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으로 시집와 뿌리내린 지 31년, 전영주 부녀적십자사봉사회장
시할머님의 ‘네 일을 해라’라는 응원 속 봉사가 22년째
밑반찬배달·헌혈·김장·집수리 봉사 등 궂은일에도 열혈봉사

부녀적십자회에 몸을 담은 지, 벌써 22년차다. 단 한 번도 봉사를 쉬어본 적이 없었다. 일반 회원일 때도, 회장직을 맡았을 때도 변함없는 봉사정신으로 무장했다. 본업이 봉사라고 할 만큼 봉사 하나 만큼은 늘 진심이었다. 늘 앞장서서 일도 척척하고, 물불 안 가린 채 봉사에 임하는 그 모습은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 사이에서 귀감이 됐고, 감사한 사람 중 하나로 꼽혔다. 김금자(66, 군북 적십자봉사회 회장)씨가 봉사정신을 오롯이 배우도록 해 고마웠다던 사람, 전영주(58) 부녀적십자봉사회 회장을 지난 11일 만났다.

‘늘 앞장서서 한다’는 김금자 회장의 칭찬 주인공인 전영주 회장은 해당 발언에 부끄럽다는 듯이 손사래부터 쳤다. 전영주 회장이 옥천에서 산 지 햇수로 31년째다. 옥천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옥천에 발붙이고 살게 된 것. 원래 전 회장은 충청남도 서산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이후 늦깎이 대학생으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사 자격증을 땄다. 출산휴가라던 옥천복지관 영양사를 대신해 3개월 정도 영양사로 일하기도 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는 아이들을 잘 돌봐주신다는 시할머님의 말씀에, 본격적으로 봉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밑반찬배달봉사부터 발 관리 및 목욕봉사, 집수리봉사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현재는 금구리에 거주하면서 남편이 운영 중인 성주종합철강에서 보조 업무를 하고 있지만, ‘봉사가 주업’이라고 할 만큼  여전히 전 회장 머릿속에선 봉사가 1순위다.

■ 부녀적십자봉사회에서 꾸준히 이어간 22년차 ‘프로봉사러’

정 회장은 부녀적십자봉사회에 2000년 5월7일에 가입했다. 옥천에 사는 친구 하나가 적십자사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며 해준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정 회장은 “그때 친구한테 대학시절 RCY(청소년적십자사봉사단)한 경험까지 다 말하면서 같이 하고 싶다고 자청했다”며 그 시절을 회상한 듯 웃음을 보였다. 다만 두 아들이 아직 열 살도 안 됐던 터라, 엄마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했던 때였다. 정 회장은 걱정이 앞섰다. 그때 집에서 모시고 함께 살았던 시할머님이 정 회장에게 해준 말씀 하나가 봉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정 회장은 “시할머님께서 애들을 참 잘 봐주셨는데, 늘 제게 ‘애들 놓고 나가서 너는 네 일 해라’라고 말씀해주셨다”며 “35살 때부터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봉사에만 집중하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할머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회장직 임기 2년을 딱 채운 정 회장은 2020년을 끝으로 회장직을 마무리했다. 정 회장은 부녀적십자사봉사회에 들어온 지 2년차 때부터 총무를 맡을 만큼, 봉사회에 애정을 쏟았다. 그 마음은 함께 봉사를 하는 회원들도 익히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정 회장은 “보통 회장직은 2년하고 4년을 연임해 도합 6년이 가능하지만, 깔끔하게 2년만 하기로 결정했다”며 “2년 내내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밥 한 끼 사주는 회원도 있었고, 작은 선물 하나 주면서 봉사에 힘써줘서 고맙고 한 회원도 있었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부녀적십자 봉사회 봉사자들이 다문화 가족 자녀들과 학부모들과 함께 문화탐방을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녀적십자 봉사회 봉사자들이 김장봉사를 끝내고 쌓아둔 김장박스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있다.(오른쪽 두번째 전영주 회장)

■ 봉사하는 매순간이 배우고 깨쳐왔던 ‘인생수업’

