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안내면 현리에 개업한 ‘혜은당 공방’
전통한복 만들기 취미·자격증·1일 강좌 열어
강혜령 대표, 6년 전 친정어머니 모시고 귀촌
재봉틀·바느질 초보 등 한복 관심 있으면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 누구나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온다. 사람이 옷을 입는다는 건 사회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지면서 입는 옷들은 다양해졌다. 특이하게도 아기들이 처음 태어나 입는 옷, 배냇저고리는 우리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엄마의 배 안에 있을 때부터 입는 저고리라는 뜻에서 유래된 배냇저고리, 깃이 없이 고름으로 간단하게 여미는 형태로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둔 옷이다.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빌며 엄마가 한땀 한땀 만들어줬던 배냇저고리는 그저 입히는 물건이 아닌 마음과 뜻이 담긴 우리 한복 문화였다.
오늘날 한복은 선조들의 문화, 예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몸을 압박하지 않는 여유로움과 단아하고 우아한 한복 고유의 멋이 드러난다. 알면 알수록 깊은 뜻이 담긴 한복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우리고장에 한복 만들기를 가르쳐주는 공방이 열려 눈길을 끈다. 지난 10월5일 안내면 현리에 개업한 ‘혜은당 우리옷공방’은 전통한복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강혜령(63, 안내면 현리)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1988년부터 한복 만드는 걸 취미로 접한 강 대표는 전통한복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시중에 생활한복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나오는 옷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있던 그는 우리 전통옷을 제대로 알고 만들자는 취지로 한복만들기 강좌를 열었다.
“한복을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곳이 서울, 부산, 대구 이런 데밖에 없을 거예요. 양장이나 일반 옷과 달리 한복 만드는 게 더 어렵고 복잡해요. 그렇지만 우리 전통이잖아요. 결혼식이나 명절, 돌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 입으면 좋으니까요. 저는 이제 나이가 있어서 안경 끼고 옷을 만들어야 하지만 젊은 분들에게 한복 만드는 걸 알리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공방을 열었어요.”

혜은당 우리옷공방을 운영하는 강혜령 대표가 미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복기능사, 한복산업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그는 공방에서 한복만들기 강좌를 운영하는 중이다.
혜은당 우리옷공방을 운영하는 강혜령 대표가 미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복기능사, 한복산업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그는 공방에서 한복만들기 강좌를 운영하는 중이다.

■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살아라’

강 대표가 옥천에 온 지도 어느덧 6년째가 됐다. 서울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가 가족과 함께 옥천에 온 이유는 친정어머니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이웃동네 영동에 모셨으나 거주여건이 안 맞아 다른 지역을 알아보던 중 옥천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제가 막내딸이라 같이 왔어요. 어머니는 지금 월외리에 사시는데요. 영동에 계셨을 땐 잘 걷지도 못하시고 생활이 잘 안 맞으셨나 봐요. 그래서 영동 계실 때부터 주말마다 다른 지역을 보러 다녔죠. 그중 월외리가 괜찮으셨나 봐요. 정말 다행이었죠. 그날 아침에 비가 많이 왔는데 여기 도착했더니 해가 쨍쨍 나고 약간 언덕에 있어서 느낌이 좋았어요. 인테리어 일을 하는 작은오빠가 도움을 줘서 빈 땅에 집을 지었죠.”

혜은당 공방은 한학자였던 강 대표의 어머니가 지은 이름으로 은혜 혜(恩), 은혜 은(惠)을 썼다.

“어머니가 한학자였어요. 문화센터에서 강의도 하셨거든요. 연세가 지금 95세이신데 팔십 넘어서도 한자를 가르치셨죠. 영동 계실 때도 용화초등학교에서 방과후수업을 나가셨는데요. 어머니께서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살라는 뜻으로 혜은당이라 지어주셨어요.”

현리교 인근 카페토닥 옆에 자리한 혜은당은 1층 사무실, 2층 작업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현리교 인근 카페토닥 옆에 자리한 혜은당은 1층 사무실, 2층 작업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 주민들을 만나며 옥천을 알아가다

시골살이가 처음에는 생경했지만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그는 옥천에 정착하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 지난해 1년 가까이 옥천교육지원청에서 군민행복일자리로 있었던 강 대표는 행복교육지구 사업과 관련된 여러 단체를 만났다. 이때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을 만나며 옥천이라는 지역을 더 깊게 알아갔다.

“도시에만 살다 시골에 오니까 적응하는 데 쉽지 않았어요. 언제는 밖에 나갔는데 멧돼지가 보이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밖을 안 나간 적도 있었는데요. 작년에 교육지원청에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난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그때 만났던 분들과 반갑게 얘기도 나누면서 옥천을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됐죠. 애들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옥천에 와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는데요. 하나 아쉬운 게 일자리였는데 이번에 공방을 열었으니 옥천에 눌러살 핑계가 생겼네요(웃음).”

강 대표는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돌봐야 했기에 한복을 업으로 삼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복 만드는 일을 놓지 않았다. 10년 넘게 집 가까운 복지관에 다니며 한복을 배우고 집에 있던 미싱으로 한복을 주문 제작하며 꿈을 키웠다. 그리고 2009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하는 한복기능사 시험에 합격하며 성과를 냈다.

조금 더 욕심을 내 한복산업기사 자격증을 목표로 했다. 필기시험과 함께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장 7시간이 걸리는 실기시험이 기다렸지만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6년 전 한복산업기사 자격증 또한 땄다.

