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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작은 행복
  • 옥천닷컴
  • 승인 2019.10.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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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제(옥천작가회의 회원, 동이면 세산리)

가을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즐기기 제일 좋은 계절인 것 같다. 대문 앞의 늙은 느티나무가 벌써 만산홍엽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뒷산의 수목들도 동행할 태세다. 어제 밤엔 불청객 통증이 몰려와 한바탕 난장판을 펼치더니, 새벽녘이 되자 소리 없이 달아나 버렸다.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점심을 고구마로 간단하게 갈음하고, 마당엘 나가 앉는다. 금싸라기 같은 황금 볕이 나를 자꾸만 꼬드긴다. 입가에 묘한 미소가 돈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작은 곳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마치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소인의 사귐은 감주와 같고, 군자의 사귐은 맹물과 같다.”

만고의 진리다. 고로 나는 대국보다는 소국이 좋고, 소국보다는 구절초가 좋다. 정녕히 생각해보건대, 내게 인생길은 멀고도 험했다. 숙명처럼 펼쳐진 길은 능선이었고 험준했다. 아픈 청춘은 늘 비틀거렸다. 삶은 그대로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고로 늘 지쳐있었고 만신창이 형세였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황하는 어리석은 양과 같았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늘 바보처럼 헛된 망상의 늪에서 허덕였다. 나의 청춘을 닮은 구절초가 시절 인연을 맞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한다. 어이 향기 아니 짙을쏜가. 노랑나비가 날아와 너울너울 춤을 추며 그 향기를 나에게 부채질한다. 이것이 작은 행복일까.

손주들이 놀러 왔다. 이제는 제법 커서 제 놈들의 부모를 등지고 12일을 할 정도다. 손녀는 여섯 살, 제법 송곳 같은 질문을 해서 나를 어리둥절케 한다. 할머니하고 전화 놀이를 한단다. 놀이가 시작되자마자 반말을 한다. “내가 언니 할게, 너는 동생 해.” 마음껏 펼쳐지는 동심의 세계에, 할머니도 몰입해야 이 맞는다. 전화 도중에 할머니가 슬며시 농담을 유도한다. “서윤아, 할머니가 죽으면 어떡하지?” 전화를 받던 손녀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단다. 너무 슬픈 일이란다.” 천진무구한 얼굴이 갑자기 경직 된다. 비장한 기세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섬뜩해진다. 곁에서 방관하던 나도 가슴 결로 울컥감정이 밀려든다. 이것이 물보다 진한 작지 않은 혈육의 정인가보다.

이놈들도 불쌍한 놈들이다. 맞벌이하느라 엄마는 새벽에 나가면 밤늦게 돌아온다. 오늘날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할머니하고 놀다가도 아직 어린 손자는 간헐적으로 엄마, 엄마를 내 뱉는다. 가슴이 덜컹 내리 앉는다. 이놈들도 새벽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놀이방으로 끌려가 종일 부모와 생이별을 한다.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가는 실정이다. 그렇게 일을 해도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이런 세상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인지 묻고 싶다. ‘-조선이라는 말이 가슴을 후린다. 청춘들이 의욕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출산과 결혼의 문제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비전이며, 중추적 요체다. ? 청춘들이 실의와 좌절의 벽에서 비틀거리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청춘들이 마음 놓고 출산을 할 수 없는 국가는, 심각하게 마비된 혼돈의 사회다. ‘작은 행복은 먼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이 늘, 작은 행복으로 충만할 때, 사회도 그만큼 풍요로운 세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를 실현 시키는 것이, 위정자들의 몫이다. 결혼과 출산은 국가의 백년대계요, 동량을 비축하는 일이다. 이것을 간과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고, “달을 가리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선문답(禪問答)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면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달을 보아도 우리가 보는 달은 달이 아니란다. 마음 속에서 각자의 견지에서 보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달을 보면 안 된단다. 우리는 자신의 견지로 보는 달을 죽는 날까지 참 달로 생각한다. 눈은 떴으나 실은 장님인 셈이다. , 작은 행복’, 아니 일상의 소소한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지는 황금빛 들녘을 떠도는 잠자리 떼처럼,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모순된 조각들이 난무하고 있다. 소리에 취하고 빛깔과 향기와 형상들이 불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세상이다. 그 잠자리 떼를 잡으려고, 학생들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박제된 지식을 채집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지식을 채집하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채집하는 데 혈안이 되다 보니, 사회가 혼돈의 역사다. 가치가 전도된 지 오래다. 인륜(人倫)식은 개밥이 된 세상이다. 누구의 탓일까. 모두가 우리, 자신의 탓이다.

황금벌판이 참다랗게 화장세계를 시현하고 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가 실하다. 모두가 작지 않은 자연의 복전이다. 고로 가을은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인가보다.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집사람이 빠가를 사 왔다. 빠가는 매운탕의 진국이다. 한 솥 가마에 넣고서 부글부글 끊인다. 천하의 별미가 따로 없다. 가을 햇볕과 궁벽한 시골 공기와 단풍의 향기까지 모조리 비벼 넣고서 끓인다. 문득 부지깽이를 들고서 먼 산을 쳐다본다. 어느 시인의 시구가 스며든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

그러나 가을이다.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이 보라는 듯, 유유자적하게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가을이다. 매운탕을 끓이는 아궁이 불빛이 너무 좋다. 고구마를 넣으니 환상의 맛을 안긴다. 이것도 산골에 숨어서 사는 사람의 풍미다. 작은 행복이 정말 소소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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