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여행사진작가 / 안남초 31회 졸업)

단풍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반구인 동아시아, 유럽의 남서부, 북아메리카의 동북부 등 지구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열대지방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희귀한 자연현상이다.

우리가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운인 셈이다. 아울러 단풍이 없는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빨간 단풍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도 단풍은 육지에 비해 덜 붉고 덜 예쁘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定說)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제주도 가을의 일교차가 육지보다 적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클수록 색소의 화학적 반응이 활발해져 단풍색이 더 진하고 아름답다. 제주도 가을의 일교차는 3~4여서 육지의 10내외보다는 훨씬 작은 편이다.

8~9월 제주도에 부는 잦은 태풍은 무성하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말아, 가을나무가 앙상해 단풍이 곱지 않다. 많은 여행객이 즐겨 찾는 관음사코스인 삼각봉 단풍은 지난해에 그렇게 곱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가지만 무성해 실망하고 말았다.

단풍은 늦가을이 되면 나뭇잎에서 생기는 생리적인 현상으로 나무마다 다양한 색을 내는 것은 나뭇잎 속의 색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일조량이 줄어들고, 건조한 기후와 다가올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나뭇잎은 광합성을 멈추고 잎자루에 떨켜를 만들어 양분이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게 한다. 이때 나뭇잎 속에 들어 있는 엽록소(葉綠素)는 파괴되어 녹색은 점점 사라지고 특유의 색깔을 가진 단풍이 생기게 된다.

단풍나무, 옻나무와 같이 붉은색 단풍은 녹색 색소 클로로필이 분해되어 안토시아닌 색소가 새로 생기면서 만들어진다. 가을에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많아야 단풍이 더 아름답게 물든다. 또 붉은색 단풍은 일교차가 클수록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같이 노란색과 갈색 단풍은 붉은색 단풍과 달리, 카로틴과 크산토필, 탄닌과 같은 적은 양의 색소가 나뭇잎 속에 들어 있다가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표면으로 나타나 단풍이 든다.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는 서로 비집고 경쟁적으로 자라는 것 같지만, 우애 좋게 서로를 피해가며 뻗어 나간다.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골고루 햇볕을 받기 위해 잎사귀끼리 나름의 배려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곱게 물든 단풍을 가을만 되면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궁금한 게 또 있다. 대부분의 단풍은 빨강색일까?

종족 보존을 위해 열매에 들어 있는 씨를 멀리 퍼트리기 위해 새들의 눈에 잘 뜨이게 하려고 빨강색으로 치장한 것일까? 어디서나 눈에 잘 뜨이는 단풍나무와 옻나무에서 빨강색이 더 짙고 화려해 그런 의문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오랫동안 살고 있던 대전의 신탄진 대청호 가는 길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퇴근길의 자동차 핸들을 돌리게 하는 마력이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20년은 족히 넘는 은행나무가 빈틈없이 줄지어 마주보고 있다.

아래쪽엔 절벽과 대청댐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흐르고 그 위로 좁다란 길이 나 있어, 주말이나 퇴근 무렵에 혼자라도 드라이브하기 좋은 호젓한 길이다. 커피를 한잔할 수 있는 카페도 군데군데 있어, 친구의 전화벨 소리를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있는 곳이다.

여기 은행잎은 여느 곳의 은행잎보다 색깔이 더 노랗고 투명해 예쁘다는 소문이 나 있다. 가을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길이다. 이곳 은행나무 가로수 길의 샛노란 단풍은 그 이유가 있다. 강가에 끼는 밤안개가 그 주범(?)인데, 밤이 되면 안개는 밤새도록 은행나무를 담요처럼 덮어 준다.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산바람을 막아 주는 보호막 역할을 해 줘 은행잎은 따뜻한 채로 밤을 샐 수 있다.

그렇게 은행잎은 오래오래 버티다가 더 추워지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물들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한창 예쁘다. 결국 이곳의 은행잎은 다른 곳보다 늦게 물들기 시작하여 늦게까지 샛노란 은행잎으로 남는다.

더 노랗고, 더 예쁜 은행잎이 늦게까지 쌓일 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놀라고 만다. 그래서 소문 듣고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까지 환호하며 기뻐한다.

한라산 둘레길 천아숲길, 한대오름, 사려니숲길, 탐라계곡을 차례로 소개한다.

천아숲길 입구 단풍
천아숲길 입구 단풍
천아숲길 입구 단풍
천아숲길 입구 단풍

 

천아숲길

한라산 허리격인 해발 600~800m에는 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사려니숲길 5개의 둘레길이 있다. 아직 미완성인 북쪽 길을 포함하면 80환상의 숲길이 완성된다. 그 둘레길 중 하나인 천아숲길은 10.9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제주시나 중문에서 240번 버스를 타고 1100(1139)한라산둘레길(천아숲길입구)’에서 내리면 어승생 제2수원지가 보인다. 여기서 포장도로 2를 따라 들어가면 작은 주차장과 야외용 화장실이 보인다. 승용차로 접근한다면 천아숲길입구버스 정류장에서 들어가면 된다. 반대로 한대오름에서 갈라지는 길이 또 있다.

