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초등학교 26회 일부 졸업생 사진 발굴, 창씨개명된 이름까지 선명
서울 역사교사 박건호, 옛 사진에서 청산초 26회임을 발굴 본지에 메일 보내

서울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박건호 교사가 경매에서 낙찰되어 받은 청산초등학교 26회 졸업생 사진. 학교 이름이 사진에서 드러나진 않았지만, 박건호 교사는 이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찾아냈다.

 

한통의 메일이 왔다. 오래된 사진과 함께. 빛 바랜 흑백 사진은 족히 7-80년을 훌쩍 넘어보였다. 그 사진 아래로 정말 흥미진진하고 또 가슴아픈 사연들이 4페이지 가량 쓰여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추론해 낼 수 없었던 사진의 주인공들을 그는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글을 읽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는 전문가였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그는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했다. 박건호 교사가 숨어 잠자고 있었던 무려 79년 전의 사진의 '스토리'를 밝혀냈다. 사진에는 학교 이름도 없었다. 그는 사진 속을 자세히 관찰하며 진학 학교와 사진연도, 졸업횟수를 기반으로 청산초등학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냈다.

그는 이 사진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사진은 코베이라는 경매사이트에 올라와 있었고 2019년 12월에 그가 50만원을 주고 낙찰받은 사진이다. 청산초등학교 조차 정작 가지고 있지 않은 아주 귀한 사진이다. 사진의 선명도도 좋다. 

사실 편집자주는 사족이다. 그의 글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다만, 그는 99% 청산초등학교 26회 졸업생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기자에게 혹시 맞는지 확인 요청을 했다. 청산초 총동문회 안철호 회장한테도 동일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어 노심초사하던 중에 옛날 청산초 100주년 기념 창시개명된 졸업생 제이름 찾아주기 기사를 쓴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바로 연락했다. 그리고 27일 청산초를 찾았다. 청산초 행정실 직원은 청산초 졸업생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학적부는 개인정보라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당시 청산초 김세중 교감과 청산신협 김광복 상무가 학적부를 찾아서 일일이 대조하며 26회부터 30회 졸업생 600여 명 창씨개명된 이름을 우리식 이름으로 바꿔 2005년 4월3일 100주년 기념식에 전달할 예정이란 기사가 있다. 이런 기사가 사실 지역 역사의 중요한 조각이다. 당시 26회 박성현, 27회 최갑성, 구시우, 28회 전용익, 구제술, 29회 남한우, 고제선, 30회 박두현, 장남순씨가 주축이 되어 동기들에게 연락해서 두번세번 확인을 거쳐 되찾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 작업을 하면서 옛날 친구들과 서로 따스한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고 기사에 나와있다. 당시 26회 박성현씨를 단박에 찾으면 좋으련만 찾지 못했다. 기자가 알고 있던 전희관(옥천읍 양수리, 공정여행-문화기획자)씨의 아버지가 전용익씨라는 걸 기억해내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하고 마침 지전리에서 대문을 손보고 있던 90세가 훌쩍 넘은 그를 만났다. 그는 한글이름으로 된 졸업장을 받은 것은 기억하고 있었으나 사진을 보여줘도 누가 누군지 잘 몰라 보았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놈들이 이름을 맘대로 바꿔서 본인도 '산전용익'(야마다 요에키)란 이름을 썼다고 말했다. 청산초등학교는 2005년 4월3일 100주년 기념으로 창씨개명된 600여 명의 이름을 어렵게 한글이름으로 바꿨지만, 이 자료 자체는 현재 찾을 길이 없다. 관리 부실로 기록 자체가 증발해 버린 것. 박건호 교사는 한글 이름 명부를 찾아 추가 글을 쓰고 싶어했지만 이 마저도 어렵게 됐다.  청산초등학교 역사사료관에는 100주년 기념 리플릿과 요람만 존재할 뿐 창씨개명된 이름을 한글로 바꿔준 명부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고 청산초등학교 관계자는 밝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역사 한 귀퉁이가 복원된 동시에 사라졌다.                                                  황민호 minho@okinews.com                                                           

▶ 다음은 박건호 교사가 쓴 메일 전문이다.

