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욱 작가 [잠자리와 프랙털] 개인전 열려
지난 12월 한 달 동안 구읍 교동갤러리카페 전시
작은 미물의 세계에서 복잡한 세상의 질서를 탐구

문상욱 작가

전국에 수많은 학생이 수학을 배우다 좌절한다. 괜히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 테다. 그리스어 마테시스(mathesis) 어원에서 파생된 수학(mathematics)은 배움, 정신수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숫자나 기호를 이용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한 예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정사각뿔 모양의 이집트 피라미드가 4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건축물 안에 정교한 수학적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1일~31일까지 교동갤러리카페에서 아홉 번째 개인전 <잠자리와 프랙털>을 연 문상욱(68, 청주 죽림동) 작가는 28년 동안 중·고등학생을 가르친 수학교사였다. 자연과 사회현상을 수학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와 체계를 간명하게 풀어내는 데 능통하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21점은 그가 사진으로 남긴 잠자리 날개를 여러 기법으로 표현했다. 문 작가는 세상의 이치가 자연에 있고, 그 안에 우리 인간사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 수학 가르치는 일보다 좋았던 사진

“교직에 있을 때 취미로 사진을 했어요. 하다 보니까 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 훨씬 재밌더라고요.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온통 사진 생각만 하고 있더군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양심의 가책이 들었어요. 교육자라면 교육에만 전념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고민을 거듭하다 정년을 10년 앞두고 2007년 초에 명예퇴직해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어요. 무엇보다 아내가 제 꿈을 응원해준 게 힘이 됐어요. 퇴직하고 난 다음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행복했어요.”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태어난 문상욱 작가는 지금까지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며 천착한 주제가 주로 자연이었다. 전시회 제목에서 보듯 ‘자연으로부터의 명상’(1회, 1997년) ‘꽃 이야기’(2회, 2005년) ‘숲에서 배우다’(4회, 2012년)는 크게 보면 이번 전시 주제와 맥이 닿아 있다.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라는 동양의 노자, 장자 사상에 관심이 있었다. 반면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본 서양의 자연관은 거리를 두고 바라봤다.

“쉽게 말해 가다가 언덕이 있어요. 우리는 언덕을 피해서 가려고 하잖아요. 서양은 언덕을 깨부시는 거예요. 서양의 자연관은 자연과 공존이 아니라 자연을 이기는 거예요. 그래야 인간이 편하잖아요. 하지만 탄소 배출이나 자연재해 문제는 이미 우리 현대인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죠. 그 배경에는 서양의 자연관에 있다고 봐요. 사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렇지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전시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아요.”

알루미늄판과 노란 페인트를 활용해 잠자리 날개를 표현한 작품.
알루미늄판과 노란 페인트를 활용해 잠자리 날개를 표현한 작품.

■ 작은 것에서 세상 이치를 깨닫다

문 작가에 따르면 자연의 원리를 찾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미시적 관점’이다. 그는 잠자리 날개라는 비교적 작은 물성을 통해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틀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속에서 부분이 전체를 닮아 자기 유사성을 띠는 프랙털(fractal)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생겨난 종교나 철학처럼 우리 삶이 무엇인지, 자연의 이치가 무엇인지 깨닫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닮았잖아요. 그런데 DNA가 완전 똑같지 않아서 차이는 있겠죠. 그런 걸 인문학적 프랙털이라 불러요.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 얼굴을 보고 상상할 수 있어요. 프랙털 구조이기 때문에요. 은행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나뭇가지나 잎을 하나하나 보고 ‘이게 은행나무구나’ 하지 않잖아요? 재밌게도 은행나무잎이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생겼어요. 프랙털 구조가 있는 것들을 다 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정치하는 사람들도 그래요. 한 두 사람만 알면 정치하는 사람들 특징을 알 수 있어요(웃음).”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문 작가는 잠자리를 잡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채집한 잠자리의 날개를 유리 위에 올려놓고 ‘라이트박스’라는 도구를 이용해 빛을 비춰 선명한 사진을 담아냈다. 카메라로 찍으면 상이 깨끗하게 보이지 않아 포토샵 작업을 했다. 디지털화 작업을 거친 사진은 캐드(cad) 도면 파일로 바꿔 구리판, 철판, 알루미늄판에 잠자리 무늬를 새길 수 있도록 레이저 커팅 회사에 맡겼다. 

