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국원리 향수을전통주교육원 김기엽 소장
지난해 11월 가양주연구소 주관 궁중술빚기대회서 은상 수상
유원대 와인사이언스학과 진학해 배움 이어나가
김기엽 소장 “전통주는 활력소, 설렘 같은 존재”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술을 빚는 즐거움도 일상처럼 반복되면 타성에 젖곤 한다. 전통주는 자기만족으로 밀고 올라가는 뚝심이 있어야 지속한다. 처음 술을 빚었던 그때 설레었던 감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기 부여는 누가 대신해주기 어렵다. 만족스러운 시골 생활, 그럼에도 안주하지 않는 도전자의 자세가 때론 필요하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져본다. 떨어진 자리에 생긴 작은 물결이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단조로운 삶을 바꾸는 활력소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고장에서 향수을전통주교육원을 운영하는 김기엽(59, 군북면 국원리) 소장에게 지난 2022년은 특별한 한 해였다. 이웃동네 영동에 있는 유원대학교 와인사이언스학과에 진학해 젊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1학년을 지냈다. 내년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느지막하게 학교에 다니는 만학도로서 하나라도 배워오자는 의지로 학구열을 높였다. 발효주인 와인 특성상 효모를 통해 술이 만들어지는 원리가 우리 전통주와 일맥상통해 참고할 점이 많았다고.

김 소장에게는 또 하나 특별한 소식이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교육기관인 한국가양주연구소가 주관하는 궁중술빚기대회에 출전해 지난해 11월26일 은상을 수상한 것. 우리나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회에 총 54개팀이 참여한 가운데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의미 있는 결실을 보며 일의 자부심도 찾고 옥천이라는 지역을 전통주 관계자들에게 알렸다. 대회 주제는 누룩을 사용한 ‘곡주’로 맑은 술 2리터(l)와 곡주 제조 시 사용한 누룩 100g 이상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지난해 11월26일 한국가양주연구소가 주관한 궁중술빚기대회에서 향수을전통주교육원 김기엽(가운데) 소장이 은상을 수상했다. 왼쪽은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오른쪽은 김기엽 소장의 아내 김양희 씨.
지난해 11월26일 한국가양주연구소가 주관한 궁중술빚기대회에서 향수을전통주교육원 김기엽(가운데) 소장이 은상을 수상했다. 왼쪽은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오른쪽은 김기엽 소장의 아내 김양희 씨.
김기엽 소장이 지난해 궁중술빚기대회 때 받은 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기엽 소장이 지난해 궁중술빚기대회 때 받은 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 “대상 탈 때까지 하겠습니다”

“지난 4월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숙성 과정을 거쳐 4~5개월 정도 걸렸죠. 지정하는 술이 해마다 달라요. 올해는 곡주, 지난해는 연잎으로 만드는 연엽주, 그전에는 과하주를 했어요. 올해는 누룩으로 만드는 술을 심사했는데요. 부드러울 연, 삼킬 탄의 연탄주(軟呑酒)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서 부드러운 석탄주를 제출했어요. 보통 석탄주라 하면 14~16도 정도 나오지만 제가 만든 술은 10~12 정도로 누룩 향을 최소화해 목 넘김이 굉장히 부드럽게 만들었죠. 호응이 나름 괜찮았어요.”

같은 대회에서 재작년에는 최우수상, 지난해는 입상, 올해는 은상까지 성취감을 얻어낸 그였다. 김 소장은 지금 하고 있는 전통주 일에 관한 교류의 장을 넓히면서 전통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이번 대회에 쏟아냈다. 수상하던 날 “선생님, 3년째 수상하셨네요”라고 격려하던 한국가양주연구소장에게 “대상 탈 때까지 하겠습니다”라고 의지를 내보였던 그다. 이번에 출품한 연탄주는 같은 레시피로 술을 빚어 오는 설 즈음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군북면 국원리에 있는 향수을전통주교육원 앞에 대회 수상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군북면 국원리에 있는 향수을전통주교육원 앞에 대회 수상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5년 전 군북면 국원리에 터를 잡은 김 소장은 고향이 대전이다. 강릉에 있는 공군제18전투비행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있는 아들, 충남대 약학과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김 소장은 자녀들이 독립할 즈음 서울 생활을 접고 옥천에 왔다. 여행사에서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그 뒤로 보험 업계에서도 일한 그는 아내 김양희 씨와 상의 끝에 옥천에 오게 됐다. 그는 옥천에 오기 전인 2013년부터 전통주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원래 발효나 효소 쪽에 관심이 있어 김치, 된장도 다루다가 전통주에 점점 빠져들었다.

■ 전통주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기록물

“다 일맥상통해요. 발효라는 게 효모라는 생명체가 움직여주면서 생기는 화학 작용이기 때문에 거의 똑같거든요. 요즘에는 많이 안 하지만 식사할 때도 반주를 해요. 그 정도로 술을 사랑합니다. 시골생활이라는 게 주말이 되면 더 바빠져요. 도시 사람들은 ‘주말 되면 뭐하지?’ 이러잖아요. 우리는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주말에 집안일도 하고, 가게 일도 하고, 술도 만들고, 더 바쁘죠. 저는 길 막히고 사람 많은 도시생활에 염증이 있었어요. 어느 날 공황이 갑자기 오더라고요. 이제는 알겠데요. 시골과 서울에 차이를요. 좋은 거 먹으면 나쁜 음식, 좋은 음식 알듯이 숨 쉬는 것에서부터 느껴져요. 옥천 생활이 참 좋습니다.”

