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예술의 발전, 옥천을 살찌운다"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 옥천을 살찌운다"
  • 양수철
  • 승인 2020.02.11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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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가로 인생 2막 연 청성면 무회리 권종현 라재순 부부
경로당 공연 봉사활동, 청청문예장터 등 다양한 활동 선봬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 이어나가겠다"
청산·청성에서 지역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라재순(왼쪽)·권종현 부부. 부부는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이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지역을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권종현·라재순 부부가 청성면의 한 경로당을 찾아 공연 봉사를 진행했다.
라재순(왼쪽)·권종현 부부가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우리지역 내 예술가들은 지역 행사에 등장해 공연을 펼치며 행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실력을 뽐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지역을 흥미롭고 즐겁게 만드는 데 지역 내 예술가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단지 수동적으로 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활동을 하며 자아를 실현하기도 한다. 지역 내 문화·예술은 지역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만든다. 지역 예술의 부흥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 주민들을 행복하게 한다. 지역 안에서 예술이 더욱 활기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청청 문예협회 회장인 권종현씨(60, 청성면 무회리), 청성난타의 단장 라재순씨(53, 청성면 무회리) 부부는 지역 예술 부흥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부부의 활동 덕분에 옥천 예술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활동을 통해 옥천 주민들, 그리고 부부가 얻는 즐거움과 행복 또한 크다.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펜팔로 인연을 맺은 부부, 황혼의 문턱에서 귀촌을 꿈꾸다

권종현씨는 군북면 막지리 출신이다. 7남매 중 넷째였다. 권종현 씨의 아버지는 대목, 그러니까 목수의 리더였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셨을 뿐만 창도 잘하셨다고. 아버지를 쏙 빼닮은 권종현씨 역시 손재주가 좋았고 노래 솜씨도 뛰어나다. 19살 때 막지리가 수몰되면서 옥천읍 마암리로 이사를 왔다. 그리운 고향, 눈을 감으면 아직도 고향이 눈에 선하다. 19살때부터 본격적으로 돈벌이를 시작했다. 조치원 대전 등지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했다. 옥천에 자리하고 있던 국제종합기계에서 한 달 내내 철야 근무를 해 손에 거머쥔 돈은 23만원 남짓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해지만 성과가 없었다. 권종현씨는 대구의 한 업체에서 영입제의가 들어오자 1986년, 석유 곤로와 솜이불을 들고 친척과 함께 대구로 향했다. 그때 가진 전 재산은 23만원, 그리고 부모님으로 물려받은 몸뿐이었다.

라재순씨는 전라북도 정읍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직장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펜팔로 인연을 맺었다. 펜팔이 유행했던 당시에는 대중가요 책 뒤에 펜팔 주소록이 있었다. 사람들은 주소를 보고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권종현씨와라재순씨 역시 펜팔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가 사랑에 빠졌다. 라재순씨는 권종현 씨의 예쁜 글씨체와 수려한 글솜씨에 반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은 점점 커졌고 라재순씨는 어린 나이에 덜컥 대구로 향했다. 1987년 대구에서 살림을 합쳤고 이듬해 큰딸이 태어났다. 큰딸이 태어났을 당시 권종현 씨의 나이는 28살, 라재순씨의 나이는 21살이었다.

“저는 당시에 펜팔을 처음 했어요. 근데 남편이 글을 얼마나 잘 썼다고요. 글씨체도 너무 예뻤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확 갔죠. 남편 부모님도 몇 번 뵈었었어요. 사랑해서 대구로 무작정 향했어요. 답답한 집 밖으로 일탈하고 싶은 마음도 컸죠.” (라재순씨)

가진 것 없던 시절, 온전히 사랑 때문에 결혼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권종현씨와 라재순씨는 낯선 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노력했다고. 권종현씨는 30대 중반까지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밀 자동화 기계인 산업로봇을 제작하는 앤트정밀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회사는 잘 운영됐고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권종현 씨의 마음엔 한 가지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나를 위해 인생을 살지 못했구나’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후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50살까지만 일을 하고, 이후에는 아내와 함께 인생을 즐기자’라는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물론 50살 때 바로 일을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50세에 청성면 무회리에 땅을 사고 집을 미리 지었다. 그리고 54세에 청성으로 아내와 함께 들어왔다. 올해 6년 차다.

