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정답이 있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맛은 제각각이다.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커피를 좋아하는가 하면 향이 나는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맛을 평가하는 기준은 주관적이다.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카페에서, 누구와 마시느냐도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고장에 커피숍 점포 수만큼이나 커피의 가치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렇지만 커피 맛을 평가하는 기준은 있다. 어느 분야든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듯 커피 원재료인 생두에도 등급이 매겨진다. 맛, 분쇄된 향, 산미, 후미, 질감, 균일성 등 지표들로 좋은 커피를 선별하는 작업이 시장에서 활발히 이뤄진다. 이처럼 생두를 감정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을 ‘커피 감별사’ 또는 ‘커피 헌터(Coffee hunter)’라 부른다. 이들은 전 세계에 해마다 생산되는 다양한 커피를 직접 맛보고, 다양한 산지에 돌아다니면서 질 좋은 생두를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다.
바리스타는 익히 들어봤는데 약간 생소한 직업군이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감별하는 사람이 우리고장에도 있다. 2018년부터 장야초등학교 인근에서 ‘셉템버나인 커피로스터’를 운영하는 이어령(38, 읍 문정리) 대표다. 이 대표는 2018년 미국 CQI(Coffee Quality Institute)라는 스페셜티 커피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통과해 ‘큐-그레이더(Q Arabica Grader의 약칭)’ 직함을 달며 전문성을 높였다. 그는 자격증 유효기간인 3년이 지나 총 27개 시험 관문을 다시 거쳐 최근에 갱신했다. 셉템버나인(September 9)은 이 대표의 생일인 9월9일을 영어로 표기한 상호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커피 여정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하는 업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죠. 저는 해외에서 수입한 생두를 볶아서 납품도 하고요. 창업컨설팅부터 이론·실습, 생두에 관한 이해, 메뉴 레시피 등을 교육도 해요. 커피숍 운영하는 사장님,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수업하는 선생님들이 저한테 배워가시죠. 정읍, 대구, 세종, 공주, 남해에서도 찾아오시고요. 대전은 너무 많죠. 커피 향미를 분석할 때 세분화한 미국 규정이 있거든요. 등급을 매기거나 로스팅하는 과정이 전문적인 내용이라 타지에서 배우러 많이 오세요.”

 

셉템버나인 이어령 대표는 커피나무를 다루는 농장과 농부에게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통하는 커피로스터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셉템버나인 이어령 대표는 커피나무를 다루는 농장과 농부에게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통하는 커피로스터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농부들을 만나러 무작정 갔어요

농장에서 커피 한 잔에 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해보고 싶었다. 커피 생두가 생산되는 현장을 가까이 보고 싶었다. 대학교 졸업학기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사흘 뒤인 2011년 12월22일 곧바로 출국했다. 학교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의 제안이 계기였다. 4개월 가까이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돌며 커피 농장을 스무 곳 넘게 다녔다. 그때 느낀 바가 있었다. 바로 농부들의 삶이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말할 때 과학, 문화, 예술을 말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이 상처 난 손으로 포대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곁에서 봤다. ‘커피는 이들의 삶’이라고 여실히 느꼈다. 정성스럽게 수확한 생두를 갖고 이 나라 커피는 어떻고, 저 나라 커피는 어떻고···. 이렇게 쉽게 말해도 괜찮을까. 지금도 1년에 두 번 정도 해외 커피농장에 다녀오지만 한 해 한 해 모든 걸 걸고 수확하는 농부들을 떠올리면 등급을 매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처음에 인도네시아 친구가 ‘형, 루왁커피 들어봤어요? 그거 해볼래요?’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죠. 아는 사장님에게 여쭤보니 ‘끙아’ 상태로 가져와 보라는 거예요. 사향고양이가 커피열매를 먹고 배설한 커피인데 희귀성도 있고 마니아층이 있거든요. 끙아를 갖고 와서 씻고 말려서 만들어본 다음에 마셔봤는데 재밌겠다 싶었죠. 그때 농장 가서 어르신들이 커피를 재배하는 모습, 물이나 흙을 보면서 나무 상태를 보는 법 등을 배우고 왔죠. 제가 충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교수님들이 특이한 제자 중 탑3 안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독특한 이력이긴 해요. 보통 바리스타로 있다가 로스팅으로 가는데 저는 생두부터 다뤘으니까요.”

2013년부터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서류를 넣으면서 청년창업을 했다. 말이 청년창업이지 실상은 서러웠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반년은 해외, 반년은 우리나라’를 왔다 갔다 했다. 커피 원재료가 돌아가는 흐름을 보고 왔다. 해외에서 생두를 보내오는 농장주 이름이 점차 익숙해졌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등 농장주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샘플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기반을 다졌다.

장야초등학교 인근을 지나가다 보면 간판이 없는 아담한 상가가 눈에 띈다. 이어령 대표가 운영하는 셉템버나인 커피로스터다. 이 대표의 어머니 송영희씨가 내리는 독특한 향미의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장야초등학교 인근을 지나가다 보면 간판이 없는 아담한 상가가 눈에 띈다. 이어령 대표가 운영하는 셉템버나인 커피로스터다. 이 대표의 어머니 송영희씨가 내리는 독특한 향미의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다.

■ 옥천에 이런 로스터리 카페가 있었다고?

