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동이면 세산리에 개업한 ‘향수꿀카페’
향수양봉원 유인근 대표 장녀 유연희 씨가 운영
옥천서 직접 뜬 꿀로 만든 음료 및 다양한 상품 판매
벌과 소비자 가운데서 꿀의 귀한 가치 알리고 싶어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가 필요했다. 이대로 가면 어려워 보였다. 어떻게든 판로를 찾아야 했다. 보통 ‘꿀’이라 하면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먹던, 약으로 썼던 먹을거리 정도로만 여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양봉업과 벌집에서 나오는 꿀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양봉은 정말이지 몸부림을 쳐야 겨우 살아남는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이거 진짜 꿀이에요, 가짜 꿀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꿀을 그냥 쉽게 내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해마다 온 식구가 매달려 고생해서 떠온 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카페가 잘 될지 안 될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2년 전부터 구상해 창고로 썼던 자리를 카페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견해차가 있었다. 퇴직하고 24년 넘게 옥천서 양봉업을 하셨던 우리 부모님, 열심히만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시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읍에서 동이농공단지로 진입하는 초입에 '향수꿀카페'가 열렸다. 바로 옆에는 향수양봉원이 있다. 이 카페는 향수양봉원 유인근 대표의 장녀 유연희 씨가 양봉 일을 겸하며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읍에서 동이농공단지로 진입하는 초입에 '향수꿀카페'가 열렸다. 바로 옆에는 향수양봉원이 있다. 이 카페는 향수양봉원 유인근 대표의 장녀 유연희 씨가 양봉 일을 겸하며 운영하고 있다.

향수양봉원도, 이번에 차린 카페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부모님은 크게 도매로 팔아야 한다, 소포장하면 안 팔린다, 언제 파냐 말씀하시지만 아니다.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포장 예쁘게 해서 상품으로 내놔야 양봉과 꿀에 관한 인식이 좋아지리라 기대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세상에 많은 일 두고 왜 양봉을 했을까. 사람이 꿀벌을 안 키우면 양봉업도 망하지만 자연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찾아보면 많다. 하다 보니 사명감이 생겼다. 이왕 발 담근 거 부모님이 땀흘려 일군 가업을 제대로 잇고 싶었다.

■ 24년 이어온 가업, 소비자와 더 가깝게

읍내에서 이원 가는 도로에서 동이농공단지로 진입하는 초입에 근사한 카페가 생겼다. 지난해 11월부터 동이면 세산리에 개업한 ‘향수꿀카페’는 유연희(46, 읍 양수리) 대표가 지키고 있다. 카페 소개말에 ‘직접 벌을 키우고 봄 내내 꿀 뜨고 커피 내리는 카페’라고 적혀 있다.

향수꿀카페는 커피나 차 종류뿐만 아니라 유 대표의 가족이 옥천서 직접 뜬 꿀로 꿀인삼라떼(6천원), 꿀유자차(5천원), 벌집꿀 아이스크림(5천원) 등을 내놓고 있다. 또한, 토종꿀부터 잡화꿀, 아카시아꿀, 밤꿀, 벌집채꿀, 요리꿀, 로얄젤리, 프로폴리스 치약 등 다양한 꿀 관련 상품을 진열해 판매 중이다.

향수꿀카페 유연희 대표가 카페 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 대표는 20대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다니며 양봉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옥천에서 가족과 함께 직접 뜬 꿀을 활용해 다양한 음료와 꿀과 관련된 여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향수꿀카페 유연희 대표가 카페 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 대표는 20대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다니며 양봉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옥천에서 가족과 함께 직접 뜬 꿀을 활용해 다양한 음료와 꿀과 관련된 여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카페 바로 옆에는 유연희 대표의 부모 유인근, 서복수 씨가 경영하는 향수양봉원이 있다. 1999년 군서에서 양봉을 시작해 15년 전 이 자리를 본거지로 둔 향수양봉원은 동이, 군서, 군북, 이원 등 우리고장 내 여러 곳에서 벌을 키우며 꿀을 채집하고 있다.

“한창 조선소 부흥기 때였어요. 아버지가 가족들이랑 같이 어머니 고향인 통영으로 이사 해서 조선소 일을 하셨거든요. 아버지 고향이 군북면 지오리인데 은퇴할 때쯤 고향에 오고 싶으셨나 봐요. 처음에 소를 할까, 염소를 할까, 닭을 할까 고민하시다가 초기 비용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게 벌이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영동 심천면, 통영, 사천, 강원도 철원까지 꿀 뜨러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철원에는 부대 시설이 있어 포탄 터지는 소리도 듣는 등 부모님 따라다니며 여러 추억이 많다는 유연희 대표. 군북면 지오리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대부분을 통영에서 보내 경상도 말투가 배었다. 옥천에 정착한 지 5년이 됐다.

한때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지만 끝내 양봉으로 돌아왔다. 1997년 고등학교 졸업하고 20대 때부터 매일 꿀을 뜨러 다녔다. 당시엔 벌통을 하나씩 들고 다닐 정도로 힘이 있었다고. 정년도 없고, 몸이 안 아프면 계속할 수 있으니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카페 내부 공간. 탁자, 의자 등 목가구들은 향수양봉원 유인근 대표의 손길을 거쳤다.
카페 내부 공간. 탁자, 의자 등 목가구들은 향수양봉원 유인근 대표의 손길을 거쳤다.