 

■귀촌 후 열린 인생의 2막, 지역 예술가의 삶

보통 귀농 귀촌인들은 시골에 내려오기 전 미리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는 등 시골살이를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권종현씨의 귀촌 준비는 달랐다. 권종현씨는 글씨를 배우고 경기민요와 장구를 익히면서 귀촌 준비를 했다. ‘자신을 위한 삶’은 ‘예술 활동을 하는 삶’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테다. 지금도 옥천에서 학원에 다니며 음악을 익히고 있는 권종현씨다. 자신의 음악이 관성에 젖지 않고 좀 더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 관성에 젖은 예술 활동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청산·청성면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고 싶었고 귀농귀촌인들과 의기투합해 청청 문예협회를 만들었다. 청성풍물단에서 총무(부쇠)를 맡은 권종현씨는 지난해 인대 부상을 입었음에도 진통제를 맡고 풍물대회에 출전할 만큼 예술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권종현씨는 현재 청청문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옥천 여성회관 붓글씨 동아리 심향회에서도 활동하고, 종종 어르신들을 위해 노래 봉사를 하기도 한다.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왔지만, 오히려 삶이 바빠졌다는 권종현씨다.

“청성에 적응도 했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근데 문제는 너무 바빠졌다는 거에요(웃음). 여유롭게 즐기며 살려고 했는데 봉사도 하고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할 것들도 너무 많아졌어요” (권종현씨)

라재순씨는 현재 청성난타회장, 블루앤블루줌바회장을 맡고 있다. 줌바와 난타를 하고 싶었지만 귀촌할 당시에는 청산·청성면에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그러던 중 청성면 활성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프로그램도 마련됐고, 친구의 권유로 줌바와 난타를 시작한 라재순씨다. 처음에는 무대에 서는 게 떨리고 힘든 마음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라재순씨는 열심히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도 늘었고 무대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예술 활동을 즐기게 됐다. 어느새 청성난타, 블루앤블루 줌바의 회장직까지 맡고 있다. 지난해에도 묘목축제, 생선국수축제 등 옥천에서 열린 여러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 행사를 풍성하게 만들었고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올해도 묘목축제 등 행사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

한편 라재순씨는 옥천에서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다. 40대 초반,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는 생각에 자격증을 취득했을 뿐 직업으로서 일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지역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고, 어르신들을 도우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라재순씨다. 요양보호사로서 자부심도 크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고 챙겨드리고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어르신들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드라마 같아요. 어르신이 제가 만들어드린 음식 맛있게 드시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뿌듯하고 좋아요”(라재순씨)

부부는 농한기에 청성면 내 마을을 찾아다니며 식사 및 노래 봉사를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인 재능기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 부부는 지원금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데 사용한다. 음식 솜씨가 좋은 라재순씨가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권종현씨는 장구를 치며 어르신들에게 멋들어진 가락을 선뵌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이들의 발걸음을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은 흥겨운 장구 소리에 맞춰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으로 마을을, 지역을 따뜻하고 살기 좋게 만들고 있는 부부의 노력이다.

■'청산청성 예술의 활성화가 지역을 행복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농촌이 인구 감소로 우려하고 있다. 청산·청성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역을 떠나고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주민들이 점점 사라질수록 지역은 황폐해진다. 권종현씨는 지역 예술의 부흥과 발전이 외부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술이 지역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지역이 행복해지면 자연스럽게 귀농 귀촌인들이 유입될 거라고 보고 있다.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핵심 주체는 주민이라는 것. 더불어 지역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설 및 지원이 확보돼야 한다고 여겼다.

“최근 시골이 다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시책 가지고는 인구를 늘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인구를 늘리는 방법은 그 지역이, 그 마을이 재밌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겁니다.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거죠. 주민들의 생활이 즐거우면 당연히 홍보도 자연스럽게 되겠죠. 청청문예협회를 만들고 청청문예장터 등을 하는 것도 결국 살기 좋고 활력 넘치는 지역을 만드는 노력입니다. 귀촌인들이 끼가 많아요. 재능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서 함께 열심히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고 싶습니다.”(권종현씨)

“문화·예술은 작게는 삶의 활력소지만 크게는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회지에서 문화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하면 힘들어하기도 해요. 저희 부부만 해도 대구시립교향단오케스트라 공연을 정기권을 사서 보러 다니곤 했습니다. 청산청성지역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이 생기면 주민들의 삶이 더 윤택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산·청성 공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상설 전시 체험관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많은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주민자치프로그램 등 군이나 면에서 주최하는 문화프로그램이 많이 홍보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 활동의 동료인 아내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네요.”(권종현씨)

라재순씨는 올해에도 난타와 줌바를 열심히 연습해 무대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더 많은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길 바라고 있었다.

“올해에도 열심히 회원들과 준비해서 무대에 올라가 지역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주민자치프로그램이나, 문화프로그램이 활성화돼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 좋겠어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남편과 함께 봉사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네요”(라재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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