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개점해 올해 70주년 맞은 옥천 최초의 세탁소, 2대째 운영하는 배동자씨
서울, 대전, 천안을 종횡무진했던 의상 디자인 전문가
세탁은 기계 아닌 손의 일, 이불·커튼도 수선 가능해

“바지 기장 줄이고, 지퍼도 떼고 싶다고요? 어디 한번 볼까요.”
손님의 다리에 직접 바지를 가져다 댄다. 어느 정도 줄여야 맞춤옷처럼 어울리는지 전문가의 눈으로 판단한다. 40년 경력의 의상 전문가지만 절대 대충하는 법이 없다. 한양세탁소의 배동자(60) 대표다.
천장에는 여느 세탁소처럼 겨울 외투가 줄지어 걸려 있고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런데도 한양세탁소에는 어수선한 느낌이 없다. 널찍한 공간에 손님이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소파까지, 세탁 카페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게다가 이 세탁소에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있다. 벽면에 걸려 있는 오색찬란한 실타래와 세월이 느껴지는 오버로크 재봉틀. 이 둘은 각각 배 대표와 한양세탁소를 상징하는 듯하다. 가지각색의 실타래는 의상 디자인 일에서 출발해 샵마스터, 홈인테리어 디자인 일 등을 40년간 종횡무진해온 배 대표 같다. 때 묻은 오버로크 재봉틀은 1951년 옥천 최초의 세탁소로 문을 연 한양세탁소의 70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옥천읍 중앙로33, 733-2419 / 오전 830분 개점

한양세탁소·무인 빨래방전경.

■ 의상 디자인 전문가의 세탁·수선소

한양세탁소는 옥천읍 국민은행 옆 골목 깊숙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뜯어진 실밥, 단추 하나 놓치지 않는 배 대표의 꼼꼼함 덕분이다. 기계에 옷을 넣기 전 옷의 모든 부분을 세심히 살피고, 하자가 있는 부분은 수선을 마친 뒤에야 세탁을 시작한다. 다림질까지 각 잡아 마치고 나면 입던 옷이 새 옷으로 다시 태어난다. 배 대표는 세탁은 기계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는 의상 디자인 일을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 수 있는 하자도 제 눈에는 다 보이죠.”

대전에서 태어나 목동초, 중앙여중, 대전여상을 다녔다. 학창 시절 가정 시간, 선생님들은 배 대표가 만든 수공예품을 늘 모범적인 샘플로 여겼다. 그만큼 손재주가 좋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의상실을 하는 이모는 그런 배 대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이모와 함께 일했던 신림동 의상실을 출발점으로 배 대표의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역사가 시작됐다. 맞춤 의상의 시대가 저물고 기성복의 시대가 올 때까지, 천안 아민의상실, 대전 송미의상실에서도 일했다.

“의상실에서 일할 때, 제작보다 디자인을 주로 했어요. 손님이 오면 치수를 재고, 체형에 맞추어 옷을 그리죠. 원단도 다 제가 선정하고요.” 야무진 손이 옥천에서 직접 세탁소와 홈인테리어점을 운영하며 단련된 것이라면, 남다른 눈썰미는 이때 생긴 것일 듯하다.

기성복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을 때도 의상실 경력을 십분 살렸다. 기성복 브랜드인 페페 패션을 거쳐, 동양백화점에서 예복 샵마스터 일을 했다. 직접 예복을 갖춰 입고 고객의 체형, 스타일 등을 고려해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옷맵시가 워낙 좋은 탓에 중도일보에서 개최하던 대회에 브랜드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며, 쑥스러운 듯 그러나 자신감 있게 미소짓는다.
 

한양세탁소를 2대째 운영하는 배동자 대표.

■ 옥천의 70년 터줏대감·팔방미인

배 대표는 남편인 엄기영 씨와 결혼하며 옥천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배 대표는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생각이었다. 샵마스터는 급여도 높고, 타 백화점으로 발령 시 본사에서 자동차·주거·식비를 제공한다. 이에 많은 샵마스터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당시 국제기계에 다니고 있던 엄기영 씨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5월 봄바람에 흙먼지가 부니까, 그거 막아준다며 내 앞에 막아서더라고요.” 배 대표가 웃으며 그때 일을 회상한다.

