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하는 김연주 씨
음악동호회 ‘앙상블 엘’에서 지역 내 공연 선보여
장야초 인근에서 클라리넷 레슨실 운영 중
클라리넷 지도 및 스틸텅드럼, 아살라토 수업 진행

완벽에 도달하려고 스스로를 다그쳐야 했다. 대학 입시, 실기 시험, 연주 수업, 각종 경연대회가 남긴 상흔이었다. 빈틈없이 완벽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의 강박. 어쩌면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관문인지 모른다. 클라리넷을 전공한 김연주(39, 읍 가화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기 부는 게 좋아서, 합주하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음악인데 어느 순간 치열함만 남아 있던 게 아닌가.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봤다.

옥천에 오기 전 ‘헬로 셈(Hello SEM)’이라는 단체에서 장애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단원 중에 한 친구가 피아노를 치는데 연주 실력도 수준급에 그 친구 얼굴에 미소가 보이더라. 가만, 음악 할 때 웃으면서 해본 적이 언제더라. 지금까지 살면서 돌아보니 없었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을 뿐, 이 친구처럼 연주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충격을 받았다. 음악을 하는 사람, 음악을 알리는 사람으로서 달라지고 싶었다.

높이 오르기보다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옥천에 음악학원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이 정도 수준이면 못 올라가’ 했다면 지금은 ‘그래 가봐, 틀리든지 맞든지 무대에 자신 있게 올라가봐’로 교육관이 바뀌었다. 특히 성인들을 대상으로 연주 단원을 모시고 이분들을 가까이 만나면서 알았다. 설령 틀리더라도 음악 하는 그 순간이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라고. ‘그래, 음악은 저렇게 해야지.’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음 하나를 치기 위해, 노래 한 곡을 완주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연습하고 합주하고 공연했을 시간이 떠올랐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처음 만졌던 학창시절의 나를 마주했다. 이제야 보였다. 다짐했다. 함부로 음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2015년 옥천에 정착하고 나이가 들면서 달라졌다. 내가 갖고 있는 악기를 내 몸의 일부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그만큼 커졌다.

지난 4월6일 장야초등학교 인근에 김연주 씨가 운영하는 클라리넷 레슨실에서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정기 모임이 열렸다.
지난 4월6일 장야초등학교 인근에 김연주 씨가 운영하는 클라리넷 레슨실에서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정기 모임이 열렸다.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지휘를 맡은 김연주 씨가 색소폰, 플룻, 클라리넷, 피아노를 연주하는 단원들의 음정과 박자, 리듬을 점검하고 있다.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지휘를 맡은 김연주 씨가 색소폰, 플룻, 클라리넷, 피아노를 연주하는 단원들의 음정과 박자, 리듬을 점검하고 있다.

■ 클라리넷 개인 지도와 연주를 같이

“지금 요거가 익숙해져야 해요. 처음 하시는 곡이라 이 정도 속도와 박자만 맞춰도 될 거 같은데요. 16마디 한 번 가볼까요? 셋 넷!”

지난 4월6일 오후 6시30분 장야초등학교 인근 클라리넷 레슨실 <엘의 음악생활공간>에서 지미 데이비스의 노래 ‘당신은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 연주가 들려왔다. 색소폰, 플룻, 클라리넷, 피아노를 연주하는 단원 7명이 모여 검은색 정장을 맞춰 입고 하모니를 이뤘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창단한 ‘앙상블, 엘’ 단원으로 매주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다. 앙상블 엘은 올해 이원묘목축제, 군민도서관 주간행사, 유채꽃축제에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가요를 선보였다.

음악동호회 ‘앙상블, 엘’ 지휘를 맡은 김연주 씨는 2017~2020년까지 음악학원으로 운영했던 자리를 클라리넷 레슨실, 합주 연주실로 쓰고 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석사과정(클라리넷 전공)을 수료한 그는 개인 레슨을 다니면서 앙상블 엘 단원들을 가르치고, 클라리넷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스틸텅드럼과 아살라토 악기를 활용해 아이들 방과후수업 또는 어르신 취미활동 수업도 병행한다.

'앙상블, 엘' 단원이 지미 데이비스의 노래 '당신은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 악보를 보고 있다.
'앙상블, 엘' 단원이 지미 데이비스의 노래 '당신은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 악보를 보고 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김연주 씨가 관악기 중 하나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김연주 씨가 관악기 중 하나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김연주 씨는 클라리넷 개인 지도와 함께 스틸텅드럼, 아살라토 악기를 활용한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맨 위에서 왼쪽이 아살라토, 바로 오른쪽이 스틸텅드럼이다. 
김연주 씨는 클라리넷 개인 지도와 함께 스틸텅드럼, 아살라토 악기를 활용한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맨 위에서 왼쪽이 아살라토, 바로 오른쪽이 스틸텅드럼이다. 

