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아버지 담배장사에서 지금 삼거리슈퍼까지
군북면 와정리에서 만난 김영이(80)씨

옥천닷컴이 옥천의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탐방합니다. 마트와 편의점에 치여 이제는 많이 찾지 않는 가게. 그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구읍 가산상회와 이원면 강청리 문구점에 이어 이번에는 군북면 와정리 삼거리슈퍼를 찾았습니다. 

삼거리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이(80)씨는 이곳 와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 대에도 와정리에 살았다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아버지 김남극씨는 보리농사와 담배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담배장사를 했던 곳이 지금 삼거리슈퍼가 있는 곳 바로 인근입니다. 담배장사를 이어 하다 학용품을 파는 문구점에서 지금 삼거리슈퍼까지. 간간히 사람들이 오가는 삼거리슈퍼 앞, 이번에는 김영이씨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삼거리슈퍼. 5일 오후 5시 촬영.

어머니는 세 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 우리집은 처음부터 이곳이었어. 할아버지 때부터 와정리에 살았다고 하니까. (손으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저기 바로 저쪽에서 담배장사를 했지. 6.25 시절에도 했으니까 오래된 이야기야. 근데 그때는 모두 가난했잖아. 담배인삼공사에서 담배를 배달해주는데 담배를 살 돈이 없지 뭐야(웃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보리농사에 벼농사도 지었지. 

배고팠던 기억만 잔뜩이네. 보리로 끼니를 봐야 하는데 보리도 부족하니까 조금이라도 늘려먹으려고 보리진개빵을 해먹었어. 수제비에는 밀 껍데기를 넣고, 봄에는 쑥 뜯어다 밀가루를 묻혀 먹고, 찹쌀이 나올 때쯤에는 절구로 찧어서 쑥인절미를 해먹었고. 아이구, 그건 특별식이었지. 아, 국수도 있지. 국수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정말 특별한 날이지. 정말 맛있었어. 얼마나 맛있었냐고? 꿀맛이었지(웃음). 지금이야 생각나면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아니, 그런데 이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

아냐, 내가 아니라 우리 식구(아내)가 아버지 담배장사를 물려받아 했어. 나는 저기 대정분교에서 소사 생활을 했고. 소사. 소사 알지? 지금은 쎄콤이 다 하는데... 대정분교가 그때는 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 있었어. 일은 별 거 아냐. 없는 사람들 심부름 도와주고 그런 거지. 운동장에 풀 나면 풀 뽑고, 시험기간에는 애들 시험지 등사해주고. 그래, 등사(謄寫). 교육지원청에 서류 가져다주러 왔다갔다하면 하루가 다 갔어. 아침에 가면 저녁에 돌아왔으니까. 지금이야 팩스가 있지만 그때는 순 걸어서 다녀야 했지, 내가 팩스야. 포장도 안 된 길을 덜커덩덜커덩 가는데... 기자 선생은 소로길을 아나? 본 적 있어? 

김영이(80)씨

처음에는 자전차를 탔어. 나중에는 버스도 탔지. 자전차를 타면, 아휴, 말도 마. 몇 번은 바퀴에 구멍이 나서... 그치, 소로길이니까. 이런 판판한 바닥이 아녔단 말야. 땀 뻘뻘 흘리면서 손으로 읍까지 구불구불 끌고 나가서 구멍 떼워 돌아왔지. 

재밌는 일도 있지. 도시락 까먹는 재미. 읍에 자전차 타고 가다 지치면 아무 데나 앉아서 경치 보면서 도시락 까먹는 거야. 좋아하는 반찬? 그런 게 어딨어. 밥이랑 된장, 고추장이면 충분해. 식구가 싸줬는데 군말 않고 먹어야지. 그리고 도시락은 그냥 맛있는 거야. 특식을 먹는 날도 있지. 읍에 가면 중화요리집 정기루라고 있었는데... 중국 화교가 음식을 만들어서 그런가 기가 막혔어 맛이. 이제는 아마 문을 닫고 없지 왜. 그치?

퇴직한 게 97년도야. 정년이 58세였지. 퇴직하고 나서는 담배장사 접고 슈퍼하면서 학용품을 팔았어. 80년대였나. 그때까지는 장사가 잘 됐는데... 연필도 팔고 공책도 팔고, 볼펜도 팔고. 애들이 우르르 다니면서 날궂이 했던 때가 엊그제 같아. 애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으면 지나가던 마을 어른들이 '아이구, 이놈들이 날궂이를 하네' 라고 그랬어. 오후쯤 되면 정말 비가 내렸단 말야. 학교에도 한 학년에 2반까지 있구, 학생들이 400명까지 됐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만 날이 어둑해져도 아무도 안 보여. 장사도 장사지만, 다 어디로 간 건지, 마을이 쓸쓸해. 

삼거리 슈퍼 내부. 아이스크림·과자·생활물품등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키우는 고양이 양순이
차 타고 지나가다 슈퍼를 발견하고 잠시 내려 목을 축이는 손님. 할아버지는 대전에서 온 손님과 10여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가게 건너편에 심은 보리수나무 보리둑을 따는 모습. 보리수나무뿐만 아니라 벚꽃·감나무·단풍나무·느티나무·복숭아나무·철쭉·백일홍 등 가게 주변에는 할아버지가 소일거리로 심은 나무로 가득하다
할아버지가 심은 벚꽃나무와 경운기

사실 3년 전에 뇌경색이 왔어. 오른쪽 팔 다리가 잘 안 움직여. 중풍은 못 고치는 병이야. 몸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니까 식구한테 자꾸 짜증내고. 조용히 갈 날만 기다리는 거지. 응? 아니, 완전히 못 움직이는 건 아니고 슬슬 움직이면 움직여지긴 하는데... 맞네(웃음). 중풍인데도 움직여지니 얼마나 다행이야. 복 받은 거였네, 내가. 

아니, 그런데 사진을 얼마나 찍는 거야. 그만 찍어 그만. 기사는 안 써도 돼. 늙은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메로나 내밀며)여기 크리미나 먹고 가. 난 이제 고추 보러 밭 가봐야 해. 뭐라도 해야 식구가 밥을 주지. 밥값을 해야지, 밥값을(웃음).

삼거리 슈퍼 앞에서
밭 보러 경운기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 "뭐라도 해야 식구가 밥을 주지. 밥값을 해야지, 밥값을."
삼거리슈퍼 전경. 슈퍼 뒤에 있는 집은 할아버지 퇴직금으로 지은 집이다. 할아버지가 심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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