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체득한 것은 이론보다 강하다. 그리고 오래 간다. 머릿속으로만 관념처럼 뱅뱅 도는 생각도 닥쳐보면 퍼뜩 다가온다. 그것은 삶을 바꾼다.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뤄지지 않고 온 삶에서 발현된다. 그것을 느끼는 사람만이 얻어가는 것이다. 
 

친환경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재식(64, 옥천읍 장야리)씨가 그랬다. 한살림 충북남부권역협의회 대표의 직함이 그리 가볍지 않은 것처럼 그는 삶에서 친환경을 실천해왔다. 당도가 높은 과일일수록 무농약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치와 이론이 번듯하고 당위로 이야기하긴 쉬워도 농사짓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해가 갈수록 진화하고 강해지는 병해충, 쉽사리 잡히지 않는 외래종 해충, 종잡을 수 없는 기후 변화가 농민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 무농약을 시도해봤다가 망했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1년에 4번 정도만 농약을 어쩔 수 없이 친다. 사람이 먹을 만한 복숭아를 만들기 위한 타협점인 셈이다.

 

때깔 좋은 복숭아 만든다고 농약을 무작정 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결과로 승부한다지만, 김재식씨에겐 과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빛깔이 좋지 않아도 어떤 흙에서 어떤 마음으로 컸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벌써 30년 전 체득한 그만의 비법이다. 한 때는 고독성 농약을 아무렇지 않게 썼다.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그게 문화였던 셈이고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그가 한동안 밭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후에 깨어난 적이 있었다. 벌써 27년 전이다. 고독성 농약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아! 농약을 쓰면 농사짓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다. 그 때부터 끊었다. 괴산의 자연농업학교를 찾아다니면서 농약을 안 쓰는 농업을 손수 배웠다.

■ 고독성 농약에 쓰러져 자연농업 배우러 다니다

안내면이 고향으로 3살 때 구읍으로 나와 죽향초(61회)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지만, 그는 현장에서 값진 공부를 배웠다. 비싼 수업료 내고 찾아다니면서 삶의 문제,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부했다. 자연농업에 열중하다가 12년 전 한살림을 만났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같이 공부했던 도반 이채준씨한테 한살림 이야기를 건네들었다. 친환경농산물을 제값으로 사서 유통하고, 농촌 생산자에 대해 고민하는 한살림에 대해 선뜻 마음이 갔다. 가치에 동의했고 현장 농민을 존중하는 태도가 좋아서 그 울타리안으로 성큼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는 한살림 충북남부권역협의회 대표를 맡을 만큼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 농사를 짓는 것은 해마다 어렵다. 친환경의 가치를 알아주는 한살림이 있기 때문에 이제껏 버틸 수 있었지만, 매해가 다르다. 외국에서 유입된 병해충은 자연 약재로는 어림없다. 내성이 생겨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래도 되도록 농약 덜 치면서 농민도 건강하게 농사짓고 도시 소비자도 건강한 먹을거리 먹을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지어왔다. 건강하게 농사짓는다는 것은 사실 농약을 안 쓰는 만큼 품은 배가 드는 법이다. 일은 많아지고 몸은 힘들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몸을 관통한 경험들은 그를 그리로 이끌었다. 힘든 일이라 마지막까지 반대했지만, 큰 딸 부부도 결국 귀농해 아버지의 친환경복숭아를 그대로 전수받았다. 도시에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지만, 김재식씨는 좀처럼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힘든 길이라는 걸 알기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지금은 같이 또 따로 농사짓는다.  

■ 큰딸 부부도 친환경복숭아농사 지으러 귀농

“친환경 농사 힘들어요. 그 고생을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자식들한테까지 권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욕심없이 조금만 하면 가능한데 돈 많이 벌려고 하면 힘든 농사거든요. 그래도 도시에서도 먹고 살려니 사람 잡겠더라구요. 내려오겠다는 거 말릴 수가 없어서 지금은 이렇게 같이 농사 짓고 있답니다.”

“1년에 지금 딱 4번 잠깐 농약치는 것 같아요. 병해충이 생기는 시기 이거 안 칠 수가 없더라구요. 선녀벌레나 외래종 진드기는 왜 이렇게 안 죽는 건지, 이것들이 축산 사료나 풀에 붙어서 창궐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죠.”