서울에서 온 편지를 직접 쓴 박건호 교사

황민호 기자님께

초면에 메일로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서울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박건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제가 최근에 어느 경매에서 수집한 한 장의 사진 때문입니다.  졸업생과 교사가 찍은 졸업 기념 사진인데 일반 졸업 사진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일단 졸업생 전체 사진이 아니라 일부 졸업생과 교사의 사진인데, 벽에 붙어 있는 종이에 '명예 합격자' 기념사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졸업생 중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학교를 빛낸 인물들만 따로 찍은 기념사진으로 보입니다. 사진 뒷면에는 소화 16년 3월30일 촬영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서기로 환산하면 1941년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합격자가 자랑스러웠던지 교복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진학하는 학교 이름과 학생 이름을 써서 붙이고 찍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를 조사하였습니다. 학교 이름은 이 사진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있습니다. 이 사진 속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의 이름들을 분석해보면 어느 지역인지를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진학한 학교들 중 대구 사범학교와 보성 중학교, 덕성여자중학교 등 대구와 서울 지역의 학교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충청권의 학교들이었습니다. 대전의원 간호부가 2명이고, 청주사범학교가 2명 그런데 다수의 학교가 진학한 학교는 옥천농업학교가 많았습니다. 충북 옥천에 있었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옥천의 어느 학교인지를 다시 추론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이 졸업사진에 '26회 졸업'이라는 글귀가 보였습니다.

1941년에 26회 졸업식을 하려면 최소 1915년 이전에 개교한 학교여야 하는데, 충북 옥천에 이 정도 역사를 가진 학교로는 두 개 정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옥천죽향초등학교와 옥천청산초등학교 정도입니다.

먼저 옥천죽향초등학교. 이 학교는 1909년 10월 사립 창명학교로 설립되었고, 이듬해 9월 공립으로 개편되어 교명을 옥천공립보통학교로 바꿨으며, 다시 1938년 4월 옥천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9월 옥천죽향 국민학교, 그 뒤 다시 죽향국민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졸업사진의 그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영수 여사가 이 학교 27회 졸업생인데, 그게 1938년인데, 그렇다면 1941년 졸업생이면 30회 졸업생이 되어야 되므로 26회 졸업과는 연차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옥천청산초등학교...

이 학교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청산사립신명학교로 개교되었습니다. 충청북도 전체를 통틀어 세 번째로 오래된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이후 1915년 첫 졸업생 18명을 배출하게 되고, 1946년 청산국민학교로 개칭했습니다. 이 학교 1회 졸업생이 1915년 배출되었다면 26회 졸업생이 배출되는 해가 1941년으로 사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리하여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 사진은 1941년 일제 강점기 청산사립신명학교(청산초등학교)의 26회 졸업생 중 명문 학교 진학학생들이 따로 찍은 기념사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눈에 띕니다.

학생들의 이름이 세자가 아니라 네자씩이라는 것, 즉 신궁동식, 금산국배, 신정영웅, 청송영치 등 창씨개명한 이름을 가슴에 달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주제일공립중학교에 진학하는 '황의찬' 빼고는 대부분 창씨 개명을 하고 있습니다.

창씨개명정책의 시점으로부터 따지면 사실상 창씨개명 후 첫 졸업생들인 셈입니다. 흐릿하거나 가려서 보이지 않은 학생들 빼고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학생들의 원래 이름도 유추해보았습니다.

먼저 '신정영웅'입니다. 신정은 보통 박씨들이 창씨개명할 때 선택한 여러 씨명 중 하나입니다. 신라의 나정에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신정이라는 이름을 쓴 것이므로 '박영웅'이 원래 이름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금산국배'. 금산은 보통 김씨가 창씨할 때 선택한 씨명은 금산, 금촌 등입니다. 그러므로 '금산국배'는 '김국배'의 창씨개명한 이름인 셈입니다.

