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숭암갤러리 권숙정 대표, 24회 개인전 열어
10월1일~10월29일까지 갤러리카페 교동에서 전시
해바라기를 보며 희망, 행복, 웃음을 전하고 싶어

권숙정(가운데) 작가와 그가 가르치는 제자인 송채영(왼쪽), 안성분(오른쪽)씨
권숙정(가운데) 작가와 그가 가르치는 제자인 송채영(왼쪽), 안성분(오른쪽)씨

그림이나 음악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은 특유의 아우라(Aura)가 있다. 세계관이 확고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실현한 ‘단독성’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한다. 예술적 창조는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바쁘더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 공연이나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이유다. ‘맞아, 현실은 어렵더라도 꿈마저 내려놓으면 안 돼’ 또는 ‘나도 이 예술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져가도 창작 활동이 가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 베끼고 흉내도 내보면서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작을 만들며 명성을 알린 예술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습작 과정을 거쳤다. 관심 있는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고전소설을 책이 뚫어져라 읽거나, 유명 화가들이 그렸던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거나… 이 과정에서 스승의 가르침이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깨우치는 경우들도 있다.

■ 교과서적인 도식을 빗겨간 어린시절

지난 10월1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카페 교동에서 스물네번째 개인전을 여는 권숙정 작가는 어렸을 때 전문적으로 미술학원에 다니며 배운 경험이 없다. 그저 그리는 게 재밌어서 땅바닥에도 그려보고, 석고상을 사서 책을 참조하며 그려보는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 배재대 미술교육과, 충남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해 서양화를 접한 지 3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어린 시절 호기심 많던 동심을 간직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대 시험을 보러 갈 때 준비된 상식 같은 게 없었어요. 실기장에 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히게(수염남자)’라는 석고상이 나온 거예요. 못 그리겠는 거야. 두 번째 시간에는 안개꽃, 그러니까 수채화를 그렸는데 눈앞이 캄캄했죠. 옆에 같이 시험 보러 온 학생 몇 명을 봤는데 잘 그리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살짝 모방했죠. 감독관이 ‘선생님은 왜 안 그리고 있어요?’ 묻길래 ‘떨려서요’라고 말하고 참조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까지 24회 개인전, 단체전 800여회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권 작가. 그는 금산 추부면 숭암1길에 지명을 딴 ‘숭암갤러리’를 20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개인 레슨도 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제천 덕산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제2의 고향인 금산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전의 한 중학교 앞 판자촌을 표현한 작품. 제목은 '추억'
대전의 한 중학교 앞 판자촌을 표현한 작품. 제목은 '추억'

■ ‘해바라기를 보며 저도 위로를 받았어요’

권 작가는 지난 1월 대전 대흥동 관포갤러리에서 열린 23회 개인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 또한 ‘해바라기’를 주제로 그림 22점을 새로 그렸다. 해바라기의 꽃말인 희망, 행복, 웃음을 전하고자 유화 기법과 나이프(칼)를 이용해 스케치했다. 그가 운영하는 숭암갤러리 주변에 해바라기 군락지를 조성하며 작품 활동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예요. 해바라기가 익으면 숙여지잖아요. 그런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게 해바라기는 남성에 가까웠어요. 막 이글거리고, 줄기에서 꽃이 딱 피잖아요. 또 노란색이니까 여자의 질투 또는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볼 수 있겠고요. 지난 개인전에는 해바라기가 다 펴서 숙이고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요. 이번에는 활짝 펴서 앞으로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표현했어요. 제가 사실 2017년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 전에 그렸던 작품들이 LA에 팔린 적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돈이 하나도 안 들어온 거예요.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거죠. 지금도 해결이 안 된 상황인데, 한동안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해바라기를 보고 그리며 위로를 받았던 거 같아요.”

이번 전시를 통해 공기 좋고 물 맑은 옥천을 알게 되어 기뻤다는 권 작가. 옥천에서 활동하는 정천영 작가와도 친분이 있어 옥천에 몇 번 들른 적이 있다고. 그는 옥천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보며 희망과 행복을 얻어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 전시에는 해바라기 그림뿐만 아니라 권 작가가 대전중학교 앞에 펼쳐진 판자촌을 보며 그린 그림도 볼 수 있다. 

