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0일~6월4일 서상숙 작가 사진전 열려
‘오브제(OBJET)’ 주제로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
작고 하찮다고 여긴 사물들에 존재의 가치 부여
7인의 친구들, ‘사진으로 마음 열기’ 함께 전시
섣불리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온전히 그 대상을 시간을 두고 바라볼 뿐이다. 작고 하찮다고 여긴 소소한 것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자 새로운 의미가 달렸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누군가의 충만한 해석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의식의 지향으로 바라보자 무의미한 존재는 곧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 돌아왔다. 중요한 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언어가 아닌 과정에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알아봄을 위한 바라봄의 시간이었다.
집 텃밭에 있는 쪽파를 보고 사람 얼굴을 상상했다. 때론 발레리나가 춤추는 모습을 떠올렸다. 보랏빛 양배추는 사람의 등가죽이 겹쳐 보였고, 어느 날 피망은 어린이의 엉덩이처럼, 얼갈이배추는 비보이(B-Boy)나 캉캉 춤을 추는 무용수처럼 다가왔다.
대상을 보며 또 다른 이미지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었다. 서상숙(53) 작가는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을 애정으로 바라보며 어쩌면 인간다워지길 소망했는지 모른다.
지난 5월30일부터 6월4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서상숙 작가 개인전이 열렸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서 작가는 우리고장에서 ‘사진카페 2월’을 운영하고 있다.
경일대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2021년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환생시리즈, 옥천 愛 머물다>, 2022년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풍경>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 뒤 이번에 세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본 전시는 충북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사업에 선정돼 300만원 예산을 지원받아 기획했다.
■ 알아봄을 위한 바라봄의 시간
전시 주제는 ‘OBJET(오브제)’.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object)을 사진으로 남겨 그 자체를 예술 작품(objet)으로 승화한다는 취지에서 ‘오브제’라는 주제를 선정했다.
서 작가는 싹이 나 먹을 수 없는 양파, 겉이 메주처럼 쭈글쭈글해진 감자, 속이 알알이 나온 석류처럼 시간의 흐름을 거친 야채나 과일을 색다른 시선과 다양한 촬영 기법으로 사진을 남겼다. 물을 다 마시고 쓸모가 사라진 플라스틱 물병 그리고 유리병 또한 그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맨 처음에 사물을 바라보고, 그다음에 사물을 알아보려고 하잖아요. 처음에 바라보고, 조금 더 위 단계가 알아보는 거죠. 유통기한 날짜가 남았어도 물을 다 마시고 나면 페트병은 버려지잖아요. 버려지기 전에 그 물병에 존재의 가치를 사진으로 남겨둔 거고요. 싹이 난 양파도 그래요. 먹을 생각을 못 하니까 버린다는 생각을 먼저 하잖아요.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보니까 멋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시선의 차이죠.”
이번 전시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서상숙 작가의 작품 58점과 함께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7인의 친구들’이 찍은 사진 7점이 같은 공간에 걸려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7인의 친구들이 찍은 사진들은 한데 모아 <사진으로 마음 열기>라는 이름으로 작은 전시 주제를 달았다. 7인의 친구들은 바로 지연, 철환, 지현, 재건, 주용, 동건, 은숙 씨다.
■ “그게 궁금하면 찍어봐야 해요”
“평생학습원에서 두드림 수업을 하는데요. 사회복지사님이 오셔서 사진 수업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서 고민 끝에 승낙했죠. 마침 개인 전시도 있으니 같이 하자고 한 거고요. ‘사진으로 마음 열기’잖아요. 사진을 찍으면서 무의식의 마음을 사진으로 꺼내보자는 취지였고요. 야외에 같이 나가서 ‘오늘은 봄의 색깔을 찍어봅니다’ 하고 주제를 알려주면 이분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오셨죠.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사진을 배우면서 이분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에 전시를 같이 하게 됐어요.”
‘7인의 친구들’ 사진들 중에 동이면 금암리에 있는 유채꽃단지에서 찍은 모습이 보였다. 저 멀리 있는 나무를 배경으로 풀과 풀 사이 길이 쭉 뻗은 풍경을 지연 씨는 사진으로 담았다. 어떻게 찍었는지 묻자 그는 말한다. “뜬금없이? 그게 궁금하다면 찍어봐야 해요.” 유채꽃단지에 갔을 때 꽃이 다 져 슬펐다는 지연 씨. “갈 길이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사진을 찍은 이유를 살며시 알려줬다.
사진 작품들 옆에는 사진 찍은 사람의 얼굴을 함께 걸었다. 서상숙 작가가 흑백으로 찍었다고. ‘찍을 때 금목걸이라도 하고 가시지.’ 한때 큰형님 소리 들었을 법한 철환 씨 사진을 보고 옆에 있던 사회복지사 이혜찬 씨가 너스레를 떤다. 처음엔 땅바닥에 피어오른 풀잎을 보고 찍은 줄 알았건만 아니란다. “손을 찍은 거예요.” 풀잎 옆에 자신의 손 그림자를 보고 그는 자기 신발과 함께 사진을 담았다, 체육공원에서.
■ 사진 수업이 남긴 작은 행복
“벚꽃이 예쁘잖아요. 선생님이랑 같이 가서 찍었어요. 재밌어요.” 주용 씨는 사진을 찍은 이유를 수줍게 이야기했다. 전시 방명록에 ‘사진 수업 계속 같이 해요 선생님’이라고 길게 쓴 지연 씨와 달리 주용 씨는 ‘감사합니다’라고 다소 무뚝뚝하게 남겼을 뿐이다. 지난번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며 자랑하는 동건 씨, 유채꽃단지에 있던 꽃들보다 올곧게 뻗은 나무에 관심이 가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 밑에는 그가 종이에 그린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수업하고 나서 동건이라는 친구가 카페에 놀러 와서 쉬다 갔거든요. 손님 없을 때 잠깐 들어와서 커피 마시고 돌려보냈는데 자기 딴에는 고맙다고 그림을 하나씩 그려서 갖고 오는 거예요. 어떤 날은 그 자리에서 스케치북을 뜯어서 자동차를 그리고 선물로 줬죠.” (서상숙 작가)
이번 <사진으로 마음 열기> 전시에 참여한 사회복지사 이은숙 씨는 사물을 하나하나 관심 있게 볼 수 있는 사진을 통해 본인 또한 즐거운 시간이 됐다고 돌아봤다. 지역사회를 다양하게 체험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번 사진 수업은 서상숙 작가의 제안으로 전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올 하반기 서상숙 작가 전시에도 같이 참여할 계획이라고.
“여가활동도 하면서 지역사회에 참여할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찾다가 사진을 하면 색다르지 않았을까 싶었죠. 서 작가님에게 제안했는데 마음을 먼저 열어주셨고요. 뜻깊은 시간이었죠. 이런 자리 자체가 경험이잖아요. 주변 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나 이런 거 했다’고 자랑할 수 있고, 자신감이 올라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