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임. 1947년 73세 구술생애사
박정임. 1947년 73세 구술생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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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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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唱婦隨, 양반님네 남편은 앞서시오, 뒤에서 따르겠소!

상호씨 앞서시오, 나는야 뒤따르리 걸음이 너무 빨라 언제나 힘이 드오. 성격이 급행열차니 뭐든지 먼저 하시지
우리 집 대문 열면 쭉 뻗은 朱木 한 그루 그 아래 槐木탁자 보물이고 쉼터이니 茶 한 잔 우려내어서 오늘만은 따져보리
내 겨우 19살 때 4남매의 막내딸을 어떻게 꼬셔내어 데이트를 졸랐던지 ‘나와라, 이젠 집에 가자’신사답긴 하셨지만
직업군인 하고 있어 내는 먹여 살린다며 큰 소리 치던 청년 믿을 만 했었기에 은근히 따라다니며 요모조모 뜯어 봤소.
보무도 당당하고 군복도 칼날 주름 행동도 절도 있고 목소리도 성우 같고 한 눈에 맘 뺏긴 처자가 바로바로 나였소.
우리 둘 다 막내인데 부모님은 내 차지 남편은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 가고 부모님 봉양하느라 내 등골이 다 휘었소.
백운리 가발 공장 아가씨들 찾아와서 집 넓고 솜씨 좋은 아줌마가 밥해 주소. 그 말에 기분이 좋아 손님들을 받았다오.
하숙집 주인으로 날마다 종종걸음 어느 날 조카딸 둘 내 집으로 찾아드니 보듬어 안아야잖소, 당신 핏줄이 내 핏줄
남편이 월남 파병시 귀찬이를 낳았는데, 시어머님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었지만 나 혼자 출산하면서 옆자리가 외로웠소.
뒤이어 창현이를 셋째 시현이 낳는 동안 그 많은 식구들을 돌보며 보살피며 다복해 좋은 삶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소.
상호씨 일찌감치 전역하고 새 직장으로 공항관리공단 광고회사 종합병원 사무장까지 그래도 월급봉투는 꼬박꼬박 주셨지요.
부천의 아파트에 어머님 모실 적에 온종일 심심하여 말벗이 필요하다셔 어머님 외로우실까 시누님도 모셨소. 
행주산성 오르는 길 꼬불꼬불 비탈 길 어머님을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릴 때 이런 게 효도관광이야 자식들의 본보기
좋은 것 맛난 것은 할머니께 다 드려요? 자식은 부모한테 그렇게 하는거요? 아들들 보고 배워서 효심이 쌓인게요.
세 아들 잘 키워서 제 밥벌이 하게 되고 제 식구 건사하고 알콩달콩 살아가니 우리는 시골 갑시다. 조용히 지냅시다.
아들들 찾아와서 손주들 키워달라, 간절히 부탁해도 일언지하 거절했소. 니 자식 니가 키워라 니 방식에 니 하고픈 대로
상호씨가 육십 오세 내 나이도 육십 되어 고향 근처 좋은 땅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하느님 은혜 받아서 오순도순 좋았지요.
그렇게 7년 동안 복 받아 감사한데 백운리로 돌아가서 남은 생을 살겠다는 지아비 고집을 쫓아 이 집으로 이사왔소.
한 시도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는 사람 동네 일 청산면 일 팔 걷어 부치는데 이제는 고만하시우 잔소리도 못했다오.
조상님의 산소를 어떻게 하오리까? 작은 시모 가실 때 고민하는 상호씨께 우리가 모셔옵시다. 가족묘지 만듭시다.
6.25때 학살당해 공동묘지 묻히셨던 작은 시부 유골 찾아 작은 시모 합장하니 이제야 마음 편하다 환히 웃던 내 남편
조카딸이 1순위, 아들들이 2순위, 18년 키워왔던 강아지(송이)가 3순위, 가끔씩 투정부리며 자신이 4순위라?
일요일 아침이면 성경 들고 경건하게 묵주기도 바치면서 성당에 가는 걸음 주님께 비옵나이다. 이웃 위해 나라 위해
우리나라 온 국민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19 극복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길 축복하며 기도하며
대쪽 같은 성격에 황소 같은 고집에 한다면 해야 하고 싫으면 절대 안 해 지아비 뒤쫓아오느라 그림자로 살아온 생 그래도 내 남편은 올곧고 바른 사람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 백운리 양반님네로 지금처럼 살아갑시다.
고맙소, 감사하오, 아직도 꼿꼿하니 주님 나라 갈 때까지 건강하게 지냅시다. 이렇게 함께 걷는 길 사랑이라 부를지니!

작가 남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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