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골에 저런 양반 참 드물어요”
“요즘 시골에 저런 양반 참 드물어요”
  • 홍석희 인턴기자
  • 승인 2021.01.27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남면 종미리 미산마을에 6년째 홀로 거주하는 윤정옥씨 주민들 위해 선행 베푸는 이웃 전병례씨에게 고마움 느껴

코로나19로 우울증도 인다는 코로나블루의 시대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삶도 팍팍해지고 오락가락하는 한파 때문에 한층 움추려드는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바닥에서 변방에서 온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 고마움은 느끼는 사람 모두가 소중합니다. 이번 주에는 새벽 일찍 마을 눈을 싸그리 치운 옥천읍 대천리 최갑석 이장의 선한 미담 소식을 전합니다.  아울러 안남면 종미리 전병례씨 역시 마을에 쌓인 눈을 깨끗이 치웠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아름답게 전한 윤정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입춘을 앞두고 마음에 봄을 들이게 합니다.

윤정옥 어르신 / 사진 윤지영 인턴기자

‘백만매택(百萬買宅)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좋은 집을 구하는데 백만금을 지불하고 좋은 이웃을 구하는 데는 천만금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나 하나 건사할 집 한 채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 좋은 이웃을 고를 여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온기를 전해주는 이웃 한 명이 절실하다.

2016년 127만 명이던 홀몸노인 수가 2020년 158만 명까지 늘어났다. 노인 고독사도 급증하고 있다. 국가가 노인 돌봄이나 방문 요양 서비스 같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급속한 노령화 속도에 비해 제도의 완성도는 턱없이 떨어진다. 게다가 고독은 타인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다. 제도만으로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완전히 보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내 옆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부터 일상 속에서 위로받고 연대할 때, 비로소 고독을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이웃과의 소통 증대를 통한 마을 공동체 복원은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안남면 종미리 미산마을에 홀로 사는 윤정옥(89)씨는 요새 좋은 이웃을 만난 행복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윤씨는 “요즘 시골에는 저렇게 좋은 양반이 참 드문데, 내가 신문에 꼭 한 번 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며 신문사에 제보를 해왔다. 어떤 이웃을 만났기에 용기를 내 제보 전화까지 했던 것일까. 지난 20일 안남면 종미리 윤정옥씨의 집에서 윤씨를 직접 만나 자세한 사연을 들어봤다.

옥천 토박이인 윤정옥씨는 안남면 독락정 부근에서 태어나 안남초등학교(11회)를 졸업했다. 결혼 후 종미리 미산마을로 온 뒤 10년을 살다가 5남매 교육을 위해 상경했다. 사글셋방까지 얻어 악착같이 5남매를 키워냈지만, 서른 살짜리 큰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산마을로 되돌아온 것이 지난 1986년, 올해로 35년째다. 평생 함께해오던 남편과는 6년 전 영원히 이별했다. 자식들은 모두 서울 부근에 살고 있어서 1년에 두 번도 보기 힘들다. 양 무릎과 척추 수술을 했던 탓에 혼자서는 화장실조차 다니기 어려운 윤씨다. 그나마 반려견 초코가 적적함을 달래주고 있었고, 매일 오전에 다녀가는 요양보호사도 거동이 불편한 윤씨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봄, 이웃 주민 전병례씨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전씨의 고향도 종미리다. 전씨의 부모님이 이곳에서 한약국을 운영했었는데, 전씨가 정년퇴직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부모님이 살던 곳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는 첫인상부터 달랐다. 요즘 사람답지 않게 동네 어르신마다 살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병원에 가야 하는 어르신이 있으면 전부 차로 데려다주고, 가는 길에 홀로 걷는 노인이 보이면 태워 갈 정도로 이웃 주민을 지극히 살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산타 분장까지 하고 동네 전체에 과일, 과자 음료수 등을 돌렸다. 덕분에 미산마을 사람들은 예년보다 훈훈한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주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저기 들어오는 경율당에서부터 동네 구석구석 땀을 철철 흘리면서 2시간 넘도록 눈을 쓸더라고요. 노인네 미끄러진다고 우리 집 앞마당까지 와서 다 쓸고 갔어요. 나는 저런 사람 처음 봤어요. 요즘 시골에 저런 양반이 참 드문데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한 번 신문에 내고 싶었어요.”

고마운 이웃을 꼭 신문에 내고 싶다는 할머니의 바람을 전하기 위해 전병례씨 배우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전씨는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일이 아니라며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했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이웃을 정성스럽게 대하는지 자세한 이유를 들어볼 순 없었지만, 그의 선행이 주민들의 찬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윤정옥씨에게 사연을 전해 듣는 동안, 하늘로 떠나보냈다는 큰아들이 스쳐 지나갔다. 큰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전씨와 비슷한 연배였을 터. 윤씨가 전씨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지 이웃에게 느끼는 그것을 넘어선 듯 보였다. 그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고, 미산마을에는 공동체적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렇게 미산마을 사람들의 고독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