판을 1~2cm 정도 간격을 띄워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생긴다.
판을 1~2cm 정도 간격을 띄워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생긴다.
적동판을 활용한 작품.
적동판을 활용한 작품.

레이저 커팅 작업이 끝난 판을 받으면 표면 처리를 했다. 그라인더로 갈거나 손으로 사포질을 했다. 여기에 끝나는 작품도 있지만, 접착제를 바른 뒤 페인트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색이 변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자외선을 차단하는 약품 처리까지 해야 완성된다. 사람 키만한 높이의 입체 구조물과 피그먼트(pigment) 프린트, 시아노 타입(cyano type) 프린트를 활용해 잠자리 날개를 표현한 작품도 볼 수 있다.

■ 청산중 교사로 2년 재직, 남달랐던 청산

문 작가는 수학교사 재직 시절 청산중학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청주에서의 교직생활이 만기가 되면서 도교육청 발령으로 청산면에 왔다. 청산으로 삶터를 옮겨 2년 동안 살았던 그때를 잠시 회상했다.

“청산중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바로 청주로 나와서 1년 반 있다가 퇴직했어요.

그때 당시 청산이 깨어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학생을 만났지만 청산중학교 학생들이 발랄하고, 자기 미래에 관한 의식이 확고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역에서 받은 영향이라고 봐요. 그때 황민호 기자님도 청산면에 사셨던 거로 알아요. 면 단위에 인문계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있는 지역이 드물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그 예가 많진 않을 거예요. 칠보단장이라 하면 청산 사람들은 다 아실 거예요. 지금도 청산장이 열리잖아요. 상당히 오래된 성당이 있고, 향교도 있고, 풍류가 있는 동네죠.”

그는 학창시절 때 화가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문 작가가 그린 그림에 소질을 보고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그가 도맡아서 그림을 그려 걸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청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교사가 되길 원했다. 당시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혼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문 작가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화가가 되는 꿈이 멀어졌지만 한약방에 쓰이는 재료들에 한자가 많아 일상에서 서예를 배웠고, 음악이나 예술에 늘 관심을 가졌다.

문 작가는 수학교사가 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으며 취미로 분재를 했다. 자연에 있는 나무를 연구하면서 기록 차원으로 사진 찍는 일이 생겼다. 카메라 기술을 배우려 모임에 들어갔다가 사진의 재미에 빠졌다. 분재는 특성상 재정적인 여유가 있을수록 좋은 나무를 기르는 데 유리했다. 사진은 비교적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쏟은 노력만큼 결과물의 평가가 정직했다.

문상욱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12월31일까지 진행됐다.
문상욱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12월31일까지 진행됐다.
교동갤러리카페 1층 중앙에 있는 입체 작품. 울퉁불퉁한 질감이 나게 표면처리를 했다.
교동갤러리카페 1층 중앙에 있는 입체 작품. 울퉁불퉁한 질감이 나게 표면처리를 했다.

■ 물질적인 풍요도 좋지만···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이에요. 논리가 있지 않으면 감동이 올 수 없거든요. 허무맹랑한데 감동이 오겠어요? 작품을 보고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작가와 소통하면서 작가 논리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거든요. 내 논리가 보편적으로 맞아떨어지면 그건 좋은 작품이에요. 저는 우리 일상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찍을 때 꼭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려 하지 말고,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일상에서 내 삶을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고 봐요.”

예술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날 때 그 평가는 관람자 몫으로 남겨진다. 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자기 식대로 봐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문 작가에게 예술 작품을 본다는 의미를 물었다.

“물질만 갖고 살 수 없듯 우리가 조금 더 풍요롭게 살려면 정신세계에 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이런 고민이 있어요. 내 작품을 관객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게 있거든요. 한편으로는 한눈에 딱 보이는 걸 보여주지 않으려 해요. 감상하는 사람에게 의문을 던지게 만들어요. 그러면 내 작품에 관심을 두게 되죠. 작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건 나중의 문제예요. 앞서가서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우리 삶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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