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둠벙 카페에서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북토크 열려
이동현 대표, 15년간 곡성에서 발아현미 품종과 친환경 농법 개발
소설가 김탁환,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우리 농촌 알리고 싶어”

지난달 26일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북토크 강연에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기념촬영을 했다.

도시소설가와 농부과학자의 어색한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동기들과 지리산에 놀러 갈 겸 전남 구례를 찾은 김탁환(52) 작가는 상경하는 길에 전남 곡성의 한 식당에 들렀다. 김 작가는 곡성읍 섬진강로에 있는 ‘밥cafe 반(飯)하다’에서 식사를 했고, 집에서 먹는 백미와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밥은 구수했고, 반찬은 정갈했다. 식감뿐 아니라 ‘밥을 한다’ ‘마음을 빼앗긴다’ ‘세상 흐름에 반하여 내 갈 길을 간다’는 뜻이 담긴 식당 이름에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면서 곡성이라는 지역에 점차 마음을 열었다.

3면이 창으로 이뤄진 식당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밥을 먹던 김 작가는 그곳에서 농업회사법인 미실란(美實蘭)을 운영하는 이동현(51) 대표를 처음 만났다. 푸근한 인상에 평범한 농부처럼 보였던 이 대표에게 편안하게 물어봤다. “밥이 정말 맛있는데 어디서 나온 건가요?” 그러자 이 대표는 “지금 보고 있는 들판에서 수확한 걸 발아현미로 만들어서 음식을 낸 겁니다”라고 말했다. 곡성 그리고 밥으로 연결된 이들의 만남은 1년여간 지속되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에세이집에 기록됐다.

김탁환(왼쪽) 작가가 전남 곡성에서 미실란 이동현(오른쪽)대표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냈다.
곡성교육희망연대 남근숙 대표가 기타를 치며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 을 불렀다.

■ 농부과학자가 12가지 일을 하는 원동력

“아침마다 폐교에서 지리산 바라보는 쪽으로 똑같은 벼를 찍으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그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모든 얘기에 ‘아름답다’ ‘평화를 빈다’는 말을 한 건 우리가 갈등하면서 많은 것들이 파괴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 곡성이라는 시골에 농부로서의 삶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에 늘 했던 일이죠.”김 작가와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지역창작문화공간 둠벙에서 북토크 강연을 열기까지 부산, 광주, 제주, 진주, 청주 등 전국 14곳을 돌며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이 대표는 2005년 친환경 발아현미 가공회사 ‘미실란’을 설립하고, 2006년 5월 폐교였던 곡성동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15년간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미실란 대표 상품인 발아현미쌀은 특수 저온건조 방식으로 생산돼 발아율이 95%에 달한다. 미실란은 인근 농가에 개발한 벼 모종을 주거나 재배 기술을 알려주는 등 지역과 상생하는 지역 플랫폼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역에 적합한 볍씨 278종을 골라 직접 손 모내기를 해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다. 그는 벼농사뿐 아니라 평소 개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소소한 일부터 아내 남근숙(48)씨와 함께 하는 곡성교육희망연대 활동, 천주교 생태환경위원, 침실습지보존 이사장 등 총 12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농업과 농촌을 소멸해가는 존재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옥천신문 같은 언론사가 전국 각지에 있으면 언론 시장도 바뀌고 제대로 된 이야기가 실리는 것처럼, 미실란 같은 작은 회사가 엄청난 변화는 아니라도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줘서 농민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농업법인이 팔도에 많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흙을 많이 밟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우연이지만 곡성과 서울 면적이 비슷해요. 그런데 서울은 970만명이 사는 과밀지역이고, 곡성은 2만8천명이 사는 과소지역이에요. 같은 면적인데 이렇게 인구밀집도가 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썼습니다.”

김탁환 작가는 605㎢(제곱킬로미터) 면적의 서울과 550㎢ 면적의 곡성군을 비교하며 대도시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농촌은 어떤 의미인지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인구 100만명 이상이 사는 대도시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틈이 없다는 것”이라며 “빈틈이 없이 모든 장소를 메워서 땅에 가격을 매기면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장이나,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간은 사람을 10% 만나고, 나머지 90%는 사람이 아닌 강이나 산, 동·식물, 미생물을 만나는 게 정상인데 지금의 도시는 90%를 사람으로 채웠다”며 “사람을 최소한으로 만나고, 사람이 아닌 존재들과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을 곡성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미실란 건물이 있는 부지에 잔디를 심어놔서 아이들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4천평 정도 되는 미실란 폐교와 그 앞에 펼쳐진 2만평 가까이 되는 농가 들판이 모두 정원이며, 섬진강에 있는 징검다리 또한 아이들의 물놀이 공원이다”며 “흙을 많이 밟을 수 있는 토양에 살아가는 곡성 아이들이 면역력도 좋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나 성격 또한 나빠질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이 대표의 아들은 이 대표가 일본 유학을 할 당시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는데 1년6개월간 곡성에 거주하면서 진물이 멈췄다고 설명했다.

