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가까운 나의 새벽을 깨우는 건, 텃밭의 갈증 난 무수들 숨소리다
여든이 가까운 나의 새벽을 깨우는 건, 텃밭의 갈증 난 무수들 숨소리다
  • 시민기자 김경희
  • 승인 2020.08.2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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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자서전-인생은 아름다워(56)
고복순 어르신 ( 1943~)

생글생글 눈웃음으로 반기는 어르신, 여든 가까이 살아왔지만 역사는 어르신의 삶을 기억하지 않았다. 딸로 아내로 엄마로 일꾼으로 살았던 소박한 어르신. 그 작은 역사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겼다. 처마 밑에 나란히 키 맞춰 매달린 마늘이 어르신의 지난 1년간의 행복를말하고 있었다. 얼음 동동 띄운 손이 시린 보리차를 내오시는 손끝은 까칠하고 뭉툭하지만 인정이 배어 있었다.

■ 인생이 농사와 다를 바 없다.  

새벽마다 목마른 녀석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농사가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50년 동안 몸에 밴 일이라 새벽이면 발길이 먼저 대문을 나서고 있다. 내 손길을 탄 고추 마늘 배추로 겨울의 초입에 이웃들과 모여 김장을 한다. 무더위에도 배추심고 무수거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폭염에 숨이 턱까지 차는 건 사람뿐만 아니라 텃밭의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빈집 텃밭에 농사를 짓고 있다. 터만 깨끗이 해주며 돌봐달라는 땅주인이지만 그래도 수확을 나눠야 마음이 편한 우리네. 상부상조란 말로 굳이 엮지 않아도 시골 인심이 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정갈하게 손질된 마늘을 처마 밑에 매달았다. 

마늘씨로 쓰고 김장하면 온데간데 없지만 3남매에게 김치 두통씩 나눠주면서 1년 농사의 손을 턴다.

이웃 간의 정이 유난히 좋은 백운리 사람들, 열 명이 모여앉아 품앗이로 김장을 한다. 

수다를 양념으로 배추를 버무리고 겉절이에 쫄깃한 수육 올린 쌈으로 피로를 더는 그 맛에 농사도 김장도 거뜬하다.

작은 시골 마을의 할매라 파마하러 보은 다녀오는 날이 먼 마실 길이다. 버스타고 내리는 시간이 적지 않아 한나절 외출이다. 야무지게 총총 말아 올려 몇 달은 찡짱하다. 내 나이 78세, 옛날이면 뒷방 노인네였지만 지금은 새댁소리 듣는다. 나이 드는 것 아까워 빨간 바지 연두색 바지 고운 색을 입고 나이든 안색을 애써 감춘다. 그래도 사람들이 “고복순이 빨간 바지 잘 어울려” 하는 맛에 아직 여자라고 내심은 좋다.

대문 앞에 나란히 선 ‘고복순 박명한’ 문패, 둘이 하나가 되어 긴 시간을 함께 했다. 

하루하루 곱씹으면 다들 징글징글한게 부부지만 여기까지 온 것 보니 천생연분이다. 

 

■ 강원도 안흥에서 옥천 백운리까지

나는 아직도 고향 사투리가 혀끝에 맴도는 강원도 안흥 출신이다. 횡성사람이 백운리까지 멀리도 시집을 왔다. 안흥 하면 찐빵으로 이름 날린 곳이다. 고향 할매가 차 지나는 도로에 난전을 펼쳐 팥 앙금 들어간 찐빵을 쪄서 하나둘 판 것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내 고향이 안흥이오’ 하면 아 찐빵 유명한 동네라고 알아준다. 그 말 한마디로도 고향 생각에 뭉클하다. 

고향 떠나 온지 50년이 넘었지만 18살까지 나를 품었던 곳 그래서 간간이 그립다. 횡성에서 옥천 길, 지금처럼 교통이 좋은 시절에도 3시간이 넘는 곳인데 그 옛날에는 오가는 길이 꼬박 이틀이라 시집오면 좋은 일로 친정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곡소리나 들으러 가야 하는 멀고 먼 친정 길 이었다.

18살에 고모부가 중신을 해서 지전리 사는 박가와 결혼을 했다. 지전리 살다가 이사를 하고 백운리에서 53년째 살고 있다. 젊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영감님 돌보느라 힘은 들었어도 같이 해로하니 그것으로 족하다.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 따로 있지만 남편이 어려우면 아내가 돌보는 것은 여차저차 따질 일이 아니다. 이제 영감님 곁을 지키는 든든한 배우자로 이름 지어지는 것도 나의 몫이고 내 인생에 책임을 다한 흡족한 마음이다.

18살에 시집와서 새댁 때는 노다지 죽을 먹고 살았다. 강원도는 잡곡이 많아서 큰 애기 시절까지 끼니걱정 없이 살았다. 영감님은 조실부모해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내가 영감님 챙기면서 사느라 고단한 시절은 당연히 있었다. 애들 키우고 먹여 살리고 교육하느라 남의 땅 소작하면서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며 살아왔다. 누군들 그 삶이 평탄하기만 하겠나.

