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8일 오후 1시 안남면 청정리에 있는 목공방 앞 정원. 이날 생태관광 프로그램 ‘마을을 담다, 마음을 담다’ 해설을 도운 안남 주민들과 외지 손님 20여명이 옹기종기 모였다. 이들은 오전부터 화인산림욕장에 들러 숲놀이 체험을 하고 생태도시락 곤드레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왔다. 안남의 자연과 생태를 오감으로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원 한쪽에 나무 재질의 도마와 수저, 젓가락, 스피커가 진열된 가운데 참여자들은 공방장 진행에 따라 목공예 체험에 몰입했다.
“오늘 수저를 한 번 만들어볼 건데요. 어렸을 때 연필 좀 깎아봤다, 공부 좀 했다, 그러면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나무 깎고, 사포질하고, 오일 바르는 작업까지 할 건데요. 예쁘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정성 들여 만들어서 소장하는 거잖아요. 손 다치지 않게 준비한 장갑을 끼시고요, 옷이 더러워지면 안 되는 분들은 앞치마를 두르시면 됩니다. 안전을 꼭 유의해주세요.”
안남에 사는 젊은 청년 우지후(35, 안남면 청정리) 씨가 우드카빙(Wood Carving; 나무 조각품) 수저를 같이 만들기 위해 목공체험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참여자들이 안남에서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 있게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안남을 떠오르면 또 오고 싶은 곳,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는 곳, 와서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제가 이 동네에서 막내예요. 저처럼 시골 와서 이런 활동하는 젊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시골 와서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거든요. 제가 살아보니까 안남이 참 좋은 동네예요. 여기 계신 분들도 안남에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안남면 청정리에 감성 충만한 목공방이 있다. 이곳은 목공체험의 장으로, 때로는 숲속힐링체험과 스몰웨딩, 워크샵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뜻의 가비뉴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우지후(오른쪽) 공방장과 부친 우희문(왼쪽)씨가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안남면 청정리에 감성 충만한 목공방이 있다. 이곳은 목공체험의 장으로, 때로는 숲속힐링체험과 스몰웨딩, 워크샵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뜻의 가비뉴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우지후(오른쪽) 공방장과 부친 우희문(왼쪽)씨가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 나무를 만지면서 힐링하는 공간

중간중간 마을 깨알홍보를 빼놓지 않던 그의 삶이 궁금했다. 숲속작은목공방 ‘가비뉴(Ghavigne)’를 운영하는 우지후 씨는 어떻게 시골에서 공방을 차릴 생각을 했을까? 2년 전 호주에서 온 그는 안남초등학교 65회 졸업생이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10~20대 시절 대부분을 해외서 지냈다. 중·고등학교를 필리핀에서 다닌 뒤 한국에 잠시 왔다가 호주로 떠나 해외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호주에 사는 지인 권유로 시드니에서 10년간 나무 만지는 목수로 일했다.

보일러를 쓰지 않는 호주 특성상 주로 마루바닥을 까는 작업을 하며 수입을 벌었다. 오랜 기간 머물렀던 호주에서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대전 출신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결혼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코로나가 발목을 잡으면서 목수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 또 아버지 우희문(73, 안남면 청정리) 씨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지후 씨는 위로 누나가 둘 있지만 하나뿐인 아들로서 아내와 상의 끝에 고향 안남에 다시 돌아왔다.

“공방을 2년 전부터 준비했어요. 처음에는 비닐하우스에서 하다가 안남에 예쁜 공간을 지어보고 싶었어요. 여기까지 차가 못 들어와서 기둥이며 자재들을 하나하나 다 날랐어요. 바닥도 폐팔레트를 잘라내서 만든 거라 인건비니 자재비 다 아꼈죠. 보통 목공방 하면 창고, 작업실을 떠올리잖아요. 목공방 카페처럼 해보고 싶었어요. 작업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나무 만지면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죠. 여기가 카페로 허가가 나진 않았는데요. 여기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그냥 차 한 잔씩 드리고 있어요.”

