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학교에서 열린 학교로, 자율성, 자발성, 자주성을 키워주자.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는 것 '근본적인 변화'가 답이다

 10월4일자 옥천신문은 ‘2017년 개교한 충북 최초 공립형 대안학교’인 은여울중학교에 대해 보도했다. 폐교 위기의 학교들이 방과후 프로그램만 갖고 차별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흔히 기존 학교 체제에 적응 못하는 ‘사고뭉치’라 불리던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낙인 찍혔던 청명학생교육원은 이름도 어여쁜 ‘은여울중학교’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은여울중은 중학교와 동일한 학력이 인정되며 교육활동비, 급식비, 기숙사 비가 전액 무료다. 수업과정 역시 일반학교와 판이하게 다르다. 보통교과(국어, 사회, 교육수업시수의 50%이상, 3학년 부터 영어), 대안교과(아침모임, 개별프로젝트, 융합프로젝트, 공감세미나 등), 창의적체험활동(역할세미나, 심리난타, 감성밴드, 체감풋살 등), 기타(개인상담, 저녁모임, 교실밖수업)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를 살펴보면 2019년 진행되고 있는 대안교과 융합프로젝트는 바다의 왕자, 고비구비, 울릉도에서 전통음식 찾기, 행복한 우리반야봉, 동물 사랑 등이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알맞은 프로젝트를 정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보조하는 시스템이란다. 기사를 조금 더 살펴보자. ‘정해진 교육과정과 시간에 맞춰 공부를 해왔던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율성을 갖게 된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공부를 직접 선택하고 심지어 수업에 들어가기 싫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학생이 수업을 구성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꽉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대학처럼 자신이 과목을 선택하며 스스로 시간표를 짜게 할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등교시간도 쉬는 일정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반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강의실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짝꿍’이란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사이 좋아야 한다는 환상, 우애로워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면서 정말 안 맞아 싫은 학생과 1년, 1학기를 같이 한다는 것은 정말 싫지 않은가.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점심 시간에 식판을 들고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없어질 것이다. 점심시간을 넉넉하게 11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넉넉잡아 배식을 한다면 시간에 맞춰 원하는 친구와 소담소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있는 점심 시간을 만끽할 것이다.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과 오랜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것도 큰 행복 아닌가. 이 행복을 매일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박탈당하고 있다. 쫓기듯 헤치우고 줄을 서서 차례대로 먹는 것을 강요당한다. 스스로 삶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치부해버리면 늘 미성숙한 채로 있게 된다. 정말 20살이 찼다고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믿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에도 어른보다 훨씬 나은 청소년들이 많다. 등교시간을 체크하면서 복장을 규정하고, 심지어 머리 등 신체를 규제하며 휴대폰까지 압수하는 일 등에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은 학교나 교사나 학생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심어줄 수 없다. 스스로 성장하게 하라. 은여울 중학교를 넘어서는 학교, 그런 공립학교를 마음만 모아내면 옥천에서도 만들 수 있다. 청소년을 시민으로 대하라. 온전히 한 사람의 인구수로 계산하면서도 없는 유령처럼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면서 현재를 거세하고 늘 미래만을 내다보도록 강요하고 있다. 물론 국가차원에서 공모한 ‘대입'이 이런 시스템을 유지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입이라는 커다란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이런 제안들이 무의미하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학교 너머 그 이상을 상상해보자. 청소년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온전한 사람으로 대한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의 학교 체제를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학생은 학교의 주인인가? 학교 너머 학교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교육과 청소년의 현재는 늘 갇혀 있을 것이다. 이미 규격화되고 정형화 된 '성공적인 미래’를 세뇌하면서 행하는 교육은 얼마나 처참한가. 제발 억압하지 말고 그 결대로 살게 내비둘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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