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시 한 스푼’ 지용시낭송협회 시낭송가들의 이야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 「향수」 중)
정지용 선생의 고향임에도 낭송협회 하나 없었다. 우리 지역 축제인 지용제에서도 서울에서 내려온 지용회 회원들이 낭송하고 가는 게 한이 됐을까. 백지상태였지만 지역을 위해 부딪혀보기로 했다. 문화원을 비롯한 여러 곳의 도움으로 아홉 명으로 시작한 협회는 지금 스무 명이 넘어간다. 이제는 정지용 전국시낭송대회를 비롯해 지용시 낭송 콘서트도 개최할 정도로 시낭송 문화에 깊게 자리한 지용시낭송협회(회장 김정미). 오늘도 서정적인 배경음악 아래, 시낭송가들의 수려한 목소리가 주파수를 타고 지역에 스며들어간다.

‘오후의 시 한 스푼’은 회장직을 역임한 엄정자, 강영선, 손기연, 김정미 총 4명의 시낭송가들이 돌아가며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다소 특이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본도 진행자들이 주제를 정해 직접 작성한다. 계절에 알맞은 시를 골라 낭송하거나 시인을 모셔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시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사실 생업과 병행하며 시낭송 활동을 하고 대본 준비까지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아는 작가들에게 연락해서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대본을 작성하기도 했다고 진행자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8월 한 달 동안 ‘오후의 시 한 스푼’을 거쳐간 시낭송가는 총 10명. 평소 시에 흥미가 있고 주변의 권유로 시낭송을 시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시낭송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 시낭송가 칭호를 얻기 위해 강사 지도 아래 시 여러 편을 하나하나 외우고 목소리를 갈고닦는다. 시낭송대회 수상자 중 일부만이 전문 시낭송가 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 “인증서 따기가 쉽지 않아요. 대회에 여러 번 나가도 안 돼서 속을 태우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회원 반 이상이 시낭송가 인증서를 받은 곳은 많지 않다고 자랑스레 전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름 가나다 순)

강영선, 김홍란, 박호희 시낭송가
강영선, 김홍란, 박호희 시낭송가
엄정자, 이영애 시낭송가
엄정자, 이영애 시낭송가
김기정, 이승옥, 김정미, 한선자 시낭송가
김기정, 이승옥, 김정미, 한선자 시낭송가

 ■ 어떻게 시낭송을 시작하게 됐는지

연정희 초대회장이 시 한번 읽어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원래 시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좋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죠. (강영선) 

여고 동창이 전화로 시낭송을 들려주는데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학교 선배인 강영선 씨가 시낭송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상의 후 협회 가입 안내를 받았죠. (김기정)

제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한데 목소리가 좋다는 소리를 가끔 들었어요. 어릴 때 연극부도 잠깐 하기도 했어요. 친구 따라 시낭송 대회를 보러 갔다가 시낭송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받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김정미)

조금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시낭송을 하게 됐는데 힘든 걸 잠시나마 잊을 수 있더라고요. 또 시를 외우면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그렇게 시의 매력에 빠져서 시낭송 대회도 나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김홍란)

학창 시절에 시 외우는 걸 참 좋아했어요. 웅변도 했어서 관심도 많았고요. 그러다 시낭송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받아서 협회에 들어왔어요. 시를 읽으면 잡생각에서 벗어나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더라고요. 시낭송은 시와 연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박호희)

문화관광해설사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고 시낭송하기에 너무 좋은 목소리인데 시낭송을 해보지 않겠냐고 말했어요. 제 목소리 톤이 낮은 편인데 이 목소리로 낭송을 할 수 있을까 한참 생각만 했었죠. 그러다 시낭송 콘서트를 보러 오라고 해서 갔었는데 무대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시작했어요. (손기연)

창립 멤버예요. 문화원 부원장으로 있을 때 우리 지역 주민들이 시낭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마음 맞는 분들과 시낭송회를 만든 게 시작이라 할 수 있죠. (엄정자)