정 회장이 22년째 함께 하고 있는 부녀적십자봉사회는 1974년도에 만들어졌다. 부녀적십자봉사회는 홀몸노인들이나 결손가정들을 위한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봉사를 비롯해, 헌혈이나 김장봉사, 수해 복구봉사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떤 봉사든 개의치 않고 전부 해왔다. 이 중 정 회장의 기억 속에 가장 남는 봉사경험은 ‘가장 잘 못했던 봉사’였다. 정 회장은 “봉사회에 들어간 지 1년도 안 됐을 때, 여성회관에서 발 관리하는 법을 배워서 영생원으로 어르신들 발 관리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며 “당시 어르신들을 잘 못 씻겼었는지 어르신들 다리 피부가 뱀껍질처럼 하얗게 일어나있었는데, 봉사가 끝나고도 그 모습이 계속 떠올라 음식에도 입을 못 댔다”며 부끄러워했다. 그때는 비위가 참 약했다던 정 회장은 “이후에 행복한 집에도 목욕봉사를 갔는데, 어르신들이 괄약근 힘 조절을 못해 실수를 하시곤 했다”며 “그때 본 배설물 기억에 또 밥은 못 먹고 애꿎은 풀만 뽑았었다”고 덧붙였다. 비위는 약했어도, 봉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던 정 회장이었다. 그는 “그 시절은 사회초년생일 때라 싫은 건 싫다고 피해 다녔던 것 같다”며 “22년째 꾸준히 봉사를 이곳저곳에서 해보니, 봉사하면서 겪을 수 있는 과정 정도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봉사는 정 회장의 한계를 다시 한 번 깨도록 했다. 부녀적십자봉사회는 여성들로 이뤄진 봉사단체인 만큼 ‘힘을 써야만 하는 봉사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했다. 하지만 밑반찬배달봉사를  여든 넘은 할아버지의 집 상태를 보면서 그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오히려 ‘해보자’는 정신으로 발현됐다. 정 회장은 “할아버지 집이 해도 잘 안 들고, 방도 참 컴컴했다. 전기도 끊겼고 가스도 없고, 벽지도 때가 묻어서 거뭇거뭇했다”며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도배장판을 해드리기로 마음먹고 회원들과 회의를 했다. 그때 도배장판부터 전기 수리까지 해본 적이 있었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집수리 봉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도배장판부터 시작해, 가스나 전기 연결까지 일일이 다 했다”며 “회원들이 사비로 그릇도 사다가 넣어두고, 미처 봉사에 못 왔던 회원들은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도록 지원도 했다. 지금도 그 집으로 매주 밑반찬봉사를 가는데,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문밖까지 배웅해주시면서 정말 고마워하고 좋아하셨다”고 뿌듯해했다. 특히 정 회장은 “여자들로만 이뤄진 봉사단체라 힘이 많이 들어가는 도배장판일을 하지 못할 거라고 지레 겁먹었는데, 막상 해보니 한계도 깼겠다, 정말 보람찼다”고 덧붙였다.

이후 부녀적십자봉사회는 수해복구 현장과 같이 일손도 많이 필요하고 힘도 제법 써야 하는 현장도 곧잘 찾아갔다.

더 이상 하지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깔린 봉사정신 덕분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수해복구 봉사를 갔던 때를 떠올리며 “집 전체를 다 뜯어 고쳐야 했던 집이 수없이 많았다”며 “진흙투성이인 바닥, 벽지부터 뻘로 뒤덮인 붙박이장까지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들어내고 뜯어냈다. 도배장판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해를 입은 공장에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진흙과 뻘이 가득했는데 다 같이 삽으로 퍼냈다”며 “혼자서는 죽어도 못할 일들을 여럿이 함께 하니까 수해복구도 금방 끝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회장은 “36명으로 구성된 부녀적십자봉사회의 단합력은 어느 봉사단체보다 최강”이라며 “서로에게 미루는 법 없이 서로가 솔선수범해서 노력하고, 직장을 다니느라 봉사할 여건이 어려운 회원들은 열심히 회비를 내는데 그것도 봉사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되고 힘든 봉사여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이뤄낸 작은 보람들이 부녀적십자사봉사회 사람들을 끈끈하게 한 매개체였다.

부녀적십자봉사회 봉사자들이 김장봉사를 위해 무를 손질하고 있다.

■ “귀감은 이국주 회장님이 더, 내 ‘봉사사랑’을 이해해준 가족들도 고마워”

회장에서 이제는 회원으로 더욱 봉사에 매진하겠다는 전영주 회장. 같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칭찬일색의 주인공에게도 ‘귀감’이 있었다. 그는 “이국주 옥향적십자사봉사회 회장님에게 참 많은 걸 배웠다”며 “알고 지낸 지는 이번에 회장직을 맡으면서 알게 돼 2년밖에 안 됐지만, 옆에서 보면 정말 열심히 봉사를 하신다”며 칭찬했다. 특히 정 회장은 “이 회장님이 내일 모레 여든이신 걸로 안다”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봉사하러 가는 현장에서 일을 참 잘하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에게 봉사는 ‘운명’이었고 ‘천직’이었다. 22년 동안 꾸준히 봉사에 임했던 전 회장은 “봉사하는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밖에서 일하게 되니, 돈 생각을 하면 당연히 못할 수밖에 없는 게 봉사인 것 같다”며 “봉사를 하고 오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다. 뿌듯한 마음도 들고 성취감도 느끼게 해서, 절대 끊지 못하게 된 듯하다”고 긴 시간 봉사를 이어간 비결도 언급했다. 특히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봉사를 할 만큼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집안일은 내일로 좀 미루더라도, 봉사를 최우선으로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늘 이해해주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