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공간, 좋은 음식이 있는 곳 ‘러스틱 참’

“이원에 가면 묘목 시장도 있고~”, “이원에 가면 러스틱 참도 있고~” ‘러스틱 참’ 옥천을 꽤 잘 알고 있다는 사람에게도 낯선 이름일 것이다. 러스틱 참은 이원면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의 쉐프는 배만석 대표(39,이원면 대흥리)로 호주 유학파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호주에서 요리학교를 다니고 호주 유명 레스토랑의 쉐프였던 그가 8년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 아내의 고향인 이원에 자리 잡았다. 식당 이름은 러스틱 참(rustic charm), 사전적 의미는 ‘소박한 삶’으로 해석된다. 호주에서 돌아와 한때는 복숭아 농사꾼으로 살던 배 대표. 이원 사람들, 옥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합리적인 음식을 제공하고 싶어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전통 요리 학교에서 배웠으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법도 한데, 러스틱 참의 메뉴는 현지화, ‘이원’화가 잘 되어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파스타, 스테이크, 수제버거, 샌드위치, 샐러드, 함박스테이크는 기본이다. 거기에 일반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찾기 힘든 ‘소주’, ‘맥주’, ‘덮밥’, ‘소주 안주’가 메뉴판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것 참 신기한, 러스틱 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만석 대표

■ 호주에서 주경야독으로 살아간 그

배만석 사장은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학창 시절 특별한 꿈은 없었기에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택했다. 품질관리를 전공하였는데 대학 수업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도망치듯 학교를 휴학 했고, 직업 군인을 택했다. 전역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간 학교는 역시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요리사라는 꿈이 생겼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나라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를 떠나 학비도 벌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죠” 그의 나이 29살 때다. 튼튼한 몸을 믿고 시드니로 향했다. 농장에서 과일을 따는 일을 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지만 배 대표에게는 요리사라는 확실한 꿈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었죠.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수소문해 보니 입학 조건에 일정 수준의 언어 능력이 필요하더라고요.”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밤에는 영어 공부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결국 배 대표는 호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께 학비, 생활비를 받을 순 없었죠. 학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파트 타임으로 식당 주방에서 일했죠. 시간을 쪼개 가며 일을 했어요” 학교에서 요리, 식당 경영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졸업 후 실력을 인정받아 배 씨는 식당의 헤드 쉐프까지 빠르게 올랐다. 바쁜 와중에 사랑도 싹텄다. 호주에서 유학 중인 옥천 출신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대학교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전공했다고. 그렇게 두 부부는 호주에서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다 옥천으로 왔다.

■ 복숭아 농사꾼, 옥천에서 식당을 차리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내의 고향인 옥천에 정착했다.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이원의 복숭아밭에서 일을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과수원으로 향했다. 호주 농장에서 일했던 그이기에 육체적 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부실한 식사가 문제였다. 요리를 전공한 배 대표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 싸기가 쉽지 않았다. 노동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맛있는 새참이 필요했다. 기껏해야 편의점 도시락, 샌드위치로 때웠다고. 짧은 시간 빠르게 섭취하고 기운을 내 일을 해야 하는데 편의점 음식은 성에 차지 못했다. 이원에 그럴듯한 새참 가게를 차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배 대표는 한국의 요식업 실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한국 레스토랑의 실정을 알아야 했기에 대청호 인근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쉐프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의 주방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방 분위기가 호주와 달랐다. 일반적으로 한국 레스토랑은 일정 기간 일하고 나서 차례차례 요리 기술을 알려주었지만, 호주 주방의 시스템은 그와 달랐다. “정체된 느낌이었어요. 호주는 방법을 공유하고, 노력해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기술로 인정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방법 알려주기를 꺼려하더라고요” 배 대표는 타국에서 오랜 시간과 돈, 정성을 들여 배운 기술이지만 거리낌 없이 후배들에게 전수했다고. 그렇기에 후배 요리사들도 그를 곧잘 따랐다. 다만 배 대표의 삶이 사라졌다. “출퇴근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했죠. 가정이 우선이라 생각했죠” 그 시기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보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다.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적게 벌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원에 집에서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 기가 막힌 현지화 전략

식당 이름은 ‘러스틱 참’으로 했다. 소박한 삶이라는 뜻이다. 이원의 묘목 시장, 과수 농가에 맛있는 참을 제공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은 그의 신념이 드러난 식당 이름이다. 양식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시라고 문턱도 낮췄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양식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배 대표의 바람이 드러난다. 6천원부터 시작되는 덮밥 종류와 파스타는 7천원부터 가격이 형성된다. 만 원 이상 받아야 하는 파스타지만 큰 욕심은 없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옥천읍 마트로 자주 나선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마트별 품질 좋고 저렴한 재료의 가격을 알고 있죠.” 옥천에서 나오는 채소들이 좋아 파스타의 품질도 자연스레 올라간다고. 젊은 사장님답게 카카오 채널을 통해 포장 주문도 받는다.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으로 이원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농사일하며 새참으로 드시라고 모든 음식은 포장이 가능하다. “참이슬과 린21 두 종류의 소주도 판매하고 있어요. 덮밥을 드시며 반주로 소주를 찾는 분들이 많아 가져다 두었어요” 소주 안주가 필요하다면 덮밥 메뉴에서 밥을 빼고 볶아드린다. 배 사장은 스테이크를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낙농업의 국가 호주에서 요리를 배워온 그이기에 자신이 있다. 파스타 메뉴는 새우 로제 파스타를 추천한다고. “다른 로제 파스타와 맛이 다를 것이에요. 기대하고 드셔보셔도 좋아요” 수제 버거도 판매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손자의 손을 잡고 버거를 드시고 간다. 때로는 술안주로 꽤 잘 팔린다. 

■ 이원에 오면 러스틱 참은 꼭 들려야죠

주변 관광서, 금융기관이 단골이다. 손님들이 올려준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본 외지인들이 찾는다. 배 대표의 가게를 본 주민들은 “이원면 많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생애 첫 파스타를 러스틱 참에서 접하는 사람들도 많다. 거부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접시 가득 푸짐하게 담긴 파스타를 남김없이 드신다고. “이원에 오면 러스틱 참은 가 봐야지 이런 느낌의 가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손님이 있는 옥천읍에 자리 잡아 장사를 해볼 법하지만 이들은 더 소박해지고 싶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숲과 어울리는 가게에서 손님들이 찾아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배 대표는 옥천이 꽤 살만한 곳이라고 말한다. “호주, 부산, 진주 등 많은 곳에 살았죠. 이곳 저곳에 강이 있어서 좋죠. 금강 쪽으로 자전거 탈 곳도 많아요.” 이제는 완전한 옥천 사람이 되었다. “주말 아침에 조기 축구도 하죠. 이원 조기축구회 회원인데 동네 사람들과 친해졌어요” 배 대표는 내년 묘목 시장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로 개최될지 모르겠지만, 묘목 시장이 열리면 농원에서 새참으로 드시거나, 손님들이 식사하고 가실 수 있게 준비해야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원에 들어와서 살아, 인프라도 형성하고 다양한 가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원면 묘목로 113
010-8609-8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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