김기엽 소장이 전통주 빚는 과정을 정리한 공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기엽 소장이 전통주 빚는 과정을 정리한 공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전통주교육원 안에는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발효실에는 누룩 향 가득한 특색 있는 술들이 저온 숙성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김 소장은 술이 커가는 모습을 아이들 벽에 키 재듯 기록을 남겨놓는다. 시간, 온도, 냄새, 변하는 모습 등등. 그가 애지중지하는 전통주 기록 노트에는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숙성 발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이 남다른 재미가 있다고. 술이 담긴 이 많은 항아리는 새벽 4~5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김 소장이 빚은 전통주를 마시면 사람들 반응이 대개 ‘우와’ 하는 반응이란다. 그만큼 외지에서 전통주교육원을 찾으러 오는 단골들이 생겨났다고 그는 자부한다. 전통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외부 강의도 다녔다. 몇 달 전에는 청주시 오창읍에 있는 농업기술원에서 괴산, 옥천, 보은 등 도민들을 대상으로 자그마치 6시간 특강을 뛰고 왔다. 그때 수강생들에게 보여줬던 발표 자료에 학교서 배운 내용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좋은 선생 밑에 좋은 제자가 있다던가. 3년 전 옥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도 막걸리, 전통주 교육을 3일간 진행했다. 그때 학교 퇴직한 부부가 동반해 강의를 듣고 갔다. 그분들이 충남 아산에서 진행된 전통주 대회에 나가 동상을 타고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그 부부가 우리 가게에 찾아왔다며 김 소장은 멋쩍게 이야기한다. 감사 인사를 한다고 떡을 해서 찾아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통주의 맛과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뻗어나가는 모습에 그는 보람을 느꼈다.

향수을전통주교육원 내 발효실에서 삼백주, 과하주 등이 담긴 항아리들이 저장돼 있다. 
향수을전통주교육원 내 발효실에서 삼백주, 과하주 등이 담긴 항아리들이 저장돼 있다. 
항아리 뚜껑을 열자 저온숙성으로 발효가 진행되고 있는 전통주가 보인다. 
항아리 뚜껑을 열자 저온숙성으로 발효가 진행되고 있는 전통주가 보인다. 

■ 22학번 새내기 만학도, 배움의 길 잇다

지난해 수시로 유원대학교에 들어갔다. 시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늦깎이로 학교에 들어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실은 전통주를 배울 수 있는 전문 학교가 많지 않은 가운데 옥천과 가까운 학교에서 술을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이끌렸다고. 배움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전통주를 빚을 때 어딘가 한계점을 느꼈던 그였다. 깊이에 더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수업을 들으니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현장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님 수업을 통해 도움을 얻었다. 오길 정말 잘했구나. 책이나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문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실험실 데이터 만드는 방법, 효모 개체수 등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자. 노트로 빨간 글씨로 메모하고 머릿속에 바로바로 입력했다. 감사하게도 전통주 특강을 하자고 학교에서 제안도 왔지만 지금은 마음만 받는 게 도리라고 봤다.

김 소장은 전통주마다 밑술과 덧술, 원주거르기 과정이 언제 이뤄졌는지 종이에 적어 구별하고 있다. 
김 소장은 전통주마다 밑술과 덧술, 원주거르기 과정이 언제 이뤄졌는지 종이에 적어 구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배우는 학교가 이 대학이 유일할 거예요.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요. 막내아들이 97년생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들어오는 학생들이 2003년생인가 그럴 거예요. 아들보다도 더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복학생 한 명이 ‘선생님, 형님이라 해도 되나요?’ 그래요. 아유 무슨 형님이야, 그냥 아저씨라 부르던가 원장님이라 불러라 했죠. 학교 교수님은 원장님 이렇게 부르고, 선생님 이렇게 부르는 학생들도 있고, 호칭이 그렇게 돼 버렸죠. 부담이 없지 않아요. 모범이 되어야 하고, 자식뻘 되는 학생들이잖아요. 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말자는 조심성이 생겨요. 세대간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은 아들하고 상의하고 그런답니다.”

김기엽 소장에게 전통주는 활력소, 설렘 같은 존재였다. 술을 담아놓고 3개월, 5개월, 길게는 1년 2년 정도 되는 과정에서 자식처럼 키우는 느낌, 첫 술을 먹었을 때 그 기대감. ‘맛은 어떨까?’ 그런 성취가 크게 다가온다. 그에게 전통주는 죽을 때까지 끌고 가고 싶은 무언가였다. 오죽하면 큰아들에게 퇴직하고 나면 같이하자고 제안도 했을까. 그만큼 애착이 크다. 뒤를 이어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지만 김 소장은 지금 옥천에서 좋아하는 전통주를 계속한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가 사실은 벼르고 벼른 사람만 내는 대회였어요. 그만큼 내공 있는 사람들이 출품하는 대회인데 한 해 마감을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다행이고요. 저는 전통주 시장이 블루오션이라 생각하거든요. 전통주 문화가 우리 옥천에도 많이 활성화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통주교육원 옆 카페 '정원'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통주.
전통주교육원 옆 카페 '정원'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통주.

군북면 국원리에 있는 향수을전통주교육원에서는 전통주 관련 체험 프로그램 및 전통주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찹쌀막걸리는 1리터(l) 9천원. 과하주, 석탄주, 삼백주는 375미리리터(ml) 기준 각 3만원, 2만8천원, 3만5천원이다.

문의 : 010-9276-5707 (향수을전통주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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