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 두려워 갈등을 회피하는 소녀들
고립이 두려워 갈등을 회피하는 소녀들
  • 옥천닷컴
  • 승인 2020.06.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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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내민 책 한 권
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책 표지는 티끌 없이 맑은 소녀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어. 그러나 이 책은 '반전이 쩌는' 영화 같아. 황홀하고 투명하게 예쁜 얼굴 이면에 감춰진 소녀들의 복잡하고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야. 

저자인 레이철 시먼스는 자신이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고, 한때는 따돌렸다는 것을 알아채지. 그 부분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 이를 연구해 보기로 해. 사람들의 얘기를 수집하다 보니 이런 사례가 너무나도 흔하다는 걸 알게 돼. 독자들의 서평을 보니, 여자들이 이 책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는 얘기가 많이 보여. 자기 학창 시절 경험과 겹쳐 보여 그렇다는 거야.  

많은 소녀는 고립될까 봐 두려워서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은 선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최소한 남학생들보다), 그들끼리 외롭고 은밀한 싸움을 하고 있어. 아래의 문장을 한 번 볼까? 

"남학생이 연필을 계속 탁탁거리면 '그만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저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 '선생님을 봐야지'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에요. 남학생이 연필을 탁탁거린 건 알겠는데, 여학생이 뭘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거든요." - P66

남학생들의 싸움이나 일탈 행동은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예방책이나 규제가 형식화되어 있고 공론화되지만, 여학생의 따돌림 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알아채지도 못하고 공론화하기도 힘들다고 해.

사고뭉치이며 개념 없는 남학생들이 많다 보니 여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착하고 얌전하고 문제가 별로 없어 보여. 고민거리를 물어봐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아. 그들은 교사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아. 표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교사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어? 

"사회학자 앤 캠밸은 성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자는 공격을 환경과 정직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기지만 여자는 공격을 관계를 끝내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중략)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조차 갈등의 씨앗이 될 것 같으면 억눌렀다. 그들의 계산은 간단했다. 갈등은 곧 상실이다." - P43

그들에게 한바탕 투덕거린 다음 더 친해지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야.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말에 많은 여학생이 콧방귀를 뀔 거야. 일단 갈등이 불거지고 적대감이 표면화되면 그걸로 끝이라고 보는 거지. 관계 개선을 하려면 문제가 있다는 걸 공감하는 게 첫 단추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아. "저희 아무 문제 없는데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죠?" 라는 말에 뜨악할 때가 있어. 여학생들간의 관계 개선이 힘들어서 일부 교사들은 여학교보다 남학교를 선호한다는 얘기도 곧잘 들려. 

어떤 여자 아이 둘이 매우 친해 보인다고 해서 그 둘이 정말 친하다고 속단하는 것은 위험해. 그들은 갈등을 두려워해. 사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강박처럼 작용하는 것 같아. '친한 척하기 기술'을 일찌기 습득하지. 솔직히 말하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야. 

소름 돋는 건,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들이 더 따돌림에 앞장서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야. 내가 느낀 것을 상대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일견 공평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감정에 관한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걸까? 복수는 달콤한가? 그 고통은 같은 무게일까? 애당초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동안 계속 울었으니 그 애도 우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하고 싶은 거예요." 9학년인 에밀리가 말했다. "무지하게 화나거든요. 내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애가 희열을 느꼈으니까, 나도 그 애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껴야죠." 6학년인 제시카가 말했다. "되갚아주고 싶어요. 버림받은 존재라는 느낌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처벌은 고립이며 인간적인 관계의 상실이다. - P193

많은 통찰이 담긴 책이야. 관계는 사춘기 아이들에게나 어른에게나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겠지. 미국 책이라서 과연 한국과도 잘 맞을까 싶지만, 고개가 끄덕여질 거야. 지금 우리의 삶은 서구의 삶과 별 차이가 없잖아. 정보가 범람하고 평준화된 요즘 세상에서 문화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니 정서도 비슷한 거겠지. 

그래서 여자 애들이 어땠으면 좋겠는가? 나도 그게 궁금했다고. 저자는 아래처럼 말해. 나도 동의하고. 어쩌면 남학생들처럼 좀 개념 없었으면 좋겠어. 좀 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하고 제대로 표현하기를 바라는 거지. 방법은? 그건 잘 모르겠어. 자라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교사나 부모 같은 주위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겠지?

"그렇다면 소녀들에게 공격적이 되라고 가르치라는 말인가? 그렇다. 소녀들의 자존감 상실에 대해 다시 살펴보면, 그 주요 증상은 이상화 되고 갈등 없는 관계이다. 소녀들이 질투, 경쟁, 분노 같은 '복잡한' 감정에 더 편안해지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감정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강렬한 감정도 자유롭게 털어놓을 것이며 자신에게 더 솔직해질 것이다. 서서히 끓어오르다가 분노 행위로 폭발할지 모르는 감정을 더는 억압하지 않게 될 것이다." - P372

소녀들의 심리학/레이첼 시먼스 │ 양철북
소녀들의 심리학/레이첼 시먼스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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