정식 오픈도 따로 안 했지만 이번처럼 생태관광 참여자들이 오고, 안남초등학교 학생들도 목공방에 왔다 갔다. 오두막 형태로 지어진 목공방 내부는 전체적으로 밝고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대 6~7명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1일 목공체험을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예약제로 운영하는 목공방은 우드가락지, 나무한스푼, 버터나이프, 원목도마, 우드스피커, 원목스툴 등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

우지후 공방장이 목공 체험을 하러 대전에서 온 청년들에게 나무 수저를 깎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우지후 공방장이 목공 체험을 하러 대전에서 온 청년들에게 나무 수저를 깎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배바우도서관, 안남의용소방대 등 지역에 녹아들다

공방 벽면에는 한국화 화가로 활동 중인 아버지 우희문 씨의 작품이 걸려 있다. 액자는 지후 씨가 직접 짜 그림을 하나하나 넣었다. 그는 아버지 자랑에 여념이 없다. “신문이랑 TV에 아버지께서 종이박스화가로 몇 번 나오셨어요. 벽화도 그리세요. 지난번에는 옥천미술협회 정기전에도 참여하셨고요. 아버지가 안남에서 깻잎을 처음 시작한 분이에요. 깻잎작목반에서 활동하면서 깻잎이 안남, 안내에 엄청나게 커졌죠. 군서나 금산 못지않은 물량이에요.”

공방 한쪽에 작은 함이 보인다. 배바우작은도서관 운영진인 지후 씨는 음료 판매가 어려운 대신 손님들에게 차 한 잔 대접하며 안남 아이들을 위해 쓰이는 기부금을 받고 있다. 그는 젊은 사람 특유의 활기로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현재 안남면 의용소방대에서 방범대원이자 총무부장을 맡고 있다. 대원들의 연령대는 40대 중후반에서 50대.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는 형님들이지만 지후 씨는 의용소방대 안에서도 ‘완전 애기’라며 웃으며 말한다. 이번에 목공방을 열면서 대원들이 응원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처음 안남에 왔을 때 저도 사람이다 보니 막막했죠. 어느 정도 밑그림은 그렸지만 인생이 생각대로 가진 않잖아요. 다행스럽게도 한 90%는 진행이 잘 됐어요. 처음에는 시골 와서 농사를 지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어렸을 때 농사를 지어보긴 했거든요. 그런데 농사는 막막하고 힘들다 보니 목공방까지 생각이 닿았죠. 제가 사는 집이 30~40년 된 오래된 집이에요. 내부를 다 수리했는데 저는 비만 안 맞고 살면 상관이 없어요. 그렇지만 와이프랑 아기도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가족이 편하다고 하면 저는 문제 없어요.”

■ 시골에 목공방을 한 또 다른 이유

공방 이름인 가비뉴는 지후 씨의 영어 이름 ‘개빈’에서 착안했다. 개빈을 불어로 하면 가비뉴가 되는데,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뜻이다. 나무가 사람에게 이로운 점이 많기에 가비뉴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공방 관련 소식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가비뉴'를 검색하면 계정 두 개가 나온다. 하나(@ghavigne_official)는 지후 씨가 만든 제품 사진, 다른 하나(@ghavigne________)는 공방의 일상 사진이 올라온다. 유튜브 채널 ‘가비뉴 GHavigne’에 들어가면 시골 일상과 공방을 짓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지후 씨는 앞으로 워크숍, 스몰웨딩, 캠핑 등 장소 대여도 계획 중이다. 또한 주변에 청보리밭, 유채꽃을 조성해 마을 풍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지후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이야기는 목공방이 아닌 그가 발 딛고 사는 안남으로 돌아왔다.

우지후 공방장이 목공 체험을 하러 대전에서 온 청년들에게 나무 수저를 깎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우지후 공방장이 목공 체험을 하러 대전에서 온 청년들에게 나무 수저를 깎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안남에 젊은 분들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안남초등학교 전교생이 20명 정도예요. 제 아기도 시골학교에 다녔으면 하는 바람인데 마을에 아이가 많지 않잖아요. 학교가 없는 동네는 상상할 수 없거든요. 제가 이런 목공방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에요. 아까 생태관광 하러 오신 분들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시골에서도 이런 활동을 하는 젊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네에 좋은 기운을 주고 싶었고요. ‘시골에 저렇게도 사는구나,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안남이 젊은 사람들이 와서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요.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이 마을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한다는 건 아실 거예요. 방과후에 아이들도 돌봐주고 있고요. 이번에 열리는 배바우장터처럼 젊은 부모님들이 참여해서 장사할 수도 있고요. 다른 데서 겪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죠. 제가 다른 시골도 많이 가봤지만 안남은 확실히 달라요. 시골에서 펼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답니다.”

주소: 안남면 청정리 88
문의: 010-3481-8687
운영시간: 오전9시~오후5시 (매주 토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ghavigne________

목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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