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더께 쌓인 '현대미용실'
세월의 더께 쌓인 '현대미용실'
  • 서재현
  • 승인 2020.03.12 0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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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주민들의 사랑방
주민들과 희로애락 나누고
나란히 앉아 보리밥 나눠먹기도
청산 농협 하나로마트 맞은편에 자리 잡은 현대미용실. 청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로 주민들과 함께 늙어왔다.

 

[읍면소식-청산면] 가지런히 개어진 수건이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익숙한 파마약 냄새가 나고, 주인장이 웃으며 손님을 반긴다. 거창한 인사말은 필요하지 않다. "머리를 하러 왔소"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용사는 익숙한 장비를 챙긴다. 스타일에 대해서도 굳이 논하지 않는다. 손님이 어떤 머리를 원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농협 하나로마트 맞은편에 자리 잡은 현대 미용실은 비를 맞고, 햇볕을 쬐고, 눈을 맞아가며 세월의 더께가 쌓였다. '현대'라는 신식 이름과 달리 미용실이 개원한지는 40년이 다 되간다. 청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이다.

미용사 전인자(66)씨는 83년도 즈음부터 미용실을 열었다. 아들이 어린이집 다니기 전부터 미용실을 했는데, 지금 아들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겼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전인자씨는 17살 때부터 미용 기술을 배웠다. 세상 물정 모를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는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 혹시 모를, 먼 미래를 대비해 기술을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래 편물(뜨개질)가게에서 일해 볼 생각이었다. 친구 따라 강원도 원주에 갔다. 친구는 편물을 배웠지만, 전인자씨는 향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용학원을 3개월 다녔고, 바로 미용실에 취직했다. 먹고 자는 게 해결돼 좋았다. 월급은 당시 돈으로 1천원 정도였다. 친구들은 공장에 다니며 2천원을 벌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기술은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의 일에만 집중했다. 청산면 판수리로 이사를 오게 된 건 77년도에 시집을 오면서부터다. 그리고 5년 후 지전리에 개인 미용실을 차렸다.

현대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를 손질하는 가게가 아니다. 가게 밖으로 지나가는 주민이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자를 필요가 없음에도 한 번씩 들어와 수다를 떨고 간다. 배가 고프면 나란히 앉아 국수를 시켜 먹는다. 성품 좋은 시어머니는 항상 보리밥을 지어와 미용실 손님이건, 아니건 밥을 해먹였다. 1년에 쌀 한 가마니가 손님들에게 돌아갔다.

오랜 세월 주민들과 함께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커트비용이 3천원일 때 이야기다. 한 할머니가 머리를 자르고 3천원을 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욕을 가야되니까 돈을 꿔달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돈을 갚겠다고 떠난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끝내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전인자씨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미용을 해주는 봉사활동도 10년 넘게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에는 옥천군 모범군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인자씨는 항상 손님을 유쾌하게 맞이하고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 찬 현대 미용실이다.

"손님으로 왔던 분들이 하나하나 돌아가셔요. 그럼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비우게 되죠. 지금까지 일 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고,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도 항상 고마워요. 앞으로도 이곳에 자리 지키며 함께 늙어가려고 해요."

 

현대미용실 미용사 전인자씨의 모습. 왼쪽 사진은 98년도 미용실 내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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