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0일 양우내안애 앞에 개업한 ‘치킨인류’
캠핑레드바베큐, 통큰후라이드, 옹기간장치킨 인기
홍규표 대표, 2018년부터 성암4리 이장 맡아 달라진 삶
두 번째 이장 제의 수락해 다시 4년간 동네 일 헌신

동네 상권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었다. 2018년 양우내안애 아파트가 생길 무렵, 밤이 되면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그땐 밤늦게까지 하는 상가가 없다시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편의점이나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생겨난 건 반가운 소식이다. 그럼에도 비어 있는 틈새가 보여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르신들이 지나가는 말로 하는 얘기가 이런 거였다. 음식 냄새가 나도 좋다고, 상관없다고. 이 동네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모험을 했다.

지난해 9월 서울서 열린 창업박람회에 다녀온 게 계기였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휴직을 한 상황이었다. 아내와 둘이 박람회에 가서 여러 부스를 둘러봤다. 그중 치킨 브랜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항아리에 숙성한 간장으로 맛을 낸 치킨을 먹어봤다. 맛이 독특했다. 한 번 해볼까, 괜찮겠다 싶었다. 상가를 알아보던 중 이 동네 상권을 살려보자는 개발위원의 권유도, 직장생활하고 처음 장사하는 만큼 조그마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응원도 힘이 됐다.

양우내안애 아파트 들어가는 입구에 상가 한 곳이 눈에 띈다. 자정 늦은 시각까지 동네를 환하게 비추는 이곳은 지난해 10월20일 개업한 ‘치킨인류’ 옥천점. 현재 성암4리 이장으로 있는 홍규표(52, 읍 성암4리) 대표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홍 대표는 처음 아파트가 생길 무렵 입주예정자협의회 부회장을 맡은 계기로 2018년 초대 이장을 역임해 4년간 임기를 수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12일 이장직을 연임해 다시 4년간 동네 일꾼을 자처했다.

옥천양우내안애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기 전 상가 건물에 자리한 치킨인류 옥천점. 하늘이 어두워지면 간판 불이 켜져 동네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다.

노인회에서도, 동대표에서도, 개발위원 사이에서도, 이장을 연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처음에는 고사하고 싶었다. 지난 4년간 동네 주민들의 어려운 점들을 중재하고 분리수거장이나 주차장, 키즈카페 등 동네에 필요한 시설을 하나하나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제는 개인 상가를 운영하는 만큼 마을 일에 사심이 개입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그다. 그렇지만 해왔던 마을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 때문인지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웠다.

■ 치킨집 매개로 소통의 장 열다

“제가 가게를 하는 목표는 경제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 소통하고 싶어서예요. 어렸을 때 꿈이 내 가게를 해보자는 거였거든요. 더 나이가 들면 어렵잖아요. 조금이라도 힘 있을 때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실은 개발회의를 하는 사무실 공간이 따로 있는데 동네 분들이 건의를 잘 안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치킨집을 하다 보니 주민들을 자주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매출도 매출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봉사한다 생각하며 하고 있어요.”

가게는 가게 일, 동네는 동네 일. 공과 사는 지키자는 마음으로 가족과 상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장 일을 수행하다 보면 만족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작은 불씨 하나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불이 번지면 걷잡을 수 없기에.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자리, 그에 따른 불평불만이 뒤따라오는 건 부담이었다. 그래도 있는 시간을 쪼개 최선을 다했다. 백지상태로 있던 동네에 시설을 하나하나 끌어온 과정을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치킨인류 옥천점을 운영하는 홍규표 대표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성암4리 이장으로 있다. 그는 동네 일과 가게 일을 구분해 공과 사를 지킬 것을 약속했다. 이장 일을 맡아 적극적인 이웃이 되면서부터 삶이 달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치킨인류 옥천점을 운영하는 홍규표 대표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성암4리 이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동네 일과 가게 일을 구분해 공과 사를 지킬 것을 약속했다. 이장 일을 맡아 적극적인 이웃이 되면서부터 삶이 달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동네에 물어볼 게 있으면 이장을 먼저 찾는다. 남들 쉬는 주말에도, 이른 새벽에도 전화기에 불이 난다. 개인 시간이 없다시피 했다. 아파트 동대표에게 문의할 내용도 이장에게 물어볼 때면 난처했다. 아쉬운 소리도, 손 비비는 소리도 많이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 걸까. 서먹했던 동네 주민들과 안면을 튼 게 지나고 보니 커다란 복이었다. 이번에 개업할 때도 조용히 연다고 홍보도 따로 안 하고 내부를 가리고 공사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화환도 보내오고 챙겨주는 모습에 놀랐다.

“솔직히 제 자랑 같은 이야기지만 (이장 일을) 썩 잘한 게 아닌데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우리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 몰랐어요. 보람 많이 느꼈죠. 가게 여니까 여기가 사랑방이 되더라고요. 사무실이 따로 있는데도 이쪽으로 꼭 오세요. 지나가다 들르면 인사해주시고요. 가게도 가게지만 제2의 사랑방이 된 거 같아요. 퇴근하고 나서 어디 나가서 먹긴 그렇잖아요. 옷만 갈아입고 맥주 한 잔씩 드시고 들어가는 분들도 많으세요.”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하는 치킨인류 매장 내부. 홀도 이용할 수 있고 포장이나 배달 주문도 받고 있다.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하는 치킨인류 매장 내부. 홀도 이용할 수 있고 포장이나 배달 주문도 받고 있다.

