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찬 저수지 옆, 빨간 캠핑카
장찬 저수지 옆, 빨간 캠핑카
  • 서재현
  • 승인 2020.05.21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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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익산, 집은 군북면
장찬리를 사랑하는 이정기(62)씨
“장찬리가 너무 좋아 매주 캠핑 옵니다”
장찬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매주 장찬저수지를 찾는 이정기씨의 모습.

[읍면소식-이원면] 이원면 장찬저수지 옆 작은 잔디밭에는 빨간색 대형 버스 한 대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일동안 비와 바람을 맞던 빨간 버스는 주말이 돼서야 문이 열린다. 사이드 어닝(그늘막)이 펴지고 그 아래 접이식 캠핑식탁과 의자가 자리한다. 장찬리 캠핑족 이정기(62)씨가 장찬리에 도착하자마자 항상 하는 일이다.

이정기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고향은 전북 익산시.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이사갔다. 8년 전에는 군북면 증약리로 옮겨 살고 있다. 익산이 고향이고 군북면에 집이 있는 이정기씨는 또 왜 장찬리에서 터를 잡고 시간을 낚고 있을까.

그는 자신을 장찬리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한 사람이라고 칭했다. 이정기씨가 장찬리와 인연을 맺은 건 2014년 경.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장찬저수지에는 수상스키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수상스키를 타러 자주 장찬리를 들렀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나무의 푸름에 반하게 됐다.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할 때면 장찬저수지를 찾았다.

이정기씨는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은 포기했다. 상고보다는 공고에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업기계 공장에서 설계 일을 10년간 했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때면 거리의 무수한 간판들을 보며 ‘나도 내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떤 사업을 하는 게 좋을까’ 궁리했다.

서른 살부터는 꿈꾸던 자영업자가 됐다. 산업기계와 부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 직원은 총 5명. 아내와 아들, 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 중이다. 10년간 간판을 내리지 않고 일을 해왔으니 나름 잘 산 인생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직업과 나를 항상 동일시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일이 그를 집어 삼키려고 한 적도 많았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부지런히 뛰었지만 매일 같은 자리였다. 돈을 벌어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였다. 방이 한칸인 집에서 두칸인 집으로 옮겼다. 평범한 아버지로서 살기 위해 열심히 일만 했다. 인생이 빠르게 지나갔고 돈을 벌었지만 호주머니에 남는 건 없었다.

생각을 고치고 욕심을 버렸다.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이 세상에 노동하러 온 게 아니라 소풍을 온 거라고. 너무 일에 매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소풍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내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았어요.”

캠핑카를 사기로 했다. 2016년 25인승 중고 버스를 1천500만원 들여 구입했다. 15년쯤 나이를 먹은 버스였다. 또 1천500만원을 들여 차량을 캠핑카로 개조했다. 침대와 텔레비전, 노래방 기계, 냉장고를 설치했다. 캠핑카와 함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소풍을 다니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건 올해 초부터다. 그리고 장찬리가 너무 좋아 이곳에 정박하기로 했다.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장찬리에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서 일을 도왔다. 20일 인터뷰를 진행한 당일에도 제초작업을 하기 위해 예초기를 들고 온 그다. 외부인을 낯설어 하던 마을 주민들은 “지난번엔 왜 안 왔냐”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장찬리가 너무 좋아요. 조용하고 경관이 수려합니다. 저수지를 따라 일주도로가 있어 걷기도 좋아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죠.”

장사모(장찬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모임이 있지만 장찬리가 고향이 아닌 이정기씨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장찬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장사모는 못 들어가니까 찬사모를 조직하고 싶어요. 찬사모도 장찬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준말이죠. 회장은 저인데 아직 회원은 없어요.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장찬리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마을이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요.”

주말이 되면 푸른 장찬저수지 옆 빨간 버스는 분주해진다. 이번 주에도 그는 하늘을 지붕 삼아 녹음을 즐기며 시간을 낚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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