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이야기는 내 가슴으로 와 푹 안겼다
지난 9월21일~26일 정가매 작가 첫 개인전 열려
주제는 [Dream-Story of sky] , 하늘과 구름 형상 담아
직장 다니면서 새벽마다 일어나 작품 활동 매진해

편집자주_ 삶의 무게를 내려놓자 눈앞에 하늘이 나타났다. 가슴을 활짝 열며 하늘을 바라봤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림을 그려보겠노라. 하늘은 나의 캔버스. 푸른 하늘, 노을, 태양, 밤하늘, 나무 잎새, 구름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너무 화려할 필요 있을까. 그저 순탄하게. 자연적인 것이 감사하고 좋다는 걸 느낀다. 인생도 그렇다. 자연적으로 살아야 어떤 과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던 만큼 자주 우울해지고, 누군가를 믿었던 만큼 불안해하며 사는 우리네 인생. 그래도 그림 그릴 때만큼은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자연과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나를 다독였다.
지난 9월21일부터 26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관성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정가매(67, 읍 수북리)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주제는 <Dream-Story of sky>, 바로 ‘꿈-하늘 이야기’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41점은 대청호, 삼청리 저수지, 석탄리, 지양리, 매화리, 동이면 금강 주위, 추소리 등 그가 일상에서 본 옥천 자연환경과 타지에 가서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배경으로 했다.
정가매 작가는 1997년 홍익대학 화우회전(서울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현대미술여류작가전(대전 고트빈갤러리, 2022), 제55회 한국미술협회전(서울 예술의전당, 2021), 제20회 부산국제아트페어(부산엑스코, 2021), 옥천미술협회 정기전(2012~2021)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번에 생애 첫 개인전을 옥천에서 열었다. 직장과 가정 모두를 챙겨야 했던 그는 전업작가처럼 그림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품었던 화가가 되고 싶은 꿈마저 내려놓지 않았다.
“전시회는 나를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되게 부끄럽고, 불안하고, 가슴 떨리는 일인데요. 첫 전시회를 열어서 감동이 일어났지만 ‘잘 돼야 하는데’ ‘잘 그렸나’ 자문자답이 생기네요. 좋기도 하면서 불안한 떨림이 있어요. 마치 심판을 받는 기분이죠.”

정가매 작가
정가매 작가

 ■ ‘언니, 저 옥천에 잘살고 있어요’

정 작가가 옥천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2년이 지났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다. 그러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이 아닌 서울여대 농촌과학과에 진학하며 그림과 잠시 이별하는 듯했다. 당시 ‘농촌을 과학화하자’는 시대 흐름에 따라갔는데 결과적으로 전공을 살리지 못 했다. 그는 서울서 개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시부모님이 사는 옥천에 터를 옮겼다. 그렇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잠깐 머물다 갈 생각이었던 옥천에 지금까지 살 줄 그때만 해도 몰랐다.

“저도 이 나이가 되기 전에 욕심이 있었죠. 꿈이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그림 그리는 것, 하나는 사회봉사. 돈 많은 자산가가 돼서 사회에 베푸는 봉사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죠. 결혼하면 다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돌아보니 내게 물질은 주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끈을 놓지 않았네요. 이 세월을 사는 동안 역경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정말 붓을 놓지 않았어요. 매일 그리진 않아도 머릿속에 그림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사람은 꿈을 놓지 말아야 해요. 인생은 자기가 만들고 개척하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만큼은 지켜야 하고, 끝까지 끌고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정가매 작가 개인전이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정가매 작가 개인전이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도시 서울에 살다 시골 옥천에 왔을 때 고민과 역경이 찾아왔다.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로 태어나 농사짓는 걸 안 보고 컸기에 시골에 어떻게 사느냐는 우려였다. 이번 개인전을 보러 옥천에 온 큰언니에게 말했다.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언니가 작품들을 보며 많이 놀란 눈치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내보인 적은 없었으니. 옛날에 언니와 나눴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잠시 글썽였다.

옥천에 살았던 세월은 내 안에 있던 욕심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옥천의 산천초목을 보며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인위적인 추상화나 비구상보다 눈앞에 보이는 자연 풍경이 그림 소재로 다가왔다. 파격적인 그림보다 자연 그대로를 옮겨놓는 회화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뒀다.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연적인 정서를 살리니 어느새 그림이 됐다.