■ 동네 일을 내 일처럼 해준 고마운 분들

옥천서 나고 자란 홍규표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뒤 객지 생활을 하다 2002년 옥천에 돌아왔다. 당시 집안일 때문에 선택 사항이 없어 옥천에 돌아왔다고. 서울 사람인 아내와 같이 옥천에 오기로 했을 때 갈등이 없지 않았다. 다툼이 있었으나 이젠 옛일이 됐다. 어느새 자녀들도 다 성장해서 막내는 이제 대학에 들어가고, 아내는 옥천에 녹아든 지 오래됐다.

이장 일을 하면서 주민들의 여러 고충을 알게 됐다. 밖에서 볼 땐 아파트 주민 모두가 잘 살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식들이 타지에 있어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의외로 많았다. 도울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면 주소지가 자녀 이름으로 되어 있어 지원까지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있었다. 그래도 개발위원부터 노인회까지 다들 자기 일처럼 도와준 덕에 길이 열렸다. 작은 성의지만 라면이나 쌀 같은 생필품을 나눠드릴 때 보람을 느꼈다.

“이장, 고마웠어.”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응어리가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어떤 어머님은 호주머니에 5천원 짜리 지폐를 꺼내 용돈 쓰라고 건네기도 했다. ‘내가 이 돈을 받을 정도로 잘했나’ 싶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1천원이든, 2천원이든 큰돈이었다. 개인 돈으로 쓴 적, 한 번도 없었다. 적은 돈이라도 저금통에 모아 1년에 한 번 주기로 마을에 꼬박꼬박 기부했다.

이장 일을 계기로 동네 주민들과 가까워졌다는 홍규표 대표.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많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는 치킨집을 매개로 주민들과 편안한 소통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장 일을 계기로 동네 주민들과 가까워졌다는 홍규표 대표. 주변에 어렵게 사는 이웃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도움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고. 그는 치킨집을 매개로 주민들과 편안한 소통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장 수당이 나와도 제 개인적으로 쓴 건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봐야죠. 최근에는 어르신에게 전화가 왔는데, 도저히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알아봤더니 자식들하고 연락이 끊긴 모양이더라고요. 부랴부랴 쌀이랑 음식 갖다드린 일이 꽤 많아요.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죠. 관리비 체납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분들을 위해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하잖아요. 자식들 수소문해서 연락할 때가 참 어려운 거 같아요.”

■ 소상공인 위한 일대일 대화 창구 생겼으면

마을 일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홀로 감내해야 할 점도 생겨났지만 오히려 동네 주민들의 덕을 크게 봤다는 홍규표 대표. 이번에 치킨인류라는 이름으로 상가를 열면서 동네 주민들과 접점을 늘려가고 싶어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인심을 받고,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긴 안목으로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다.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양념 한 방울 더 넣어 맛있다는 소리를 더 듣고 싶은 바람이 크다고.

치킨인류에서 판매하는 음식 중 인기 메뉴는 매운 맛이 나는 캠핑레드바베큐, 양념간장 맛이 나는 캠핑블랙바베큐(각 1만9천900원)다. 두 메뉴는 치킨과 함께 양념이 곁들여진 새우와 옥수수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또한 옹기간장치킨도 최근 들어 많이 찾는 음식이다. 옹기간장치킨, 옹기매운간장치킨, 옹기고추장마늘치킨(각 1만8천900원) 이 세 가지는 항아리에 2주간 숙성한 간장을 양념해 색다른 맛이 난다고. 방문 포장만 되는 통큰후라이드(1만900원)는 가격 대비해서 저렴하게 주문할 수 있는 메뉴다. 통큰후라이드를 제외한 전 메뉴는 방문 포장 시 2천원 할인된다.

주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캠핑레드바베큐치킨. 매운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인기다.
주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캠핑레드바베큐치킨. 매운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인기다.
양념 간장 맛을 곁들인 캠핑블랙바베큐치킨. 새우와 옥수수가 함께 들어가 있다.
양념 간장 맛을 곁들인 캠핑블랙바베큐치킨. 새우와 옥수수가 함께 들어가 있다.

오후 6~9시에 1차전, 밤 10~11시에 2차전을 치르며 손님들에게 맛있는 치킨을 판매하고 있는 홍규표 대표. 생애 첫 자영업에 뛰어들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설렘도 들었지만 힘든 부분도 많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됐다고.

“제가 장사를 처음 해봤지만 소상공인들이 힘들다는 걸 느껴요. 앞에서 많이 받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서 보면 남는 게 없더라고요. 옥천의 상권을 살릴 수 있는 건 소상공인들이잖아요. 그분들에게 많은 관심이 필요할 거 같아요. 군 차원에서 소상공인들과 일대일 대면해서 여러 고충이나 문제점들을 들을 창구가 생기면 좋겠어요. 저야 마을 이장이기 때문에 바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조그마한 상가를 하시는 분들은 군청 가서 건의할 창구가 마땅치 않을 거 같거든요. 폐업하는 상가들을 줄이는 것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중요한 점이 아닐까요.”

주소: 옥천읍 마장로 20 상가동 03호 (옥천양우내안애)
전화: 732-7789
영업시간: 오후2시30분~밤12시 (11시30분 주문 마감)
매월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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