모임에 갔는데 지인이 박종화 시인의 「천년 사랑」을 낭송하더라고요. 거기서 시낭송의 매력에 빠졌죠. 기회가 있으면 시낭송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협회 가입 제안이 와서 좋다고 했어요. (이승옥)

협회에 초등학교 동창인 남자 회원이 있어요. 시낭송 대회를 구경 갔었는데 그 친구가 낭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죠. 그러다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난 거예요. 그래서 얘기했더니 자기한테 말하면 된다고 해서 협회에 가입 하게 됐어요. 친구 따라간 거죠. (이영애)

김홍란 씨와 모임을 했었어요. 커피 한 잔 하는데 본인이 시낭송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혹해서 나도 해볼까 했는데 고민을 좀 했어요. 아무래도 무대 앞에 서야 된다는 게 두려웠었거든요. 지금은 없지만요. (한선자)

■ 좋아하는 시나 시인이 있다면

정지용 시인의 시는 산수화 같아요. 시를 읽으면 그림이 그려져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그려지는  「향수」처럼요. 제일 좋아하는 시는 「백록담」이에요. 시를 읽으면 백록담을 오르면서 보이는 꽃부터 시작해서 아름다운 여정을 모두 볼 수 있어요. (강영선)

엄마를 잃은 슬픔을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로 많이 달랬어요. 윤동주 시인의 「서시」, 정지용 시인의 「풍랑몽」도 좋아해요. (김기정)

송수권 시인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애틋함, 애절함이 묻어나는 시가 많아요. 그중에서 「여승」을 좋아합니다. (김정미)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요. 바람과 비라는 자연 현상을 딛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에게서 우리네 삶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고되고 슬픈 삶도 공존할 수 있고 독자에게 용기와 위로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서정시라고 생각해요. (김홍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 들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 「수산화에게」를 좋아해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 한마디가 가슴속에 남아서 수선화에 빗대서 시를 썼다고 해요.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극복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시인데 삶의 위안을 주는 것 같아요. (박호희)

시가요로 불리는 곡들을 많이 찾다보니 정호승 시인의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됐어요. 가수 안치환 씨가 정호승 시인의 작품들로 노래를 하시거든요. 그 중에서 「연어」를 가장 좋아합니다. (손기연)

정지용, 윤동주 시인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요즘은 이해인, 나태주 시인. 우리 삶과 비슷한 현실적인 시를 주로 쓰셔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엄정자)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을 좋아해요. 시낭송 대회를 나간다면 이 시로 하고 싶을 정도로요. 제 가슴에 닿는 시들이 좋아요. (이승옥)

나태주 시인이요. 시가 함축적이잖아요. 짧은 글 안에 모든 게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영애)

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사이」를 좋아해요. 최근 버스킹 무대에서 이 시를 낭송했어요. 그때부터 이생진 시인을 관심을 두고 좋아했어요. (한선자)

■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유명해서 잘 아는 시보다 사람들이 알아갔으면 하는 시를 소개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몰랐던 작품들을 라디오를 통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청취자분들도 준비한 시를 들으시면서 위로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강영선)

옥천은 참 축복받은 지역인 것 같아요. 정지용 선생이 계셨다는 것 자체만으로 첫 번째 축복이고요. 두 번째 축복은 정지용 선생이 계셨기 때문에 협회가 보다 수월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 마지막 축복은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시낭송의 매력을 청취자분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정미)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진행자뿐만 아니라 게스트, 라디오 PD, 그 외 많은 사람들이 힘을 쏟고 있어요. 청취자분들을 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들으면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좋은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희에게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협회랑 라디오 둘 다 잘 될 수 있도록 힘 좀 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기연)

처음 라디오 녹음할 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협회가 이 정도로 발전했나. 대본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시어를 청취자분들에게 전달해주고 협회를 알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일반인들에게 시낭송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고 특히 정지용 선생을 우리 고장에서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보람 있죠. (엄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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