“2020년 8월 중순일 거예요. 그때가 아이를 갖게 된 시기인데 처음에는 몰랐거든요. 입덧을 본 어머님들이 ‘선생님, 임신 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며칠 뒤에 병원에 갔더니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해에 학원을 그만뒀죠. 아이는 이제 두 돌 지났는데요. 아기만 낳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이가 아프면 하루살이 하는 느낌도 들고요. 제가 또 석사 수료라 석사 논문도 준비해야 해서 예전처럼 학원수업은 못 하고 개인레슨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 받은 만큼 음악으로 베푸는 삶 꿈꿔

중학교 1학년 때 클라리넷을 접한 김연주 씨.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던 친구가 관악부에 들어가자고 제안한 게 계기였다. 플룻, 클라리넷 두 악기 중 희소성이 있고 음색이 아름다운 클라리넷이 끌렸다. 클라리넷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반평생이 넘었다. 음악을 전공하려면 레슨비가 만만치 않지만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해 예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항상 하신 말씀. ‘하고 싶은 거 해. 아빠가 뒷바라지 해줄게. 단, 시집갈 땐 너희가 알아서 가.’

중학교 때 친구와 함께 관악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접한 김연주 씨. 학창시절 음악의 꿈을 키워나가는 데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고 그는 돌아봤다.
중학교 때 친구와 함께 관악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접한 김연주 씨. 학창시절 음악의 꿈을 키워나가는 데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고 그는 돌아봤다.

그 말씀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다 커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음악을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본인 일을 하면서 딸 레슨비를 대려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했고, 가정주부인 어머니도 뒷바라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시 철이 되면 부담은 커졌다. 무대에 혼자 오르는 게 아니라 피아노 반주자도 있어야 한다. 시험 당일이 되면 반주비는 더 올라간다. 반주를 한 번 맞추고 무대에 설 순 없는 일. 몇 번에 맞춰 무대에 오르려면 몇 백이 든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이 세계에서는 ‘2악장 들어갔으니 얼마’ 달라는 분들이 많다. 부르는 게 값인 곳도 즐비하다. 그런 가운데 좋은 분들을 만나 사랑 받고 음악을 배운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만큼 미안함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살면서 받은 만큼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 못 해 드렸다는 점에 아쉬움이 남았다. 옥천에서 만난 분들에게 음악으로 베풀고 싶었다.

“이 공간에서 성인 분들을 많이 뵀는데요. 바이엘을 치면서 스트레스 풀고 힐링하고 가는 모습이 되게 좋아 보였어요. 어떤 분은 그러세요. ‘여기 와서 잠깐 피아노를 치고 가면 기분이 풀린다’고요. 저도 악기 연주를 하면 잡생각이 없어지고 좋더라고요. 가끔 개인 레슨을 하면 ‘내가 왜 이렇게 어려운 악기를 전공해서 선생님들을 힘들게 할까’ 생각해요. 삑사리 나고, 호흡하는 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게 다가올 거예요.”

김연주 씨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김연주 씨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활동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음악 동호회 '앙상블, 엘' 활동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 ‘음악으로 가치 있는 삶’을 바라며

올해 창단 연주가 목표인 앙상블 엘은 현재 피아노 단원 한 명, 플룻 세 명, 클라리넷 세 명, 색소폰 두 명 그리고 김연주 씨까지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앙상블 엘의 엘(el)은 독일어로 ‘가치 있는’이라는 뜻의 에델(edel)에서 E, ‘삶’이라는 뜻의 레벤(leben)에서 L의 합성어다. ‘음악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단원 중에는 대전서 오는 사람도 있고, 옥천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된 사람, 옥천에 오래 산 사람, 고향 사람까지 다양하다.

경기도 용인에 살다 8년 전 옥천에 정착한 그는 말한다. 음악학원을 통해 만난 학부모님들 덕분에 옥천 생활에 적응한 만큼 타지서 온 분들을 음악 활동으로 만나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김연주 씨가 활동하는 앙상블 엘은 현재 단원 모집은 하지 않고, 다른 팀을 더 창단할 계획이란다. 이름도 이미 지었다고. ‘시행착오’. 시니어, 행복한 오늘을 원하는가, 착실히 살아온 그대, 오늘이 기회다. 음악과 함께하는 그의 삶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연주자이기도 하거든요. 무대가 그립고, 연주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기회가 되면 옥천에서 독주회를 하고 싶어요. 한 번 하면 사람들이 올까 싶지만 옥천에서 잘하고 싶거든요. 지난해 12월에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메조소프라노 채진영 선생님이 독창회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나이가 들기 전에요. 무대에서 더 자주 뵈었으면 좋겠고요. 성장하는 과정에서 도와주신 분들도 있고, 또 옥천 학부모님들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만큼 음악으로 더 베풀고 싶어요.”

장야리에 있는 클라리넷 레슨실 내부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장야리에 있는 클라리넷 레슨실 내부 모습. (사진제공: 김연주)
클라리넷 레슨실 한쪽에 김연주 씨가 클라리넷을 들고 찍은 프로필 사진이 있다.
클라리넷 레슨실 한쪽에 김연주 씨가 클라리넷을 들고 찍은 프로필 사진이 있다.

문의 : 010-5350-4548 (클라리넷 레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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