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의 노력과 맛 인정받아 ‘옛장터숯불갈비’ 백년가게 선정
멕시카나치킨부터 옛장터숯불갈비까지 남다른 사업수완으로 옥천 맛집으로
안내면 오덕2리 출신 조성현씨와 영동이 고향인 김미화씨 이원 정착기
돼지갈비는 암퇘지만 선별, 덧살고기도 목살만 삽겹살만 고집해 인기

옛장터 숯불갈비의 주방장 김미화씨
옛장터 숯불갈비의 주방장 김미화씨

 

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까지. ‘가든’이라 불리는 고깃집은 큰 사업가를 대표했다. 요식업에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둔 이들이 가든으로 모여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인기만큼 경쟁 또한 치열한 법. 도로마다 자리 잡은 가든 속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색깔을 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타지인 이원에서 멕시카나 치킨(7년)부터 탄탄한 사업수완으로 물밑작업을 해온 조성현, 김미화씨 부부는 옛장터 숯불갈비를 23년 동안 하면서 완전 이원면 내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안내면 오덕2리 출신의 조성현씨와 영동 심천면 물한리가 고향인 김미화씨가 타향인 이원면에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맛과 정직함으로 승부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옥천군지부장과 모범업소 친목계, 이원로타리클럽, 배드민턴 연합회 등 다양한 활동을 겸하며 끊임없이 베푸는 관계로 지역사회에 녹아 들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였을까?

‘옛장터 숯불갈비’는 그 맛과 노력을 인정받아 올해 6월, ‘백년가게’에 선정되었다.

백년가게란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고객의 사랑을 받아온 도·소매업 및 음식점 중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옥천에서는 그 동안 물쫄면으로 유명한 풍미당과 해제비로 유명한 일미해장국 식당이 선정된 바 있다. 올해에는 도내 7곳이 선정됐고 옥천에선 유일하게 옛장터숯불갈비가 뽑혔다. 

말 그대로 백 년 이상 존속 가능한 능력을 지닌 업체를 선별하는 것이다. ‘옛장터 숯불갈비’는 23년 경력이지만, 식사를 했던 고객들이 직접 추천을 해주어 신청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직접 추천해 준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겸 신청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업체는 전문가 컨설팅과 역량강화 교육, 소상공인 보증, 융자 우대혜택이 제공된다. 국내 유명 O2O 플랫폼(식신)과 주요 언론매체 등을 통한 전국적인 홍보기회도 지원된다. 옛장터 숯불갈비 조성현 대표는 "이번부터 고객들이 추천해준 식당을 검토해 백년가게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영광스럽게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의 백년가게의 토양이 되는 30여년 식당사를 들어보면 왜 상을 타게 됐는지 짐작이 간다.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 이원에서 찾아낸 기회

안내면 정방리와 붙어있는 안내면 오덕2리가 조성현 씨의 고향이다. 안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은 삼승면에 위치한 원남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또 다른 곳에서 나온 그는 졸업 이후 서울 상도동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이원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방위 시절 친했던 친구의 오토바이 사고로부터 시작되었다. 위문차 이원면 미동리에 있는 친구에게 들렸다 집에 가는 길. 주위를 둘러보니 제대로 된 치킨집이 없었다. 당시 치킨집에 배달용 차량이 없을 때라, 치킨을 배달하려면 택시 비용 500원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 마침 옷 장사를 하던 터라 차를 갖고 있었던 그는 배달만 무료로 해줘도 승산이 있을 거란 생각에 이원에 내려오게 됐다.

무엇 하나 어설프게 준비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프랜차이즈로 장사를 할지 결정하기 위해 공복의 상태일 때 대전으로 가 치킨을 먹으러 다녔다. 페리카나, 멕시칸, 처갓집, 스머프, 멕시카나 등 치킨이란 치킨은 질릴 정도로 먹었다. 모든 치킨이 맛있었지만, 멕시카나 치킨이 그중에서도 양념치킨이 기가 막혔다.

부푼 기대를 안고 내려온 그의 앞에 현실이란 벽이 가로막았다. 멕시카나의 가맹 비용은 1천320만 원으로 겨우 모은 830만 원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더 큰 문제는 면 단위에겐 가맹점을 내주지 않는다는 본사의 태도였다.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 전 재산을 가지고 왔고, 후회 안 하게 해줄 테니 믿어 달라” 무작정 통장과 도장을 두고 나왔다.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 덕분일까? 일주일 뒤 본사에서 가맹을 승인해 주는 연락이 왔다.

 

■ 탁월한 사업가의 기질

150마리. 하루 평균 소비했던 닭의 수이다. 당시 후라이드치킨은 4천원에 양념치킨은 4천500원이었다. 택시비 500원을 안 줘도 먹을 수 있었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는 메이커 치킨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빵 하나 우유 하나를 차에 넣고 먹으면서 다녔어요” 돈 세는 것을 포기해 앞치마로 싸서 던져놓고 동생들이나 친정 식구들한테 세 달라고 할 정도였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프랜차이즈 선점 효과라고 말하기보단 그의 타고난 사업가 기질이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원면 주민들의 마음을 산 조성현 씨의 노력이 빛났다. 어르신들이 농담 삼아 모 좀 몇 포기 뽑고 가라고 하면, 진짜로 가서 뽑으며 일손을 도왔다. 이앙기가 많이 없을 시기에 농사일을 도와주니 얼마나 이뻐 보였을까. 덕분에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과 친근감 있게 잘 지냈다. 또한 당시 이원 파출소에는 차가 한 대도 없던 것을 도와. 자신의 차를 끌며 방범대 역할을 수행했다.