“2014년에 대전에서 매장을 했어요. 어머니(송영희 씨)가 카페를 보셨는데 제가 없는 5년간 몸 건강이 안 좋아지셨죠. 제 욕심만 부리고 농장에 다닌 게 아닌가 싶었어요. 지금은 정리했고요. 대전서 제가 먼저 옥천에 왔고, 1년 뒤에 어머니가 오셨죠. 옥천이 공기도 좋고 마음 내려놓고 커피하기 좋을 것 같다고 권해드렸죠. 여기서는 생두하고 로스팅만 할 거라고요. 에스프레소 머신도 따로 안 뒀어요. 대전서 만났던 손님들이 가끔 오시는데 많이 놀라세요. 당시에는 표정도 그렇고 너무 바빠 보였는데 지금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데요. 푸근해졌다고 할까. 저도 옥천 와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어요.”

이원면 지정리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지만 택배사가 가까웠던 게 옥천에 온 중요한 이유였다. 한 자루에 70kg에 달하는 수입 생두들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창고로 보낸다. 어떤 택배기사는 농담으로 우리랑 거래 안 할 거냐며 물어본다. 그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하다. 처음 1년 반은 이곳을 창고로 썼는데 어머니가 오면서 드립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따로 홍보하거나 공간을 넓히거나 간판을 달거나 그러지 않았다.

저녁에 산책하던 옥천 분들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온다. 원두 사러 보통 대전에 갔는데 옥천에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어떤 분은 서울서 온 지인들을 접대하려고 찾아오기도 했다. 하나같이 ‘정말 맛있다, 서울보다 낫다’는 호평이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숙박하고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서 오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과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좋은 커피들은 산뜻하면서 살아있는 향미가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뿐이다.

“같은 재료라도 바리스타가 어떻게 최종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온도, 추출시간, 환경 등 여러 요소가 커피 맛을 좌우하거든요. 스테이크와 비교하면 야채를 언제 투입하느냐, 불의 세기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잖아요. 커피의 굵기, 눌러주는 무게, 사람마다 악력도 다 달라서 향미 차이가 커요. 커피는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사계절을 같이 겪는 친구 같은 존재죠.”

■ 커피를 매개로 학생들을 만나다

지난해 충북산과고 특수반 학생 24명을 데리고 바리스타 수업을 했다. 1학기엔 커피를 자유롭게 즐겼고, 2학기 때부터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했다. 2명 정도 제외하고 큰 이탈자 없이 합격했다. 커피라는 공통 관심사로 같이 어울렸던 시간이 행복했다. 그때부터 학생들에게 관심이 갔다. 올해는 행복교육네트워크 오정오 선생님 제안으로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과 함께 청소년동아리활동사업에 힘을 보탰다.

라온커피동아리에 있는 중·고등학생 7명을 만나 즐겁게 커피를 접할 계기를 만들어줬다. 지난 9월에 지용제도 참여했는데 가능하면 간섭을 안 하려 했다. 관련 서류도 직접 쓰게 했다. 무균실에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진정한 어른일까. 청년 창업할 때를 돌아보면 아프고 힘든 경험이 삶을 헤쳐 가는 토양이 됐다.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어른들에게 잔소리도 들어봐야 성장한다.

“바리스타 시험이 35년 전 이론이에요. 원재료를 다루는 방법이나 추세가 달라졌거든요. 커피 생두를 재배하는 농장주들도 자기 차를 팔아서 시설을 현대화하고 더 좋은 맛을 내려고 비료나 이런 걸 다 연구하거든요. 제가 성장했던 지점은 그거였어요. 전국에 영업을 다니면서 이분들의 로스팅, 커피를 다루는 방법을 습득하면서 매장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걸 봤죠. 답을 두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 알면 알수록 놀라운 커피 세계

바리스타가 아름다운 백조라면, 우리는 ‘백조의 발’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수면 밑에서 발을 열심히 휘젓고 다닌다. 해외에서 가져온 생두 자루들을 트럭에 다 내리고, 그 무거운 에스프레소 머신을 싣고 설치하러 다닌다. 로스팅할 때 온도가 200도까지 올라간다. 여름에 땀이 비 오듯 내린다. 손님들은 모르고 지나가는 이야기다. 고생하는 직업이지만 의미와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왔다.

커피를 하면서 사람을 구분 짓지 않고 만나서 좋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 교류하는 매력이 있다. 커피 농장에서 커피 한 잔으로 오기까지 그 중간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 그 사이에 빈틈이 많다. 커피를 대하는 관점, 재밌는 에피소드, 농부들의 인생 이야기로 채우고 싶었다. 종자, 해발고도, 가공방법, 농장 지역, 농장 이름 그리고 향미까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차이가 크다. 종이 한 장 차이는 그리 가볍지 않다. 그 종이 한 장을 만드는 데 수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저희는 매개체예요. 이 일련의 과정을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소비자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이죠. 상호 교류가 정말 중요해요. 저희가 직접 농사짓는 거 아니잖아요. 농사지어 온 것들을 저희가 설명해드리는 일이죠. 커피 원두든 핸드드립이든 맛있는 한 잔을 바라신다면 언제든 놀러 오세요. 모든 걸 다 알려드리긴 어렵지만 조금 더 깊은 커피 이야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요. 다른 데처럼 ‘그거는 비법이에요’ 하지 않아요. 저희 수업 내용에서 다 하는 얘기거든요. 옥천에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고요. 커피가 정말 다양하고 여러 매력이 있다는 걸 교류하면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옥천읍 장야4길 26-1 102호
010-5767-7117
오전11시~오후7시
@sept.9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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