■ 역경의 연속, 그래도 친환경으로 가야

“아버지 시작할 때부터 계속 같이 했어요. 나도 모르게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벌이 무서운데요. 하다 보면 언제 쏘였는지도 몰라요. 따끔할 뿐이지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일하느라 바쁘니까 신경 쓸 겨를도 없죠.”

새벽 4시30분 기상이다. 벌들이 활동하는 낮 시간을 피해 새벽에 나온다. 장화 신고, 작업복 입고, 기계 준비하면 5시30분. 그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까지 각자 담당하는 구역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식구가 다 같이 붙어도 인력은 늘 부족하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몸이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한창 바쁜 5~7월은 말할 것도 없다.

꿀 채집량은 해마다 다르다. 숫자 100을 예상하면 작년, 재작년은 한 20% 나왔을까. 아쉽다. 언제나 아쉽다. 매해 꿀벌 천적인 장수말벌과 힘겨루기의 연속이다. 이제는 또 검은등말벌이 기승이다. 더 큰 문제는 진드기. 40년 양봉업을 한 지인도 지난해 진드기 피해로 꿀벌이 집단 폐사해 곤욕을 치렀다고. 이제는 내성이 생겨 진드기약도 안 듣는다.

향수꿀카페는 아카시아꿀, 잡화꿀, 밤꿀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도 한다.
향수꿀카페는 아카시아꿀, 잡화꿀, 밤꿀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도 한다.

“기후 변화, 환경 변화가 문제이지 싶은데요. 우리나라는 벌에 관한 연구를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양봉업도 하나의 사업이잖아요. 판로도 중요하지만 양봉하는 사람들이 벌을 잘 키울 수 있게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필리핀에서 들어오는 꿀이 관세 없이 들어온다고 그러거든요. 우리나라 꿀보다 3분의 1 가격으로 들어온다니까 걱정이에요.”

해가 지나도 벌 키우는 환경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진드기 문제는 올해 또 재발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유혹이 많았을 것이다. 그만둘까. 20년을 해도, 30년을 해도 여전히 힘들다는 양봉업. 사람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라 답답하지만 자연이 주는 대로 받는다는 세상 이치를 마음에 새겨본다.

모든 꿀을 친환경으로 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 유 대표는 ‘친환경 벌꿀’을 일부 만들어 납품한다. 검사 항목만 400여 가지. 친환경으로 인증된 농약만 써야 하고, 일은 두 배로 늘어나는데 나오는 꿀은 소량뿐이다. 알아주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친환경으로 가는 게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소명의식에서 시작했다.

로얄젤리는 여왕벌만 섭취할 수 있는 꿀을 말한다. 진열된 상품은 빈 병이며, 냉동보관을 한다. 
로얄젤리는 여왕벌만 섭취할 수 있는 꿀을 말한다. 진열된 상품은 빈 병이며, 냉동보관을 한다. 
토종벌을 키워서 떠온 토종꿀로 다른 꿀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유 대표에 따르면 토종벌은 키우는 방식도 다르고, 일반 꿀벌보다 크기가 작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토종벌을 키워서 떠온 토종꿀로 다른 꿀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유 대표에 따르면 토종벌은 키우는 방식도 다르고, 일반 꿀벌보다 크기가 작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 ‘좋은 꿀’ 뜨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저는 중간 역할, 매개자예요. 벌과 꿀을 드시는 사람 사이에 무얼 넣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드리고 싶었어요. 농약을 쓰면 몸으로 들어오잖아요. 결국 우리가 피해를 보는 일이니까요. 친환경은 힘들어요. 약을 덜 쳐야 하고, 친환경 약은 더 비싸거든요. 그래도 사람이 태어나서 욕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뭔가 하나라도 이뤄놓고 싶었어요. 제가 놓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안 놓으면.”

양봉하는 사람, 소비자 사이 중간 다리가 느슨해 보였다.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다. 아는 사람들만 알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 올리면 소통하는 장이 열리지 않을까. 정보 격차도 줄이고 옥천의 양봉 문화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은 번거로운 일이다. 일손도 부족한 마당에 현장 이모저모를 촬영하려면 장갑을 벗어야 용이하다. 올해는 한 번 시도해볼 계획이다. 카페 안에 설치한 TV 화면에 양봉 현장 사진을 몇 장 올렸다. 앞으로 향수꿀카페 인스타그램(@79yeonhyi_yu)에도 올릴 생각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카페에 설치된 TV 화면에 양봉 현장에서 일하는 유 대표의 어머니 서복수(오른쪽) 씨와 지인들이 나오고 있다.
카페에 설치된 TV 화면에 양봉 현장에서 일하는 유 대표의 어머니 서복수(오른쪽) 씨와 지인들이 나오고 있다.

