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최대의 가구 도소매점 ‘향수가구마을’
김두열 대표 “없는 것 빼고 다 있어”
몇 년 사이 거래처 400여 개 이상 줄어
재난지원금이 나올 때는 소비가 늘어 매출 반등

침대, 싱크대, 붙박이장, 의자, 서랍…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옥천 최대의 가구 도소매장, ‘향수가구마을’ 김두열(39) 대표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구 산다고 대전까지 안 가도 돼유. 기존에 있던 가구 철거부터 새 가구 시공까지 다 해줘유. 저희는 배달도 서비스라유.”
집이 숲이라면, 가구는 나무다. 나무 없는 숲이 없듯 38년째 가구 도소매점을 운영 중인 김두열 대표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가구를 생산 공장에서 받아 전국 곳곳에 있는 소매점부터 가정, 시설 등에 납품하는 일을 한다. 아버지가 대전에서 운영하던 가구점을 군 전역한 뒤부터 도우며 일을 배우다가 2003년 옥천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끼리 함께 운영 중이다.

■ 옥천읍 끝에서 전국으로

‘향수가구마을’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옥천읍 가장 끝 향수길 145-8, 육영수 생가 옆에 있다. 김두열 대표는 왜 옥천을, 그것도 읍내가 아닌 이곳을 선택했을까?

“정식으로 도매하는 곳은 제가 알기로 여기 하나죠. 옥천에는 우리처럼 실질적으로 가구점에 남품을 넣는 곳이 잘 없어요. 옥천은 제 고향과 다름없죠. 대도시권과도 가깝고 공기 좋고 물 좋잖아유.”

옥천이 고향과 다름없다며 너털웃음 짓는 김 대표는 18년 전 당시 이장 소개로 500평쯤 되는 폭이 좁고 긴 땅을 샀다고 한다. 소매보다는 도매 목적이기 때문에 읍내를 벗어나 외곽지역을 택했다. 인근에 천 평 정도 되는 더 넓은 땅을 살 수도 있었지만, 길이 나지 않은 상태라 그러지 못했다. 아쉬움은 크지 않다. 장인은 도구만 탓하지 않는 게 아니라 위치도 탓하지 않는다. 주변은 휑하지만, 그를 찾아오는 고객은 충북 전 지역을 아우른다. 거래처는 전국 곳곳이다.

“처음에 우리 가게 오신 분들도 대전이나 충북 청주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옥천에 들려서 가구점을 둘러보시다가 마지막으로 여기를 찾는 거죠. 부산이나 경기도 일산 등에 있는 가구 공장에서 가구를 들여와 당진이나 서산 해미 등 충남 곳곳의 소매업자에게까지 배달 가요. 배달은 무료 서비스죠.”

‘향수가구마을’은 가구를 직접 제작하거나 업체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지는 않는다. 가구 생산공장에서 제작한 가구를 5톤 트럭에 화물로 한꺼번에 받은 뒤 소매점에 납품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방식이다. 그는 “누가 옥천군 청산면에서 트럭을 끌고 방문한 적 있는데, 그 이유가 옥천읍 내에 있는 다른 가구점은 배달비를 2만 원 따로 받는다고 해서 그랬다”며 “우리 가구점은 장거리 도매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청산면은 먼 곳도 아니다”고 말했다.

■ ‘질 좋은 원목’ 싼값에 제공하려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김 대표

김 대표는 ‘가구 저널’ 등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며 유행을 공부한다. 그래야만 소매점에서 찾는 가구를 납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만큼 가구 유행이 빠를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에는 1인 가구 증가, 비대면 문화 확산, 친환경 가구에 관한 구매 욕구 증가 등으로 소비자의 안목이 더 까다로워졌다. 조립은 제품이나 회사에 따라 다르니까 매번 익혀야 하지만, 오랫동안 가구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설명서만 펼쳐도 바로 조립법을 안다. 하지만 재고는 늘 고민거리다.