이외에도 차는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였다. 당시에는 시내버스가 빨리 끊기는 탓에 마지막 열차를 타고 오면 집에 들어갈 길이 없었다. 택시 또한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에 교통편에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들이 많았다. 조성현 씨는 이를 파악하고 치킨을 한 마리 시키면 집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택시비가 700원, 800원 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통닭 4천원 4천500원 값이 아깝지 않았다. 영동 심천면 장동리처럼 먼 곳은 택시비만 따져도 훨씬 이득이었다. 이는 금방 소문이나 우리 딸이 몇 시에 도착이니 맞춰서 치킨을 튀겨달라는 전화도 자주 받았다.

 

■ “사람이 재산이지 돈이 재산이 아니다”

승승장구하던 치킨집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인계한 그는 무언가 메리트 있는 영업을 하고 싶었다. 옥천으로 넘어가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었으나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아버지 말씀이 맘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소방대와 방범대 같은 큰 활동부터, 가정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이면에 녹아들어 있었다.

이면에 자리 잡기를 결심하였으나,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는 여전히 미정이었다. 흔한 조립식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직접 통나무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추위에 강한 강원도 나무의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츄레라 2대를 이끌고 직접 강원도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손수 지어진 ’옛장터 숯불갈비‘는 총 두 채로 본채는 좋은 나무가 생기면 바깥을 걷어내고 다시 붙이게끔 설계되어 지어졌고, 연회석은 시멘트 일절 없이 오로지 통나무로만 지어졌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고객들은 보기 드문 통나무집에 매료되는 것이다.

건축물만큼 음식 또한 이들의 정성이 가득하다. 남편이 건물을 짓는 동안, 김미화 씨는 직접 구미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 반찬을 배웠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지닌 실력자이지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 배우려 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요즈음엔 돼지갈비가 공장에서 생산되어 팩으로도 나오고 업소용으로도 나오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조성현씨는 읍내 옥천육가공에서 암퇘지만을 직접 선별하여 구매한 후 직접 포를 떠서 재웠다. 덧살 고기도 저렴한 후지살 사태는 일절 거들떠보지 않고 목살과 삼겹살만 고집했다. 때문에 고기가 부드럽고 뻑뻑할 틈이 없다.

오로지 통나무로만 지어진 옛장터 숯불갈비의 별채
오로지 통나무로만 지어진 옛장터 숯불갈비의 별채

 

■ 노력이 결과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했던가. 이원에는 비수기라 할 기간이 없었다. 여름에는 무주 구천동, 겨울에는 무주 스키장으로 이원을 무조건 지나야 하니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정책 또한 ’옛장터 숯불고기‘에게 도움을 주었다. 사대강 살리기로 4년 6개월가량 장찬 저수지 공사와 칠방리 야영장서부터 장화리까지 하천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고, 이원역에서 원동까지 경부선 선로를 바로잡는 공사가 4년 동안 진행되었다. 계속되는 공사와 묘목 테마공원의 설립은 이원에 수많은 노동자를 몰고 왔다. 때문에 고깃집인데도 불구하고 점심의 주력 메뉴는 백반이다. 노동자가 많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 대비한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특히 경부선 선로 공사 때 LG건설의 직원들은 삼시 세끼를 다 ’옛장터 숯불갈비‘에서 해결하곤 했다.

물론 잠깐의 위기도 존재했다. 통영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 정도로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위기에 절망하고 있을 순 없었다. 가게의 방향성을 틀었다. 지역 행사를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방방 있던 연회석을 단체석으로 리모델링했다. 25인승이던 버스도 35인승 버스로 바꾸어 술 마신 모든 손님들을 직접 데려다줬다. 노력이 통했을까? 이원면에서는 칠순잔치와 팔순잔치, 아기들 돌잔치와 백일잔치는 ’옛장터 숯불갈비‘에서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연말에는 망년회로 단체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고깃집에 뜬금없이 노래방 기계가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옛장터 숯불갈비와 플라워펜션의 대표 조성현씨
옛장터 숯불갈비와 플라워펜션의 대표 조성현씨

30여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바뀌었을 기간. 조성현 씨의 몸에도 무리가 왔다. 7년 전 선고받은 위암은 많은 충격을 주었다. 정신없이 돈을 좇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챙길 틈이 없었다. 1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의 우선순위는 건강과 가족으로 변해있었다. 일을 조금 내려놓았다. 백 개를 준비하던 백반을 양해를 구하고 절반으로 줄였다. 또한 공기 맑은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금강 휴양림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옥천만 한 곳이 없었다. 타지에서 왔지만 반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옥천은 특별한 의미가 되어있었다. 결국 처가댁인 상촌면 물한리에 ’플라워펜션‘을 차려 벌써 3년째 운영 중이다. “가족들이 기분 좋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이 첫째다.” 암 투병 중 느낀 바를 그의 운영 철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부디 건강과 업무의 균형을 잘 유지하여 옥천을 대표하는 숯불갈비를 백 년 넘게 맛보여주면 하는 바람이다.

주소 이원면 이원로 809

문의 043 - 731 - 8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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