회 간사, 동이면 자율방범대 대원, 옥천군 사암불교연합회 청년위원장, 동이면 적십자회원 등을 맡고 있다. 박애란 씨는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서 여성대장 명예직으로 있고, 옥천 민간봉사단체 ‘효두레회’에서 10년째 활동해 현재 사무국장으로 있다.

유선관 씨에게 해병대 출신은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서 우리나라 최연소 나이에 회장을 맡았다고. 도내 11개 시·군에 있는 해병대전우회 사무국장보다 기수로 따지면 아래일 정도다. 유전자전이라 했던가. 두 아들도 해병대를 나왔다. 둘 다 충북도립대 컴퓨터드론학과를 졸업한 것도 부모를 빼닮았다.

2019년 11월 충북종합자원봉사센터가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 으뜸봉사상을 수여했다.
2019년 11월 충북종합자원봉사센터가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 으뜸봉사상을 수여했다.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서 명예 여성대장으로 있는 박애란 씨가 받은 표창장이 사무실에 있다.
해병대전우회 옥천지회에서 명예 여성대장으로 있는 박애란 씨가 받은 표창장이 사무실에 있다.

■ 남들보다 조금 빨랐던 20대 시절

첫째가 스물일곱, 둘째가 스물여섯이다.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는 결혼한 지 어느덧 28년이 됐다. 연애 기간까지 합치면 30년. 금실 좋다고 주변 지인들이 인정하는 부부다. 20대 초반 일찍 시작한 결혼생활은 지금 돌아보면 남들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안 해본 사업이 없었다. 석유장사, 주유소, 생수대리점 등 돈 버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 아기 둘 데리고 오로지 장사였다. 어디 여행 다닐 생각도, 꾸며볼 생각도 못 하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남들처럼 꽃다운 20대 시절이 없었다. 애 아빠, 애 엄마였으니까. 어디 놀러 다니거나 예쁘게 화장하는 게 부럽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다는 생각이 요즘 떠오른다. 그렇게 20대 후반까지 쉼 없이 달려오다 잠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때 고향 옥천을 찾았고, 봉사를 시작했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파란만장한 삶, 책 한 권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반복되는 삶이지만 지치지 않는다. 그게 우리 삶이다.

해병대 군 복무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
해병대 군 복무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 유선관 박애란 씨 부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소개로 만났어요. (남편은) 갈수록 진국이에요. 사람들이 그래요. ‘으휴, 옥천의 잉꼬부부여.’ 둘이 보면 꿀이 뚝뚝 떨어진데요. 오누이 같다고 그래요. 남편이 농담도 잘하고요. 한 번씩 노래도 불러줘요. 아침에 오면 항상 노래 틀어주고 가요. 애들 같죠? 제가 ‘노래 좀 한 곡 해줘 봐요’ 그러면 ‘옛날에 애란이 18번 불러볼까?’ 그래요. 그러면 프러포즈했을 때 불러준 노래를 해요. 재밌고, 가정적이에요. 재밌는 남자예요.”

■ 바닥에 디딤돌만은 변치 말자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실애육원에서 처음 이불 빨래 봉사를 한 박애란 씨는 이제 봉사가 삶이 됐다. 때론 봉사가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옥천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남편과 어깨동무하며 의지를 다진다. 기본을 벗어나지 말자고 늘 다짐한다.

“더디 가더라도 지금까지 자원봉사 한 것처럼 천천히 배워갈 거예요. 센터 열고 몇 주 지나니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하길 잘했다 싶어요. 어르신들이 편하게 오실 수 있는 쉼터처럼 편안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어요. 하다 보면 뜻을 알아주시겠죠.”

유선관 씨 또한 바닥에 디딤돌만은 변치 말자는 생각으로 센터를 운영할 생각이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바람도 전했다.

“옥천에서 여기저기 봉사하러 다니니까 집사람은 일만 잔뜩 벌여놨다고 할지 몰라요. 그렇지만 가늘고 길게 옥천에 스며들고 싶어요. 애란이랑 둘이 손잡고 하늘나라 갈 때 ‘잘 살았구나’ 그거면 돼요. 부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서 힘든 시기가 있었죠.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자식들이 보기에 ‘우리 아빠 유선관인데 해병대 회장이여, 좋은 일 많이 했지’ 이렇게 자랑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름다운 동행 재가복지센터 앞에 개소를 축하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주소: 옥천읍 성신로 12-1
전화: 010-6435-1800, 010-4036-8964
영업시간: 오전9시~오후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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