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군서면민, 만년 군서농악대장 하옥수씨
부여 출신, 현재 옥천읍에 살지만, 마음은 늘 군서에

 

하옥수 군서농악대장(사진 제공=하옥수)
하옥수 군서농악대장(사진 제공=하옥수)

[고사미] 양현자씨에 따르면 ‘군서면민이 고마워 해야 할 사람’이라는 하옥수씨는 본디 '군서 사람'이 아니었다.   

 충남 부여 출신으로 옥천으로 시집 온 지가 83년 즈음, 남편 고향은 보은으로 보은 산외에서 살다가 옥천으로 이사를 나왔고 줄곧 읍의 옛 문정아파트에서 살았다. 우연찮은 기회로 군서면 증산리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송어횟집’ 식당을 운영한 게 군서와의 첫 인연이었다. 워낙 활달하고 화끈한 성격이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가 분명했다. 내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 관계도 중요시 했고 그러면서 지역사회 활동도 자연스레 하게 됐다. 옥천읍에서 주부대학 2기생에다 부녀회장, 생활개선회 임원을 한 경력들은 군서면으로 이사오고 나서도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좀이 쑤셨고 바쁜 식당일에도 불구하고 군서면 일에 스멀스멀 참여하게 된 것. 농악대를 결성한 것이 중요한 기점이었다. 다른 읍면에는 농악대를 하면 300만원 가량 군 예산이 지원이 되는데 군서면에는 농악대가 없었다. 한번 해보고 싶었다. 면 공무원한테도 적극 제안을 하고 한번 해보자고 그랬다. 맨 처음 남자를 모집했더니 오지 않았다. 여성단원을 모집했다니 비로소 모이더라. 처음에는 후원자로 남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듯이 하던 실력, 했던 경험 유감없이 발휘하려면 결국 ‘앞잡이'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군서농악대를 결성하여 이끈지가 벌써 20년이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20년 붙박이 군서 농악대장을 맡았다. 회장을 맡은지는 6년 밖에 안 되지만, 실력이 출중했던 그가 농악대장을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로에 서 있었다. 너무나 힘든 식당일은 접었고 하늘빛 아파트 분양을 받아 옥천읍내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보통 이사를 오면 활동을 접거나 관계를 매듭짓는 것으로 정리하지만, 군서면민들은 그를 떠나게 가만두지 않았다. ‘군서 농악대 회장을 해라’고 강력히 요구를 했고, 그는 최후 통첩으로 ‘그럼 맡는 대신 잘 따라줄 생각 있으면 하겠으나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다면 미련없이 내려놓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그가 읍에 살지만, 여전히 군서면민인 이유이다. 회장을 수락하면서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티 하나 내지 않고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곽춘상(군서면 하동리)씨가 군서농악대 사무국장을 맡아 주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 농악대 회장 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잘 할까’ 걱정도 했었지만, 정말 잘 해주었다. 본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농악대 일이 항상 우선이었다. “정말 춘상 후배가 농악대 안살림과 궂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못했을 거에요. 정말 고맙지요. 제가 옥천읍내로 이사를 와서 자주 신경을 못 쓴 부분도 춘상 후배가 일일이 챙겨주면서 가교 역할을 했죠.”

 그는 진유환 옥천읍장 재직시절 진읍장이 하옥수씨에게 옥천읍 풍물단을 지도해달라는 청을 거절 못해 옥천읍 주민자치위원회 풍물단 지도 강사도 맡고 있다.

 “저는 욕심이 많아서요. 한번 하면 정말 제대로 하고 싶어요. 시늉만 내고 싶지 않거든요. 군서 농악대를 최고의 농악대로 키우고 싶었어요. '역시 군서는 잘해’ 이 소리가 나와줘야 직성이 풀렸어요. 양현자 언니가 저를 칭찬했는데 과찬이고요. 제가 군서면에 정 붙일 수 있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군서면민들이 많이 도와줬죠. 저는 읍에 살지만, 영원한 군서면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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