나체로 있는 여성과 해바라기를 권 작가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나체로 있는 여성과 해바라기를 권 작가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 꼿꼿하고 의연하게 버티는 여인상

권숙정 작가와 인터뷰하던 날, 그의 수제자인 안성분 씨와 송채영 씨도 자리에 함께 했다. 이들은 영동 ‘미사랑’ 동아리에서 서양화 활동을 하고 있다. 안성분 씨는 해바라기와 나체 여성을 그린 권 작가의 작품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저기 있는 여성의 몸이 가녀리지 않잖아요. 튼실하잖아, 허벅지도 튼튼하고. 색채도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쓰지 않고, 몸 색깔을 보면 동색이잖아요. 색채가 상당히 자유로운 거죠.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해바라기 밑에 나무줄기가 있는데 그게 남자예요. 이 그림 속에 느껴지는 건 여자의 자긍심이라고 할까. 꼭 남자라서 힘세고, (여성은) 복종적인 게 아니라 여성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 이 남자는 이 여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게 느껴졌어요. 아마 권 선생님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꼿꼿하게 의연하게 딱 버티는 느낌? 무의식의 세계에서 표현이 된 게 아닐까 싶었어요. 해바라기도 노란색이 아닌 푸른색인 것도 희망 내지는 내가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 같은 게 보였어요. 선생님, 맞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봤어요.”

권 작가는 작품 활동에 매진할 때 휴대폰도 꺼놓고 하루 6시간 이상 몰두한다고 한다. 이번 작품들도 고도의 집중을 거쳐 그렸다. 크기가 큰 그림을 그릴 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혼을 실었다. 붓이 아닌 나이프로 날카로운 스케칭과 함께 오돌토돌한 질감을 살려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는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그림 안에 ‘기연’이라는 싸인을 넣었다. 호가 아닌 평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내년 말 ‘내 생각과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해바라기를 소재로 하는데 접근 방식이 다를 거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림에 희망을 담아 보여주려는 생각이었다면, 다음 전시는 권 작가 속의 어두움을 내보이려고 한다고. 그는 ‘어두움 속 나의 댄스’라고 은유적으로 말했다.

권숙정 작가가 자신이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숙정 작가가 자신이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하던대로 하면 인위적으로 바뀌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매너리즘은 찾아오기 마련. 권 작가는 머릿 속 관념이나 감정이 꼬여있을 때 매듭을 풀어보는 습관이 있다고 전했다. 그중 하나로 글씨를 거꾸로 쓰는 습관을 오래전부터 들였다. 

“펜 하나 주시겠어요? 옥천신문을 예로 들어볼게요. 그럼 획수를 거꾸로 하는 거야. 옥을 쓸 때 ‘ㅇ’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ㄱ’ 받침부터 써보는 거예요. 모든 메모를 거꾸로 써보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냥 평소처럼 글을 쓰면 인위적이 되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쓰면 꼬마 글씨처럼 쓰는 거지. 시작이 ‘빨주노초파남보’나 ‘보남파초노주빨’이나 사실 같은 거잖아요. 고정관념인데 그 고정관념을 없애는 거지. 인물 그림도 평소처럼 그리라 하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거꾸로 해서 그리면 쉽거든요.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워서 그릴 때가 많아요. 그리고 싶은 데로 그리거든요. 그래서 못 그리는 거야. 제자들이 ‘선생님 못 그리겠어요’ 그러면 ‘뒤집어’ 이래요. 그러면 다 그려져요. 스케치를 뉘어서 보면 ‘각’이 나오거든요.”

학교 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권 작가만의 그림 접근 방식이다. 그는 이웃 동네인 금산과 대전 보문산 인근에서 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옥천뿐만 아니라 충북 도내에서도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코로나 시대에 해바라기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환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림을 보다 보면 ‘행복하다’ 그런 느낌이 나게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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