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여행사진작가, 안남초 31회 졸업)

퇴계 이황은 매화를 끔찍이 사랑하는 매화 애호가였다.

그가 특별히 매화에 애정을 갖게 된 이유는 48세에 충청도 단양 군수로 부임했을 때, 18세에 사별한 미모의 기생 두향(杜香)을 만나고서부터다.

두 번의 상처(喪妻)와 아들의 죽음까지 겹쳐 정신적으로 많이 외롭고 마음 둘 곳 없어 하는 홀아비 퇴계 이황에게 문예에 뛰어나고 분매(盆梅)에 남다른 솜씨를 가진 과부 기생 두향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젊은 여인 두향은 슬픔에 지치고 정쟁으로 시달린 중년 선비의 모습에서 모성애와 연민의 정을 느껴 그에게 다가간다.

그를 흠모한 두향의 마음을 여러 번 거절한 퇴계 이황은 어느 날, 두향이 마음의 선물로 준 청매를 어렵게 받아들이면서 인연이 되어 둘은 매화를 사랑하듯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도 익어 갈 무렵, 부임한지 채 1년도 안 돼 퇴계 이황은 다시 경상도 풍기 군수로 발령이 난다. 짧은 인연 뒤에 온 급작스런 이별에 두향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두 사람은 이별의 아쉬움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밤은 깊었으나 말이 없던 두 사람 사이에 먹을 갈고 있던 두향은 붓을 들어,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 다 하고 임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라고 시 한 수로 기약 없는 이별을 서러워한다.

퇴계 이황이 떠나던 날 두향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를 그의 이삿짐 속에 넣어 준다. 퇴계 이황은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두향을 보듯 매일매일 정성을 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들어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매화에게 보여 줄 수 없다며 매화를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한다.

한편, 퇴계 이황을 떠나보낸 두향은 "퇴계를 사모하는 몸으로 더 이상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고 퇴적계를 낸 후 퇴계 이황과 자주 갔던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남한강가에 초막을 짓고 운둔 생활을 한다. 그들이 헤어진 후 20년이란 세월은 덧없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퇴계 이황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소복을 입은 채, 4일 동안 걸어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하여 멀리서 퇴계 이황을 향해 두 번 절을 한 후, 다시 단양으로 돌아와 퇴계 이황과 자주 시문을 논하던 '강선대 위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미련 없이 남한강 물에 몸을 던져 짧은 생을 마감한다.

퇴계 이황이 69세(1570년)로 이 세상을 떠나던 날, '매화에 물을 주어라'고 한 말은 두향을 내내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고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의 '명기열전'의 '두향'에 나오는 이야기를 간략히 적은 것이다. 1985년 충주댐공사로 강선대는 물에 잠겼고, 두향의 묘는 충주호 장회나루 휴게소 건너편으로 옮겼다. 단양문화보존회에서는 1987년부터 단성면 장회나루 두향공원에서 '두향제'를 열어 두향과 그 연인인 퇴계를 기리고 있다.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리 어려워도 쉽게 굴하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꽃, 매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매화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시나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며 어떤 봄꽃보다도 그 자태가 곱고 빼어나 동양화에 자주 그려지기도 한다.

정녕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라 하지만 새 봄의 시작은 2월이다. 그 새 봄의 시작이 입춘이고 보면 2월은 정월 대보름과 함께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에 미처 세우지 못한 계획을 서두르지 않아도 될 한해의 시작점인 셈이다.
제주도 2월은 수선화와 매화가 한창이다.

노란 수선화에 이어 빨간 홍매가 봄을 재촉하며 얼어붙었던 우리 몸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 넣는다.

매화는 개나리, 벚꽃, 목련, 산수유, 진달래, 생강, 살구, 복숭아, 배나무와 같이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또 매화는 향이 짙어 옛 선비들은 방안에 그를 두고 가까이 하고 싶어 했다. 매화에는 백매, 청매와 홍매가 있다. 제일 먼저 피는 매화는 홍매이며, 가장 귀한 매화는 청매이다.

천 원짜리 지폐에 퇴계와 매화가 그려져 있으며, 오만 원짜리에도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가 그려져 있다. 사군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열매를 맺는 나무로, 일을 하고 나면 반드시 결과는 내야 한다는 뜻으로 매화가 상징되기도 한다.

매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일지춘(一枝春), 군자향(君子香)이라고도 하며, 사군자로 불리며 봄이 되면 항상 우리 곁에 다가와 봄이 오는 소리를 재촉하곤 한다.

제주도에서 매화를 볼 만한 곳으로는 한림공원, 노리매공원, 휴애리자연생활공원, 걸매생태공원, 칠십리시공원 등이 있다.