 정가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작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가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작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잠을 줄여가며 그림을 그린 세월

새벽 3~4시에 잠에서 깨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침 7시20분 금강휴게소에 출근하기 전까지 그림 그리고 집안 살림까지 병행했다. 그렇게 올해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배움의 열정은 누구보다 많았다. 나이 마흔이 됐을 때, 서울에 있는 홍익대 사회교육원에 가서 4년 동안 서양화 공부를 했다. 당시 옥천에서 식당 일을 하면서 말이다. 매주 금요일 새벽 5시15분 첫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기차만 타면 잠이 스르르 찾아왔다. 8시20분 서울역에 도착하면 화장실에서 화장하고 택시 타고 홍대에 갔다.

“잠을 줄여야 했어요. 직장일 해야지, 집안 살림해야지, 그러다 보니 남편이 가사 일을 많이 도와줬죠. 바쁠 때 챙겨주고, 하지 말라고 말린 적이 없었어요. 자꾸 하라고 격려해주니 즐길 수 있었죠. 작년에 부산 벡스코에서 전시하고 나서 내가 그랬어요. ‘여보, 이거 돈 들여서 했는데 집 안에 다 들고 와가지고...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해?’ 남편이 그래요. ‘그래도 해야지.’ 그래서 했어요.”

서예, 서각을 하는 남편의 이해와 응원이 힘이 됐다. ‘여자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 하면 아마 못 그렸을 것이다. 진정한 외조 덕에 붓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같은 작가로서 ‘붓을 놓지 마라’ ‘꿈을 놓지 마라’ 잔소리 같은 격려를 많이 했다. 덕분에 1등 몇 개로 좌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마음의 힘,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내면에 깃들었다.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았다.

“3년 뒤에는 이제 70살인데 그때 개인전을 한 번 더 할 생각이에요.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 성숙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이 생겨요. 저는 그래요. 실버 세대라고 해서 두 손 두 발 놓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늦지 않았거든요. 90세까지만 살아도 20년은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생각하면 뭐가 늦었나 싶어요. 등산을 하든,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스스로 삶을 만들어야 해요. 남 탓하며 세월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못 해’ 그러면 ‘왜 못 하냐’고 하죠. 모든 걸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이름 세 글자로

지난달 21일 오후 2시 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는 정가매 작가 개인전을 축하하고자 관객 50여명이 찾아왔다. 이날 찾아온 진주여고 동기 동창 최숙희(67, 세종) 씨는 학창시절 정 작가가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상시 하늘을 보면 친구 생각이 난다는 최 씨는 정 작가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최 씨는 “친구 집에 가서 작품들도 보고, 지난해 부산 벡스코 전시에도 찾아갔는데 그림을 야무지게 잘 그린다”며 “팍팍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진주여고 동기 동창도 이날 찾아왔다. 대학교에서 강의하다 은퇴한 김인선(67, 대전) 씨는 정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하며 단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김 씨는 “다양한 구름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며 “친구가 제2의 인생을 정말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며 기뻤고, 실버세대의 좋은 표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의 딸도 이날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생산지원팀에서 일하는 김한지(29, 읍 수북리) 씨는 어머니가 집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일을 병행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자식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그래도) 꿈을 잃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려줘서 감사하다”며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자기 이름 세 글자로 있어줘서 고맙다”며 축하의 말을 남겼다.

정가매 작가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빗대어 첫 개인전을 연 소감을 전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밤마다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 정도로 이번 전시를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달 21일 개인전을 보러 온 관객들 앞에 서서 인사말을 건넸다.

‘아시다시피 제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업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꿈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정말 어려운 시간도 많았지만 작은 꿈을 놓지 않고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남편이 기를 죽이지 않고 긴 세월을 함께 해줬습니다. ‘해봐, 해봐. 어렵더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이야.’ 그리고 오늘 제가 감히 여러분들 앞에 전시회를 열고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아온 곳은 경상남도 진주, 성장기는 서울에서 지냈지만 옥천에 산 지 30년이 넘어버렸습니다. 옥천이 제 고향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살았습니다. 저도 아스팔트 빌딩만 보다가 옥천에 살면서 이 자연 공간이 너무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길에 지나가다 풀 한 포기, 흔들리는 잎 하나만 보더라도 가슴이 떨리고 ‘언젠가는 저것을 그림으로 옮겨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저는 이 옥천을 바라보며 그렸어요.

저는 자연 친화적인 그림을 그리거든요. 제 눈에 펼쳐진 자연 자체가 그림이었고,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옥천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 옥천에 사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제 작은 소망을 꿈꾸면서 그 꿈을 실현할 것이며, 아름다운 옥천에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더 열심히 그리겠습니다. 제 작은 전시지만 보시면서 간접적인 자연으로 위로 받아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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