지역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동현 대표의 아들 이재혁씨

■ 농촌교육은 농민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곡성에 처음 올 때 인구가 3만6천명이었는데 지금은 2만8천명이에요.  돌아가신 분들도 있겠지만 교육시킨다고 아이들 데리고 나간 인구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대도시로 떠난 분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켰을까? 지금도 묻고 싶거든요. 농업과 교육은 비슷한 면이 있어요. 벼를 키워보면 알아요. 벼에 질소비료를 계속 넣으면 벼는 먹을 게 너무 많으니까 땅 속에 깊숙이 들어갈 의지가 없게 되죠. 아이들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부모가 교육시킨다고 계속 뭔가를 투여하면 아이들은 벗어나거든요. 이게 내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 것이 되니까 아이들은 요구하죠. ‘나 성적 올랐으니 뭐 줘’ 이런 일이 생기지요. 농촌 살 만하고요. 농촌을 아름답게 지키는 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미실란과 곡성유치원은 관내 아이들이 쌀 생산과정 전반을 체험하도록 올해에도 자연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흙 속에 들어가서 어린모를 심고 벼를 추수해보면 아이들이 농업의 가치와 쌀의 소중함을 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논에서 생명이 자라난다는 체험을 해보는 건 정말 소중하다”며 “아이들이 논에 자란 쌀을 수확하고, 논에서 사는 생명을 뜰채로 떠보면서 절로 생명 존중의 중요성을 체득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머리 같은 생물들이 그저 징그러운 게 아니라 지구에 함께 사는 생명체라는 걸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살리는 많은 생명들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 오정오(47) 공동대표는 이동현 대표와 함께 옥천을 찾은 곡성교육희망연대 남근숙 대표에게 곡성의 농촌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이에 남 대표는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로 자존감을 꼽았다. 그는 “아이가 나고 자란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긍심으로 승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농부를 바라볼 때 우대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갖고, 농촌에 거주하는 것이 경쟁에 밀린게 아니라 우리 지역을 이끌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받아들이려면 농촌에 살아가는 어른들 또한 지역을 아끼면서 자존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역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주상당고 강성호 교사
지역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옥천군학부모연합회 김복순 감사

■ ‘편안하면서 정이 느껴지는 시골이 더 좋아요’

옥천군학부모연합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는 김복순(48, 군서면)씨는 이동현 대표와 함께 강연에 참석한 아들 이재혁(22)씨에게 곡성에서 나고 자란 소감에 관해 물었다. 이에 이씨는 “성적이나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람간의 정이 느껴지는 시골 생활이 좋다”며 “친구 할머니의 일에도 친구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이 좋았다. ”고 밝혔다. 이씨는 전남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상태로 현재 미실란 밥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대표가 하는 농업 관련 일을 이어받을 생각이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자치배움터 징검다리학교에서 여행 분야를 담당하는 오아시스(양수리) 활동가는 이 대표에게 곡성 청소년들의 놀거리 혹은 문화향휴 공간에 대해 물었다. 이 대표는 “우리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뭔가 놀이기구와 시설이 있어야 아이들이 논다고 생각한다”며 “유아원이나 유치원 때부터 밖에서 공놀이하고, 자전거 타고, 뜰채로 논에서 노는 문화들을 많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놀이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곡성교육희망연대 남근숙 대표는 “아이들이 유아기나 초등학교까지는 그냥 내버려둬도 공 하나만 주면 2~3시간 놀 수 있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놀거리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곡성에 있는 학부모들 또한 고민이 많다”며 “아이들이 자립해서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우리 지역을 돌아보고 인문학적인 배경지식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절실한데 이는 결국 ‘마을학교 공동체’가 해답”이라고 밝혔다. 이어 “곡성은 ‘청소년문화의집’과 ‘곡성사람책도서관’에서 지역 주민과 청소년들이 소통하며 진로교육과 문화체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진로 적성의 문제를 단순히 직업적인 부분으로만 볼 게 아니라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삶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끔 주민들이 모여서 같이 의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안내중 학부모회 박연화(42) 회장은 “농촌에 살면 모든 게 자기 생활과 맞닿아있어서 아이들 교육문제를 비롯한 모든 일의 주체가 된다”며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동현 대표님처럼 3년의 이벤트가 아니라 15년을 곡성에서 계속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서 산다는 게 그저 힘든 일만은 아니고 따뜻하고 즐거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번 북토크 강연은 ‘옥천행복교육지구 마을아카데미 지원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 옥천군농민회, 옥천군학부모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옥천지회, 소금쟁이책방이 주최해 행복교육네트워크 박영웅 상임대표, 농민회 김형섭 회장, 농민회 서대곤 사무국장, 청주상당고 강성호 교사, 옥천살림 주교종 상임이사, 학부모연합회 오종란 회장, 옥천교육지원청 노한나 장학사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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