“1960년대 70년대 만 해도 여자들이 우물물 길어다 먹었어. 지금 평짓마 샘이지. 아침에 밥해먹고 두레박으로 물 퍼내기 힘들었어. 김치 담아서 통에 묶어 샘에 넣어두면 겨울 내내 안 쉬어. 우물 안이 집집마다 넣어둔 김치통으로 꽉 차서 물 퍼내기도 힘들었어. 우물이 냉장고였던 시절이야. 한날은 김치 통 훔쳐갔다고 난리가 났지. 누가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그냥 잘 먹으라고 푸념 한번 하고 말았지. 캐물어 뭐할 것이며 묻고 따지는 것보다 속아주고 숨겨주는 것도 사는 미덕이야”

넓은 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는 우리는 우물가에서 인생을 논했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고 고단한 삶을 서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물도 ‘평짓마 샘’이라고 복 짓는 이름이다. 우리 상준이는 문식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장수하려면 상준이가 좋겠다고 이름도 바꿔주었다. 애미는 자식일이라면 지나가는 바람이 건네는 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렇게 자식한테 여린 나를 여장부로 서게 한 남편은 세상 호인이다. 
엄마로 아내로 가장 아닌 가장으로 살길을 모색하면서 나는 인생의 바람에 정면으로 마주섰다.

남편과 함께 매일 만나는 이웃들, 노년의 고마운 사람들 

■ 각양각색, 시대의 그림자들 

영감님이 젊어서부터 편찮으셔서 둘이 같이 일을 했어도 우리 집은 여자 몫이 컸다. 내가 할 일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농사짓고 장사도 하고 두부장사, 튀밥 장사, 소도 키우고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불만보다는 살아야 한다는데 마음의 점을 찍었다.

청산장에 나가 튀밥을 튀기면 뻥 소리에 다들 놀라 언제 소리가 날지 귀를 막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아이들 덕분에 힘들어도 웃음한번 지었다. 뻥 소리에 튀밥이 와르르 쏟아지면 아이들은 어디 숨었다가 나오는지 잰 걸음으로 나와 손바닥에 올려놓고 혀로 핥아먹었다. 뭐가 그리 맛있는지 손바닥에 때 구정물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간식이라는 이름도 생경했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간식거리로 줄서서 기다리는 때도 있었다.

남씨성 가진 어떤 양반은 튀밥장사로 살았던 이야기를 책으로도 냈다니 시골 장날 한 귀퉁이에서 펼친 난전에도 인생이 담겼다는 것이다. 

지금은 보리밥이 별미이듯이 튀밥도 특별한 간식으로 대접 받는 세상. 

세월을 거슬러 시골 여인의 생계수단도 무수한 시간 속에서 변화의 물결을 탔다. 

1940년대 태어난 여느 여인들처럼 나도 배움이 많지 않지만 수단이 좋아서 강원도에서 오징어를 떼다가 팔기도 했다. 강릉에서 오징어를 저렴하게 받아다가 바다 구경 못하는 옥천에서 팔았다. 

소도 먹이고 시골 살이 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했다. 소를 먹이면 2등은 했다. 1등은 내주어도 우리 집 소가 아무리 못해도 2등은 했다. 아이들이 엄마 고생한 거 알아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 던져놓고 꼴 베어오고 군말 없이 일을 도왔다. 속으로야 힘들었겠지만 투정 안 부리고 나를 도운 아이들 손길에 마음이 짠했다.

한동네 살아도 우리들의 생계수단은 달랐다. 누구는 칡으로 밥줄을 삼고 뒷집은 공장에 다니고 아랫동네는 농사를 짓고 나는 나 나름대로 소도 키우고 장사를 했다. 다들 어려운 여건이라 한 눈 팔지 않고 사는 게 최선이었다. 사람이 죽어도 행상 짊어질 사람을 백운리에서 구했다고 할 정도로 백운리 사람들은 뭐든 열심히 했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들이 자손들에게 대물림되어 자손들도 복 지으며 살고 있다. 동네가 화평한 연유기도 하다. 

고복순 내 이름 석자를 몇 사람이나 알까만.

그러나 나는 6,25를 겪고 새벽종 울릴 때 일터로 나갔고 격동의 시대를 소리 없이 지나왔다. 한 여자로 어머니로 부락의 구성원으로 78년의 내 삶이 부끄럽지 않다. 처마 밑에 촘촘히 달린 마늘 알처럼 단단하고 야무진 나의 지난날들에 미소로 화답할 수 있다. 고래등 같은 집 하나도 부럽지 않다. 영감님 챙길 건강이 따라주고 이웃 성님 아우들과 믹스 커피 한잔 나누며 소곤소곤 수다 떠는 우리 집 툇마루가 금방석이다. 이만하면 됐다.
 

총총히 야무지게 매달린 마늘이 한해의 수고를 말하고 있다.
우리 부부의 오래된 벗이다.

 

어머니. 
무더위와 긴 장마에 많이 지치셨지요?
두 분 걱정도 되고 어머니 계시니 안심도 됩니다.
수돗가에 깨끗이 말려두신 빈병들 보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땡볕에 들기름 짜서 담아 주시겠다고 하나하나 모으고 닦으신 그 손길을 압니다. 
겨울이면 김장을 담아 집집마다 챙겨주시는 어머니.
받아먹기만 합니다.
아직 건강하셔서 한시름 놓지만 아버님 챙기시느라 
건강 소홀히 하실까 걱정 됩니다.
내심은 어머니 건강하셔서 해마다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김장을 오래오래 먹고 싶습니다.
다들 멀리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스러운 마음 감사한 마음 늘 한마음입니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사랑합니다.
                         

3남매 드림.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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