눈앞에는 마른 광령천이 보이고, 건너편엔 울창한 단풍나무가 저녁 햇살을 받으며 붉은빛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햇살이 피고 질 때마다 선홍색 단풍에 눈이 부신다.

이미 천아숲길을 걸어 나온 사람들이 기쁨 가득한 얼굴로 빨간 단풍나무 밑을 줄지어 걸어가며 마냥 행복해 하는 곳이다. 또 연인들은 광령천에 서서 골짜기를 배경으로 마음껏 셔터를 눌러 댄다. 제주도에서 단풍에 접근하기 가장 쉬운 곳이다.

천아숲길을 지나면 돌오름길, 동백길, 사려니숲길로 이어진다. 여기 둘레길은 단풍으로 예쁜 곳이다.

한대오름길 단풍
한대오름길 단풍

 

한대오름

한대오름 단풍이 예쁘다라는 이야기는 한대오름 정상 단풍이 예쁘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대오름으로 오르는 길의 단풍이 예쁘다는 뜻이다.

한대오름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240번 버스를 타고 영실 입구에서 내려 500m 정도 숲속으로 들어가면 18임반 입구가 나온다. 1.6를 더 들어가면 표고 재배장과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돌오름, 오른쪽이 보림농장, 가운데가 한대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다시 1를 더 들어가면 버섯 재배장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농장을 오가는 농로(農路)여서 비상시에는 승용차 운행이 가능하다. 이곳은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산양삼 생육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농장이다. 농장을 가로질러 한참 동안 걸어가면 한대오름에 이르게 된다. 농장을 지날 때 개가 짖어도 무서워하지 말고 모른 척 그냥 걸어가면 괜찮다.

한대오름 정상에는 이름 모를 묘 2개가 있다.

사려니숲 새왓내숲길 단풍
사려니숲 새왓내숲길 단풍
사려니숲 조릿대길 단풍
사려니숲 조릿대길 단풍

 

사려니숲길

사려니숲 속에는 새왓내숲길제주조릿대길같은 걷기 좋은 길이 나 있어, 단풍과 함께 이야기하며 만추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새왓내숲길은 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500m만 들어가면 바로 나타나는데, 전체 길이 1.5의 순환로로 40~5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새왓내는 천미천 지류로 언제나 시원한 바람에 복잡한 마음을 단번에 날릴 수 있는 편안한 순환길이다. 가을에는 투명하고 빨갛게 제 색깔을 내는 단풍나무가 여기저기 곧게 서 있어서 무심코 지나려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단풍나무를 이리저리 한참 둘러보고, 이제 막 떨어진 촉촉한 나뭇잎을 주워서 배낭에 넣어 본다. 아직 부드러움이 가시지 않은 따뜻한 낙엽이다.

제주조릿대길명도암입구 삼거리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여 사려니숲길 입구까지의 2.5거리를 말하며, 516도로(1139)와 비자림로(1112)가 만나는 비자림로 교래입구버스정류장까지 연장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제주조릿대길은 비자림로와 나란하게 나 있다. 가끔씩 자동차 소리가 들려 침묵으로 입 맞추어 걷고 있는 여행객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자동차는 어디쯤 걷고 있는지를 알려 주어, 도리어 혼자 걷는 여행객에게는 안심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천미천 주변에만 유독 가득한 단풍은 저녁 햇살에 더 투명하다. 빨강, 노랑으로 곱게 물든 단풍잎이 파란색 하늘에 투영돼, 그렇지 않아도 한 곳에 정신을 팔 수 밖에 없는 여행객을 숨쉬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탐라계곡 단풍
탐라계곡 단풍
탐라계곡 단풍
탐라계곡 단풍

 

탐라계곡

한라산 탐라계곡은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불린다. 탐라계곡은 한라산에서 가장 긴 계곡이며, 백록담에 오르는 탐방로 중에서 이 탐라계곡이 들어 있는 관음사 코스가 가장 힘이 든다.

관음사야영장 주차장에서 탐라계곡 목교까지는 3.2이며, 1시간만 걸으면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이 구간은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탐방로를 네 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완만하며, 다음 삼각봉까지는 다소 어렵고, 그다음 용진각대피소까지는 보통, 그다음 백록담까지는 크게 어려운 구간으로 한라산 관음사탐방로 8.7가 이어진다.

탐라계곡 목교 부근의 사진만 찍고 싶다면 왕복 6.4의 완만한 구간으로 언제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목교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단풍도 예쁘고, 오르내리는 철제 계단에서 바라보는 단풍 또한 아름답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목까지 차 헐떡이면서도 옆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게 여기 단풍이다.

가을에 단풍으로 물든 탐라계곡은 여행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할 만큼 여유를 주는 곳이다. 한발 더 나아가 삼각봉 아래의 계곡까지 단풍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여기 관음사탐방로는 밋밋하고 지루한 성판악으로 오르는 탐방로보다는 볼 것이 많아 덜 지루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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