■ 한림공원
한림공원은 겨울이면 사나운 북서풍과 맞서 싸워야하는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아열대식물공원이다.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이 방문했을 때 극찬할 정도로 그 규모와 잘 짜진 구성으로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월별로 주제를 정해 1월 수선화, 2월 매화, 3월 튤립축제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11일까지 매화 축제를 해 겨울 제주도 여행객의 눈길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수선화와 매화, 히아신스가 잘 어우러져 있어 한 번의 발걸음으로 여러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올 겨울 들어 몇 차례 방문했지만, 보고 싶었던 매화를 보지 못해 발길을 돌리곤 했다.

수선화와 매화가 아래와 위 공간을 사이좋게 차지하고 있는 넓은 수선화매화정원으로 달려갔다. 50만 그루의 수선화와 수령 20년 이상 된 매화나무가 빼곡해 어디를 보나 감탄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그윽한 매화 향기 또한 여행객에게 비명을 지르게 하는 병기임에 틀림없다

한림공원 홍매화<br>
한림공원 백매화
한림공원 홍매화<br>
한림공원 홍매화

■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봄바람이 불기 시작은 했지만, 아직 쌀쌀한 기온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 채워진 승용차를 보고 '여기는 다르구나'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이 제법 보인다. 입장하면서 아내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흑돼지쇼'가 열려서란다. 동물 먹이 주기 체험과 승마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해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행객이 많은 듯하다.

휴애리 공원 매화 축제는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열린다. 

잘 가꾸어진 매화는 아니지만, 넓은 밭에 줄지어 심어진 매화는 젊은이들을 꽁꽁 붙잡아 두기에 부족하지 않다. 

가족 단위의 많은 여행객들은 매화 향기에 취해 발길을 더 이상 떼지 못하며 마음껏 행복한 포즈를 취한다. 여기저기서 셔터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를 듣는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보고 싶어 기다리던 노란 수선화를 여기서 보았다. 아직 만개하기는 이르지만,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노란 수선화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셔터를 누르고 있다 보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제자리에 서서 계속 셔터만 누른다. 봄에 흠뻑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놀다 왔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매화<br>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매화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매화<br>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매화

■ 노리매공원

올해도 '콧바람 쐬러가세'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봄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노리매 공원은 풋풋한 제주도의 자연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놓은 유료 공원이다. '놀이매'는 '놀이'와 '매화'의 순수한 우리말 합성어로 매화를 대표하는 자연 공원이다.

매표소에서 건네 준 따뜻한 매실차 한 잔이 추위에 움츠러든 몸을 훈훈하게 녹여 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언덕 돌무덤 사이로 군데군데 보이는 수선화는 깨끗하고 단아하여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어지는 흰 매화나무 길은 노리매를 대변하듯 그 기품 또한 당당하다.

왼쪽에는 연못과 광장이 있는데, 꽃을 보기 위해서는 오른쪽 길을 걸어야 한다. 수선화가 양 길가에 다소곳이 청초하게 앉아 있으며, 그 위에 눈부신 백매화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로 안정된 분위기를 주고 있어, 잠시 들른 여행객에게 '좀 더 쉬었다 갈까?' 하는 행복한 고민까지 할 수 있는 힐링의 적소이다. 또 인공 연못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사각 정자는 해 질 무렵 저녁노을과 함께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수선화길, 수선화공원, 동백나무공원, 매화공원, 차나무공원, 감귤밭, 수국길이 따로따로 있으며,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꽃차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노리매공원 매화<br>
노리매공원 매화
노리매공원 매화<br>
노리매공원 매화
노리매공원의 동백꽃과 어우러진 매화<br>
노리매공원의 동백꽃과 어우러진 매화

■ 걸매생태공원과 칠십리시공원

서귀포의 도로(태평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매생태공원과 칠십리시공원이 있다. 외돌개입구교차로에서 양쪽으로 갈린다.

걸매생태공원에는 매화원, 야생조류관찰원, 야생조화관찰원, 창포원이 있으며 주변에 축구장, 농구장, 게이트볼장이 있어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축구장과 농구장 사이로 제주올레 7-1코스가 지나간다. 걸매생태공원은 자연을 유흥 중심에서 생태자연 중심으로 만든 숨 쉬는 생태공원이다. 도심에서 가까워 언제나 접근이 가능하며, 축구장 옆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또 칠십리시공원에도 매화가 있다. 외돌개입구교차로에서 남성 마을 쪽으로 가면 된다. 천지연폭포, 담팔수 자생지, 놀이터, 작가의 산책길이 있다. 제주올레 6코스가 지나가며, 천지연폭포 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걸매공원 매화<br>
걸매공원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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