이어서 '청송영치'. 심씨들은 본관이 청송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본관으로 창씨한 것으로 보아 '청송영치'의 본명은 '심영치'입니다.

그런데 저의 사진에 대한 추리는 여기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 검색을 하다가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찾았습니다. 옥천의 청산초등학교는 개교 110주년(100회 졸업식)을 맞아 1941년 26회부터 1945년 31회까지의 졸업생들에게 한글이름 졸업장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학교 총동문회의 당시 안철호 회장님이 이 행사를 주도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옥천신문의 황기자님도 여기대해 몇 번 기사를 쓰셨더군요.. 

먼저 옥천신문 2003년 3월 7일자 기사에 기자님은 "초등학교 학적부 아직도 일본 이름
1940∼1945년 졸업생 명단, 일제 민족말살책 획책한 흔적"이라는 기사를 쓰셨고, 2년 뒤인 2005년 4월 1일자 신문에서"청산초 개교 100주년 4월3일 청산초 교정에서 기념식 열려"라는 제목의 기사도 쓰셨더군요. 오랜 세월이 지나서 벌써 잊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 번째 기사에서 창씨개명한 졸업생을 수소문해 그들에게 원래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소개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4월 4일 서울신문에는 실제 그 졸업장 수여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름까지 빼앗긴 60년 전의 한(恨)을 이 졸업장에 담아 위로합니다." 충북 도내 3번째로 오래된 충북 옥천 청산초등학교(교장 임찬옥)가 3일 개교 100주년을 맞아 60여년전 일제 때 창씨개명된 원로 동문 105명(남자 86명, 여자 19명)에게 본명이 실린 졸업장을 전달했다." (서울신문 2005년 4월 4일자)

저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저들의 창씨개명 전의 이름과 창씨개명 후의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수집한 사진 속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좀 더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먼저 안철호 총동문회 회장님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충청북도 도의회, 블루마운트라는 회사 홈페이지까지....그런데 이메일주소나 전화번호 등을 찾을 수 없다가 동양일보 인터뷰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2015년 12월 11일 조아라 기자가 쓴 '동양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거기에 안철호 회장님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더군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길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다음으로 황민호 기자님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황기자님께서 그때 취재한 자료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외람되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들입니다.

첫째. 사진 속의 이 학교가 청산초등학교 26회 졸업생들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건 99.9%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26회 졸업생들의 명단을 알아야 되는데,  2005년 이 학교 100회 졸업식 당시 창씨개명한 학생들에게 원래 이름을 되찾아서 동문회장 이름으로 새로운 졸업장을 수여했다고 하는데 그 명단 중 26회 졸업생 이름들을 알 수 있을까요? 창씨 개명한 이름과 본래 이름을 같이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말합니다. 혹시 그 학교를 방문하면 일제강점기의 졸업앨범 같은 것이 보관되어 있을까요? 많은 자료가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그 사진 속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라면 뭐든 다 좋습니다. 다른 어떠한 목적도 없이 순수하게 학문적 호기심입니다. 저의 고향은 옥천은 아니고 경남 밀양입니다.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씨개명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사진인 것 같아 수집했고, 더 탐구하고 싶을 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기자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혹시 가지고 계신 자료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전용익씨가 2005년 4월3일 청산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임찬옥 교장한테서 한글이름으로 된 졸업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산초등학교 옛날 학적부, 청산초등학교는 사진의 주인공이 청산초등학교 26회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학적부 내용은 개인정보라 보여줄 수 없다고 밝혔다.<br>
청산초등학교 옛날 학적부, 청산초등학교는 사진의 주인공이 청산초등학교 26회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학적부 내용은 개인정보라 보여줄 수 없다고 밝혔다.
청산초등학교 28회 졸업생 전용익씨가 옛날 청산초 26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그는 사진의 주인공을 안타깝게 알아보지 못했다.<br>
청산초등학교 28회 졸업생 전용익씨가 옛날 청산초 26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그는 사진의 주인공을 안타깝게 알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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