배 대표의 시아버지는 70년 전인 1951년 한양세탁소의 문을 열었다. 옥천 최초의 세탁소였다. 배 대표와 남편인 엄 씨가 건물을 새로 짓고 가게를 이어받은 것은 1995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공간을 세 개로 나누어 운영했다. 한 곳은 남편이 운영하는 세탁소, 한 곳은 배 대표가 운영하는 홈인테리어점, 한 곳은 배 대표의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은 홈인테리어점에서 판매하기 위한 홈패션 제품을 만드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대전에서 의상실을 다닐 때, 의상실 바로 앞 홍명상가에 홈패션 학원이 있었어요. 나중에 내 집 예쁘게 꾸미려고 배워두었던 것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배 대표는 이장 일을 비롯한 사회 활동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세 개의 공간을 사실상 혼자 운영했다.

201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배 대표가 본격적으로 세탁소를 이어받았다. 세탁소 일이 워낙 많아 현재 홈인테리어점은 운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탁소 우측의 널찍한 수선 작업대와, 세탁소 곳곳을 근사하게 장식한 홈패션 제품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 세탁소 주인, 어딘가 남다르다는 것을. 한양세탁소에서는 다른 세탁소에서는 되지 않는 커튼 수선, 이불 수선까지 가능하다. 전부 배 대표의 남다른 경력 덕이다.
 

■ 무인빨래방도 오픈, 70년 됐어도 날마다 새로워져요

한창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세탁소 벽을 넘어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세탁소 옆, 한때 배 대표의 홈패션 작업실이기도 했던 공간이 지금은 무인 빨래방으로 탈바꿈했다. 무인 빨래방을 처음 이용해보는 손님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자, 배 대표가 건너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지폐는 여기서 동전으로 바꾸면 되고, 세제랑 유연제는 따로 안 넣어도 돼요. 기계에서 자동으로 나오거든요.” 무인 빨래방을 보다 알뜰하게 이용하는 팁도 알려준다. 충전식 빨래방 카드로 결제하면 이용할 때마다 15%씩 적립된단다. 이용금액은 20kg 세탁기 4천원, 30kg 세탁기 5천원이다.

세탁, 수선 일에 무인 빨래방 운영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듯하다. 그래서 한양세탁소가 100년 될 때까지 운영됐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건넬 때, 내심 걱정했다. 지금도 일이 많은데 얼마나 더하라는 거냐고 할까 봐.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한다. “그럼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숟가락 들 힘이 있을 때까지 해야죠. 놀면 뭐 해요?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해요.”

배 대표의 ‘일’이란 세탁소 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10년 넘게 봉사단체인 목련라이온스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복지관에서 어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장학금을 모아 도립대에 기부하기도 한다. 지난여름에는 취약 계층의 집수리 봉사에도 참여했다. “사람이 사회에 봉사해야죠”라고 말하는 배 대표의 표정이 진지하다. 그는 나누는 것이 좋고 그래서 봉사 활동도 즐겁다고 한다.

하지만 ‘숨이 다하는 날까지’ 일하고 봉사하려면 그만큼 잘 쉬어줘야 한다. 오랫동안 쉼 없이 일해왔던 배 대표이지만, 이제는 일요일에는 꼭 가게 문을 닫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결혼 전부터 한화 이글스의 오랜 팬이었고, 류현진, 김광현, 추신수 같은 메이저리거들의 경기도 즐겨본다. 친정 식구들과 고등어 낚시를 하러 갔을 때는 배 대표 혼자 300마리를 잡아 와, 옥천의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줬다고 한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산을 오른다. 인터뷰하는 동안 마셨던 국화차도 배 대표가 산에서 직접 따와 말린 국화를 우린 것이었다. 덕분에 인터뷰 내내 몸이 따뜻했다.

30년 뒤면 한양세탁소는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양세탁소가 3대까지 운영될 수 있을지 배 대표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대전에서 치기공사로 일하는 딸과 옥천 새로이크린에서 일하는 아들은 각자의 일에 열심이란다. 그래서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다만 나중에 자녀들이 뜻이 있다면 이어갈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는 듯했다. 옥천신문도 한양세탁소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그래서 30년 뒤 100주년이 되는 날 또 인터뷰 나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양세탁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된다. 개점 시각은 오전 8시 30분이다. 아무 데나 맡길 수 없는 아끼는 옷이 있다면, 마땅히 수선할 곳을 찾지 못했던 이불이나 커튼이 있다면, 이곳 한양세탁소로 오면 된다. 의상 전문가이자 홈패션 전문가인 배 대표의 손길에, 당신의 옷과 이불이 새것처럼 말끔해질 것이다. 한양세탁소는 70년이 됐어도 날마다 새로워진다.

세탁을 마친 겨울 외투들이 천장에 걸려있다.
세탁을 마친 겨울 외투들이 천장에 걸려있다.

 

수선을 진행 중인 바지.
수선을 진행 중인 바지.

 

11월 문을 연 무인 빨래방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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