강혜령 대표가 공방 정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강혜령 대표가 공방 정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 내 손으로 만드는 우리 아이 한복

“7년 전부터 산업기사 시험 보려고 서울서 학원에 다녔는데요. 배우다가 중간에 옥천에 온 거예요. 제가 학원 다닐 때만 해도 학원비가 400만원이었거든요. 그때를 떠올리면 제가 운영하는 공방은 정말 저렴하게 하는 거라 자부해요.”

개인지도로 운영하는 혜은당은 여아치마·저고리를 만드는 취미반A, 남아바지·저고리를 만드는 취미반B, 한복기능사 자격증반, 동양매듭 등을 배우는 1일 특강반이 있다. 취미반은 주 1회, 하루 3시간 수업으로 10주 과정인데 강 대표는 가급적 일정을 앞당겨 밀도 있게 배우길 권하고 있다. 한복기능사 자격증반은 12주 과정이다.

여아 한복
여아 한복

“기초부터 배우니까요. 바느질을 못하면 바느질부터, 재봉틀 다루는 것부터 할 거예요. 처음부터 어른 옷을 만들면 부피가 커서 힘들어해요. 여아, 남아 한복을 만들면 큰 사이즈도 금방 따라가죠. 여자 한복은 치마, 저고리가 있지만 남자 한복은 바지, 저고리에 ‘배자’라고 조끼처럼 걸치는 게 있고, 머리에 쓰는 ‘복건’이 있어서 종류가 더 많아요. 그래도 여자 옷 만드는 게 더 어렵죠. 연습하다 보면 10주 안에 다 만들 수 있어요.”

미싱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참여하면 한복이 아닌 리폼 제품도 만들 계획이다.
“제가 작년부터 폐현수막을 모아서 장바구니처럼 쓸 수 있게 현수막 가방을 만들거든요. 청바지도 리폼하면 가방이나 앞치마로 유용하게 쓰니까 이런 특강반도 열려고요.”

까치 두루마기
까치 두루마기

■ 미싱, 스팀다리미 등 완비

혜은당 공방 2층에 올라가면 수강생들이 수작업할 널찍한 공간이 있다. 작업 테이블마다 일반 미싱, 컴퓨터 미싱 등 총 10대가 준비돼 있다. 스팀다리미 또한 마련돼 있는데 강 대표는 한복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기초 중 하나가 다림질이라고 말했다. 다림질하는 방법도 따로 알려준다.

“여기가 개인 공방으로 운영되고 한복 비용도 꽤 드니까 비용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분들이 계신 거 같아요. 그래서 다른 것도 시도해보려고요. 입지 않는 한복을 수거해서 수선하든가 아니면 깨끗하게 해서 대여해드리는 거죠. 한복 대여비가 되게 비싸거든요. 학교 잔치할 때나 특별한 날 학생들에게 빌려주면 어떨까 싶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강 대표는 전통한복에 초점을 맞춰 가르치지만 수강생이 원하면 개량한복 또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혹여나 의류나 한복을 배우고 싶은 고등학생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젊었을 때 배워두면 자기가 디자인할 수 있잖아요. 융합이 강조되는 시대에 꼭 한복이 아니어도 한복 배운 걸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주변의 도움 덕분에 공방을 열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 공방 자리는 신협이 있던 빈 건물이었는데 신협 이사장님에게 부탁해 자리를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대전에 있는 창업사관학교에서 5개월간 교육을 이수한 뒤 나온 지원금으로 공방 운영에 보탬을 했다고.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두 딸의 응원과 지원도 한몫했다.

혜은당 2층에 옷을 짓는 데 필요한 미싱, 다리미, 옷감 등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수강생 교육이 진행된다.
혜은당 2층에 옷을 짓는 데 필요한 미싱, 다리미, 옷감 등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수강생 교육이 진행된다.
미싱기
미싱기

■ 조금 느려도 끈기만 있다면

“큰딸은 판교에 있는 게임회사에 다니고, 작은딸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하는데요. 이번에 사무를 볼 때 쓸 컴퓨터도 갖다주고, 홍보 현수막이나 간판에 있는 글씨랑 디자인도 다 해줬어요. 제가 쥐띠라고 캐릭터도 하나 만들어줬네요.”

그는 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과 2년 과정에 편입해 이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 올 연말 기말고사가 끝나면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는 그에게 전통한복의 맥을 잇겠다는 포부가 느껴졌다. 강 대표는 한복이 가진 아름다움과 가치에 관심을 두는 게 시작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밴드 ‘전통한복만들기’에 가입하면 혜은당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 한복에 관심 있는 이들은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말 그대로 전통한복을 가르치고 싶어요. 전통한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면 생활한복을 만들 때도 전통을 이어가면서 더 예쁘게 할 수 있거든요. 저는 바느질도 그렇고 처음 한복 배울 때 그렇게 빠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 싶으면 집중력이 있었거든요. 뭐든 빨리 배우기보다 꼼꼼하게 하는 성격이었는데 한복이 지닌 가치와 제 성향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조금 느리신 분들이 있더라도 잘 붙잡아서 한복을 끝까지 완성하게, 재미도 챙겨가게 해드리고 싶어요.”

한복 노리개
한복 노리개
미싱기
미싱기

주소: 안내면 현리3길 10
문의: 733-7046
운영시간: 오전10시~오후6시
네이버 밴드: band.us/band/8772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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