그래도 외롭지 않다. 장성한 큰 딸이 내려와서 같이 친환경 복숭아 농사를 짓고 이원면에 이을숙씨와 김용범씨도 같은 농사를 지으면서 교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이렇게 어렵게 농사짓는 노고를 알아주는 도시 소비자가 있으니 힘이 난다. 

“다른 사람 보고 같이 하자고 하면 농약 안 하고는 못한다고 다 포기해요. 젊은 사람들이랑 같이 대를 이어서 해보려고 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어렵지요.”

“내가 농약에 당해보니까 그리고 한살림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친환경을 믿고 농산물을 사 가거든요. 나도 우리 손자들 먹을거리라 생각하니까 더 조심스러워 지는 거예요. 그래서 더 힘들더라도 아이들 먹는 거라 생각하면서 참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4천600평의 복숭아 농사 중 안내면 인포리에 3천500평이 있고 장야리에 1천100평 정도가 있다. 이 정도가 둘이 농사짓기에 딱 알맞다고. 친환경농업은 규모를 키우면 더 힘들어 딱 요정도만 하고 있단다. “지난해 같은 경우는 8월15일 이후로 수확량이 40%밖에 안 됐어요. 벌레가 잔뜩 먹어서. 조금이라도 수확하니까 그냥 버티면서 먹고 사는 거에요. 크게 욕심 안 내고 먹고 살 정도는 되니까. 뭐 8월 중순 이전 것이 그래도 8~90%정도 수확을 했으니까 거기서 보충을 하고 그래요.”

그는 15가지 품종을 키운다. 하옥, 천중도, 조생황도 등 수확은 6월25일부터 9월말까지 한다. 지금도 많이 바쁜 시기다. “가지치기하고, 꽃 솎아내고 유황압제도 뿌려야 하고, 꽃이 피기 전에 석회보르도액도 뿌려야 하니 4월5일까지 굉장히 바쁜 시기에요. 흙사랑 농원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데(https://blog.naver.com/gmfrtkfkd01) 여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올려놓기도 해요.”

2013년 7월19일 글을 보자. ‘무농약 복숭아 오늘 첫 출하. 진딧물 나방류에 고전을 하다 드디어 출하를 하기 위해 선별을 하여 한살림으로 보내기 전의 모습’이라고 이쁜 복숭아 사진을 찍어놓았다. ‘2013년 7월16일 출하를 앞두고 있는 과일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무농약으로 재배를 하다보니 병과가 많이 눈에 뜨인다.’

생생한 친환경복숭아 영농일지인 셈이다. 그는 마음 따스한 농민이기도 하다. 대전 동구 한살림매장에서 지역 아이들을 돌보는데 감자 간식을 주기 위해 한쪽 밭에 감자를 심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감자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이주 노동자 아이들이나 조금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한살림에서 돌봄을 하는데 저도 도울 일이 없을까 해서 감자농사를 지었지요. 10상자씩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어요.”

이미 복숭아농사로는 저명인사인 그는 2012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정하는 스타팜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명품복숭아연구회 회장을 맡아 옥천 복숭아를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 그가 말한다. 

“누구든 대를 이어 친환경복숭아 농사를 짓겠다는 젊은이 있으면 제가 공짜로라도 가르쳐 주고 싶어요. 3천평 정도만 잘 일구면 연 매출이 4-5천만원은 나와서 그냥 저냥 먹고 살 정도는 되거든요. 진짜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싶으면 오고 호기심에 해보려는 거면 별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복숭아는 3년을 키워야 4년차부터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 인내심이 필요해요. 덜컥 모든 것을 쏟아붓지는 말고 주말에 와서 해도 되니까 올 수 있는 사람 와서 농사지었으면 해요. 젊은 사람들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농장에는 안 오더라고요. 5년 안에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에게 농장 절반을 넘겨줄 생각이에요. 오고 싶은 사람 있으면 오세요”

어찌보면 간절함과 절실함이 낳은 친환경 복숭아 농사, 대가 끊기지 않도록 많은 젊은 귀농귀촌인이 그의 바람대로 왔으면 좋겠다. 

그가 있어 옥천 복숭아가 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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