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동평리 부녀회장 딘티마이씨의 모습이다. 동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더니 환히 웃어보인다.
군서면 동평리 부녀회장 딘티마이씨의 모습이다. 동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더니 환히 웃어보인다.
군서면 동평리 부녀회장 딘티마이씨의 모습이다. 동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더니 환히 웃어보인다.
군서면 동평리 부녀회장 딘티마이씨의 모습이다. 동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더니 환히 웃어보인다.

[읍면소식-군서면] 15년차 주부인 딘티마이(47)씨는 올해 군서면 동평리 부녀회장이 됐다.

"아직 글로 읽는 한국말은 약해, 고민했는데. 각종 행사에서 요리하고 봉사하는 건 그래도 자신 있어서 하게 됐어요. 다 우리 가족이잖아요."

부녀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마을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딘티마이씨. 15년전 마을에 처음 발을 내딛던 때를 생각하면 스스로도 지금의 모습이 낯설다고 말한다.

쉬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두 딸 아이의 나이가 13살.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그 세월 동안 그녀는 한국에 점차 물들어 갔다. 입맛도 한국 입맛으로 변했고, 동네 주민들과 자리에 앉으면 수시간을 이야기 하기도 하는 평범한 한국 '아줌마'가 됐다.

먼 이국 땅에서 지금만큼 정착하기까지. 특히나 가족의 도움이 컸다고 말하는 딘티마이씨. 무뚝뚝하긴 했어도, 친정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준 시어머니 故김희석(88)씨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시울이 불거진다. 작년 7월 급성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2일 만에 돌아가신 모습이 눈앞에 선하기 때문.

"정말 순식간에 벌어졌어요. 수술하고 엄마 보러 갔는데 엄마가 못 알아보더라고요. 엄마 내가 왔어 눈 떠봐, 했는데. 말도 못하시고요."

슬픔에 잠겨 있는 딘티마이씨를 동네 주민들이 번갈아 가면서 챙겨줬다고 말한다. 점차 슬픔이 옅어지고. 요즘은 어머니와 함께 짓던 고추, 고사리, 논농사 등을 지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옥천주민' 딘티마이씨의 남은 소원은 '국적취득'이다. 2차례 시험을 봤지만, 난이도가 있어 시험에 떨어졌다고.

"시험에서 전쟁 몇년도에 일어났는지도 물어보고, 동전에 그려져 있는 사람 누군지 물어보고, 애국가도 부르고요. 예상치 못하게 물어보니깐 어려워요. 평일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은 집안일 하고 동네일 하느라고 바빠요.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국적을 취득하면, 15년 동안 2번 본 가족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단다.

"정말 일이 너무 많아요. 동생도 조카도 오면 때론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같이 일도 해서 돈도 벌고요. 얼굴도 봐서 너무 반가울 것 같아요. 시험 말고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둘 낳고, 부녀회장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평범한 자신을 이제는 '한국사람'으로 받아줄 수 없냐고 묻는 딘티마이씨. 이제 그 간절한 바람에 답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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