그는 “도시에 납품하려면 유행을 따라가는 속도가 빨라야 하는데, 옥천 같은 경우는 타지역보다 조금 늦을 수밖에 없다”며 “유행 지난 재고는 결국 유통을 위해 원가보다 낮게 팔거나 배달 비용만 받는 등 빨리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좋은 가구를 어떻게 판별하냐고 묻자 그는 ‘싸고 재료가 좋은 가구’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가구업체 형태가 과거와 비교하면 가격 상승 폭이 작다”며 “과거에 10만 원 하던 가구가 지금은 15만 원 안팎으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10만 원 하는 가구는 있다”고 말했다. 자잿값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원목과 같은 질 좋은 가구를 최대한 뽑아와서 이익을 적게 남기며 싸게 파는 것이 고객과 신뢰를 쌓는 것”이라며 만 원짜리 상품을 9천 원에 사는 것보다 8천 원에 사는 게 당연히 좋지 않냐고 반문했다.

■ “작은 도매업체는 갈수록 힘들어져”

김 대표는 아버지와 30년 가까이 사업을 함께 하다 보니 손발이 잘 맞지만 몸은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나 빌라의 경우 침대 하나만 옮기는 데도 몇 번의 계단 오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침대 한 번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침대 가면 매트릭스 가야죠. 헤드 가야죠. 토퍼 가야죠. 판이나 기타 공구도 가야죠. 어떤 때는 사다리가 안 되는 곳도 있어요. 그런 곳을 다녀오면 몸이 녹초가 되죠.”

일이 힘들다고 직원을 늘리긴 어렵다. 가구 업계는 몸이 힘들기 때문에 최소 월급을 300만 원 이상 줘야 한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하는 대신 가족끼리 쉬는 날 없이 일하지만, 나이 드는 것과 반대로 거래처는 줄고 있어 걱정이 많다. 그는 “옛날에는 장롱 등 큰 가구 위주로만 도매를 하다가 아버지가 연세 드시면서 힘드시니까 작은 가구 위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규모가 큰 도매업자들이 큰 가구만 취급하다가 규모를 키워 작은 가구까지 취급하니 경제적 어려움이 배가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개 이상의 거래처가 전국 각지에 있었지만, 지금은 70여 개로 줄었다. 붙박이장이나 화장대 등 가구가 설치된 상태로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역시 고민이다. 원래는 하지 않던 싱크대 시공도 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시장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무리다.

“지금 대학가 원룸은 다 풀 옵션(침대, 장롱 등 기본적인 가구가 설치된 주거 형태)인데,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그때는 대학 입학 철이면 책장, 서랍장 등 소비가 많아서 하루에 2~3번씩 1톤 트럭 두 대로 아버지는 보령, 저는 대전이나 청주 쪽에 출장 나가곤 했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죠.”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나올 때는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 그는 “옥천에 계신 분들 대부분 그랬겠지만, 재난지원금이 나왔을 때는 소비가 확실히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며 “그 기간이 끝나자 지금은 다시 단골손님이나 확정적으로 구매하려는 분들 위주로 가구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집이 옥천읍 가장 안쪽에 있다 보니까 앞서 매장을 여러 군데 둘러보시다가 마지막으로 오신 손님들이 ‘그쪽에서는 얼마에 해준다는데, 맞춰줄 수 있겠냐’는 요구가 많다”며 “최대한 다 맞춰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 손님이 왔다. <옥천신문>과 한차례 인터뷰를 나눈 적 있다는 손님은 옥천읍에 있는 ‘시골 막국수’ 박조영 대표 부부였다. 얼마 전 가구를 이곳에서 샀는데 약간 문제가 있어서 원인을 알아보러 왔다는 그는 ‘향수가구마을’ 단골이다. 자주 찾는 이유를 묻자 비결은 ‘인정’과 ‘훌륭한 서비스’. 그는 “젊은 사장님이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그래서 좋다”며 넓은 가구점을 둘러봤다. 쉬는 날이 거의 없어서 가게 인근에서 잠깐 낚시하는 게 취미라며 자신이 잡은 외래종 베스를 들고 찍은 사진 앞에서 웃는 그가 단골에게 말한다.
“아 문제가 있어유? 제가 봐 드릴게유. 그건 금방 가서 해드리쥬.”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45-8(무궁화어린이집 윗집)

오전 8시 - 오후 8시 / 연중무휴

043-732-4337 / 043-733-4337 / (F) 043-731-4837 / 010-5431-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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