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나의 기도는 끝이 없어라

오른쪽이 김영선 어르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기도로 하루의 아침을 열고 기도로 밤을 맞으며 40여 년을 두 손 간절히 모은 채 사는 
내 이름은 마리안나 동기간의 안녕을, 교인들의 평화를, 우리 마을과 사회의 평안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 빌고 또 빕니다.
기도하며 함께 살아온 교인들이 내 가족이고 내 식구지요.
떡 하나, 나물 한 접시, 국 한 그릇, 쌀 한 봉지 나눠먹자 챙겨주는 내 이웃들이 벗이고 친구고 버팀목이고 기둥이지요.
그들 덕분에 내 이렇게 강건히 살아있으니 은혜이고 사랑이지요.
1937년생, 올해 여든넷인데 살아도 살아도 왜 끝이 안 나는거요?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 우리 어무이 아부지 딸 여섯 두고도 아직 모자라, 아들 하나 낳겠다고 얼마나 애태우셨는지 지금도 그 모습은 눈에 선 합니다.
백운리 김생원댁 있는 둥 없는 둥 존재감 별로인 둘째딸로 태어났으니 내리내리 태어난 동생들에게 치이고 기다리고 기다린 쫑말이 남동생에게 부모님 사랑 싸그리 양보했지만 그래도 살림살고 빨래하고 딸 노릇하느라 애쓰며 살아왔지만 내 인생은 참 얄궂고도 애달프기 짝이 없었지요.
스무 두 살에 색동옷 입혀 날 데려 간 그 남정네 허우대는 멀쩡하고 인물은 반듯하고 예의범절 중하게 챙기더만 어쩜 그리 야멸차고 비정하고 얄궂든지요.
읍내다방에 새아가씨 왔단 소문 듣자마자 양복에 백구두에 바람같이 달려가서는 몇 날 며칠을 집을 잊고 새색시 품에 안고 사시는 2년을 눈물바람으로 참고 참다가 더 이상은 안될라, 미련도 인사도 없이 보따리 싸서 돌아왔습니다.
그 발길에 폭풍 불고 눈보라 치고 냉기는 서리서리 휘몰아치는데 부끄럽고 남사스러워 야밤을 틈탔지요. 
동여 맨 무명보자기 빳빳한 풀기에 눈물바람 안고지고 일 년을 두문불출 방안 앉은뱅이로 살았더니 시꺼멓게 타들어간 내 가슴도 쪼매 잦아드는 기미가 보였지요.
질기고도 질긴 게 목숨 줄 아닌가베 몸빼 바지 꿰입고 논으로 밭으로 내달려 죽어라 일만 했지요.
논둑에는 두렁콩을  밭둑에서 소꼴 베고 언덕 올라 나물 뜯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들 잘 챙기자 이 길이 내 길이요. 이 삶이 내 운명이라고 말뚝에 묶은 동아줄에 내 감정도 내 심장도 내 팔자도 꽁꽁 묶었습니다.
농사지어 자매들한테 보내고 쫑말이 대학공부도 시켜 교수까지 지냈으니 나도 할 만큼 하고 산 사람입니다.
한 동네에 같이 사는 큰언니 헬레나 댁은 모두가 성당 가족 요새는 손자가 복사까지 서고 주님의 큰 은혜 받았으니 마리안나의 기도도 나날이 깊어갑니다.
마리안나의 특별한 취미는 스포츠중계방송 관람 특히 배구와 골프 중계는 밤새워 보고 또 봅니다.
조그만 공을 앞에 두고 채를 휘두를 때 포물선을 그리며 달아나는 흔적, 그들을 쫓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고 환호성을 지를 때 공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지, 사람들이 공을 찾아가는지 아득합니다.
배구는 또 어떤가요?
스파이크로 네트에 배구공을 꽂을 때의 그 짜릿함과 튀는 맛 제가 마치 선수가 된 듯 신이 나서 우쭐대며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이웃 할매들이 가요무대와 연속극에 빠져있을 때 저는 스포츠와 기도에 빠진 주님의 딸, 마리안나로 늙어갑니다.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 돌아가면 나는 수녀로 살아갈 듯 싶습니다.
평생을 내 태어난 이 집에서 노동과 기도로 살아왔으니 내가 아는 것은 일하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지요.
레지오 활동도 열심히 했고 묵주기도 화살기도 원 없이 바쳤으니 난중 주님의 나라에 가면 이끌어 주실 테지요.
울 아버지 환갑 갓 넘기고 돌아가시고 울 어머니 아흔까지 내가 모시고 이 집에 사시다가 말년 2년은 평생 희망하던 아들 쫑말이한테 가서 효도 받으셨으니 그 정도면 잘 사신 거 아닌가요?
내 비록 남편 복 없고, 내 속으로 낳은 자식 하나 없지만 사람 사는 게 이모저모, 세모팔모라 하지 않소?
젊어 한 때 이웃들은 남자도 만나고 팔자도 고치라 했지만 애시 당초 없던 복을 헤매봐야 어디서 찾을라고요.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땅 백운리에서 기도하며 남은 생 마감해야지요.
지전리 사는 박안나 자매가 말벗도 해 주고 집안일 거들어주니 이 모든 게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영광 안에 살아있어 행복합니다.
우리 마을의 모든 이웃들 복 받으시고 건강하소서!

작가 남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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