“저희처럼 양봉을 본업으로 하면 카페까지 차리게 돼요(웃음). 저는 양봉하는 과정을 다 공개하고 싶어요. 양봉 견학도 진행해보고 싶고요. 꿀 뜰 때 보시면 정말 눈물 나거든요. 우리 부모님은 ‘바쁘니까 일부터 해라’ 그래요. 이제 말씀드리려고요, 보여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요. 좋은 꿀 뜬다고 말만 하면 소용없으니까요. 이번에 카페 열고서 사진 나오는 거 보시니까 ‘옷을 맞춰서 예쁜 거 입자’고 그러세요. 장갑도 깨끗한 거 끼자고 그러시고요. 일하다가 장갑에 밀랍이 묻으면 지저분해 보여요. 근데 벌집에서 나온다는 거는 저희는 알거든요.”

■ “진실한 양봉업자 되고 싶어요”

손님들은 카페가 북적북적하지 않고 조용해서 좋다는 반응이다. 이웃동네 영동에서, 읍내에서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옆에 동이농공단지 직원들도 점심 때 자주 드나든다고. 향수꿀카페는 사랑방처럼 쉬다 가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음료에는 설탕이나 조미료가 아닌 꿀로 맛을 내고자 했다. 그런데 꿀을 첨가하면 단맛이 덜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그만큼 조미료 맛에 익숙해졌다는 방증이다. 유 대표는 카페에서 만드는 음식으로 꿀이 우리 몸에 이롭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인터넷에 누리꾼들이 올린 ‘향수꿀카페’ 리뷰 중 일부 내용을 추렸다.

금산에서 가져온 인삼 그리고 꿀, 우유를 섞어 만든 꿀인삼라떼.
금산에서 가져온 인삼 그리고 꿀, 우유를 섞어 만든 꿀인삼라떼.
블루베리 라떼와 카페 라떼. 
블루베리 라떼와 카페 라떼. 

‘사장님이 정말 친절하시고 꿀인삼라떼도 제가 먹어본 꿀인삼라떼 중 제일 맛있었어요! 단맛도 적당하고 인삼 맛도 적절해서 맛있게 먹었어요. 만약 더 달게 드시고 싶으면 꿀을 더 넣어서 드실 수 있어서 좋아요! 양봉도 하시고 좋은 꿀도 판매하셔서 기분 좋게 먹고 쉬다 갑니다!’ (아이디: 장***)

‘직접 농사지은 꿀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수제쌍화차도 맛있고 커피도 괜찮아요. 편안한 분위기도 좋고 여러 가지 꿀도 맛볼 수 있어요!’ (아이디: 마***)

‘성묘하고 지도에서 주변 카페를 찾아보니 못 보던 곳이 가까이 생겼더라고요. 가족들 모두 모여 카페에서 즐겁게 지내고 갑니다. 음료들도 맛있고, 벌집아이스크림 진짜 최고예요! 직접 양봉하신 꿀도 판매하시는데, 꿀에서 꽃향이 장난 아니에요! 시식용으로 놓아두신 꿀 시식해보고는 반해서 어떤 꿀로 할까 고민하다가 꽃향이 진하게 났던 아카시아로 골라 샀답니다. 가시면 꼭 꿀 시식해보세요.’ (아이디: 미**)

토종꿀, 잡화꿀, 아카시아꿀, 밤꿀, 벌집채꿀, 요리꿀, 로얄젤리, 프로폴리스 치약 등 다양한 상품이 진열돼 있다.
토종꿀, 잡화꿀, 아카시아꿀, 밤꿀, 벌집채꿀, 요리꿀, 로얄젤리, 프로폴리스 치약 등 다양한 상품이 진열돼 있다.

향수꿀카페에 방문하면 꿀 관련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시골집벌꿀'이라는 상호를 걸고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온라인 판매도 하는데 현장 구매가 더 저렴한 편이다. 아카시아꿀 2.4킬로그램(kg) 기준 온라인 가격이 6만원이면 오프라인은 5만5천원이다. 택배비(4천원)를 고려하면 1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유 대표는 지난해 12월 ‘너나들이 아쟁연주단’을 카페에 초대해 아쟁 공연을 열었다. 기회가 되면 다른 행사를 또 열고 싶다고. 옥천에 있는 ‘기타향’ 동호회에서 기타를 치며 옥천 사람들과 교류하는 유연희 대표. 그가 이끌어갈 향수꿀카페가 기대된다.

“진실한 양봉업자가 되고 싶어요, 진실한 농사꾼.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저 사람 집에 가면 안 속이고 좋은 꿀 먹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고 싶어요. 그 말씀만 드리고 싶어요. 내세울 게 그거밖에 없어요. 다른 거 없어요.”

카페 안에 유연희 대표의 가족 친지들이 야외에서 아카시아 꿀을 뜨고 있는 모습을 현수막으로 걸어놨다.
카페 안에 유연희 대표의 가족 친지들이 야외에서 아카시아 꿀을 뜨고 있는 모습을 현수막으로 걸어놨다.

주소: 동이면 세산리 46
전화: 010-6224-8912
영업시간: 오전11시~오후9시 (매주 목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79yeonhyi_yu
시골집벌꿀 홈페이지: smartstore.naver.com/sgj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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